[기획] 전세난 시대, 도시 잠식하는 '빈집'
국민일보 2015.02.13(금) 정부경 기자
한국, 버려진 집 1000만 가구의 일본 닮아간다
한국인에게 '집'은 각별했다. '내 집'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보여주는 척도였다. 보통 사람들에게 거의 유일한 재산증식 수단이기도 했다. 더 이상 끼어들 자리가 없을 것 같은 곳에도 자고 나면 또 집이 들어섰다.
그 사이 집이 필요한 사람은 거꾸로 빠르게 줄었다. 우리 경제는 젊은이들에게 결혼을 늦추거나 포기하게 했다. 주인을 찾지 못해 "여기 집이 있소!" 외치는 형형색색 주택분양 현수막이 거리를 점령했다. '빈집'이 스멀스멀 도시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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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일 인천 중구 도원동(가운데 사진)과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골목에 주인이 떠난 빈집들이 방치돼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도심 빈집 활용 방안을 모색 중이지만 빈집 수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서울시는 지난주 '빈집 살리기'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6개월 이상 비어 있는 아파트나 빌라, 단독주택을 개보수해 저소득층 주거복지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만큼 서울에 빈집이 많다는 뜻이다.
'전세대란' 시기에 등장한 '빈집 살리기' 정책. 이 아이러니는 한국사회에서 집의 위상도 양극화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고령화를 겪으며 부동산 거품이 꺼진 일본은 전국에 빈집이 1000만채나 된다. 혹시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는 건 아닐까. 한국 도시의 빈집들은 어떤 속사정을 안고 있을까.
스멀스멀 도시를 잠식하는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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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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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구역을 제외한 도심 속 빈집은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상 정비사업구역에 있는 빈집은 관리할 근거가 있지만 재개발 해제구역이나 일반 지역의 집들은 얼마나 비어 있는지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은 2013년 103%를 넘어섰다.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지난해 말 기준 4만379가구나 된다. 이런 빈집들은 사고라도 나야 비로소 그 황량한 모습이 드러난다.
'하우스 노마드족'의 등장
빈집의 증식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20, 30대는 빚을 내서 집을 샀다가 집값이 폭락해 '하우스푸어'로 전락하는 부모를 보며 컸다. 집에 거금을 들이려는 이가 많지 않다. '88만원 세대'를 쓴 경제학자 우석훈씨는 지난해 12월 한 강연에서 "독신자가 늘어나는 상황인데 일가족이 필요한 공간과 독신자가 필요한 공간이 다르다보니 기존의 집들이 많이 비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를 세계적 현상으로 봤다.
이런 추세가 빈집 증가세와 맞물려 '하우스 노마드(House Nomad)족'을 낳았다. '몸 누일 공간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만큼만 집을 빌려 사는 이들이다.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는 '빈마을'이라는 이름의 커뮤니티가 있다. 동네 빈집들을 누구나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는 개방형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한다. 숙박비는 하루 2000원. 집 관리는 들어와 사는 이들 각자의 몫이다. 살림을 가져올 수도 있다. 브라질 여행을 앞두고 거주지가 마땅찮게 된 청년, 조용한 곳에서 학위논문을 쓰고 싶은 대학원생 등이 산다. 이들에게 집은 '잠시 머무는 공간'일 뿐이다.
일가족의 이주나 독거노인의 사망 등으로 생기는 지방 도시의 빈집은 이런 하우스 노마드족에겐 훌륭한 안식처가 된다. '농어촌 빈집 주인찾기운동'을 벌이는 홍은숙씨는 "어떻게 하면 지방 빈집을 구할 수 있는지 묻는 사람이 많다"며 "쓸 만한 빈집은 1년에 30만원 안팎의 임대료를 받지만 무상으로 빌려주는 곳도 많다"고 했다.
빈집 활용한 지자체의 복지실험
우리보다 앞서 집값 폭락과 저출산·고령화를 겪은 일본에서도 빈집은 골칫거리다. 현재 도쿄에만 100만채, 전국에 1000만채 가까이 버려져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나가노현 사쿠시, 후쿠오카현 부젠시 등에는 빈집 관리와 임대 알선을 전담하는 '빈집은행'까지 등장했다. 우리나라 부동산 사이트 같은 홈페이지에 빈집 정보만 빼곡히 올려놓는다.
지난 5일 서울시는 '빈집 살리기'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6개월 이상 비어 있는 아파트나 단독주택 등을 민간 임대주택으로 바꿔 저소득층에게 제공하는 정책이다. 개보수 비용의 절반, 최대 2000만원까지 서울시가 대주고 나머지 비용은 2%대 이자로 싸게 빌려준다. 처치 곤란한 집을 가진 이들과 그런 집도 없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취지다.
집을 집으로만 써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사례도 있다. 지난해 대구 중구에서는 빈집을 텃밭으로 꾸미는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인근 경북대 학생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마을 분위기가 달라지고 범죄 걱정도 줄었다고 한다. 도시의 빈집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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