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을 힘을 다해 달려야 하는 이유
살아 남기 위해 초원을 숨차게 달려야 하는 가젤과 역시 살기 위해 초원을 전속력으로 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사자를 생각하노라면 역사학자 토인비가 자주 인용하곤 했던'청어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언제부턴가 영국에서는 아침식사에 일반인들도 싱싱한 청어를 먹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데는 한 가지 흥미로운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청어를 잡은 다음 대형 수족관에 청어의 천적인 곰치를 함께 풀어놓는 것입니다. 사납기로 소문난 육식 어종을 같은 수족관에 풀어놓자 청어들은 곰치에게 잡아 먹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대부분의 청어들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미꾸라지 양식장에 천적인 메기를 집어넣으면 당연히 일부 힘없는 미꾸라지들은 메기의 밥이 되지만 살아남은 미꾸라지들은 더욱 통통하게 살이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토인비는 혹독한 환경이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청어 이야기를 통해 자주 설파하곤 했습니다. 토인비 하면 떠오르는 '도전과 응전'의 대상으로 쓰이기에 청어는 일종의 원조 아이디어 제공자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중국에는 거대한 대륙을 가로지르며 도도히 흐르는 두 개의 강이 있습니다. 양자강과 황하강이 바로 그 강들입니다. 양자강은 기후가 온후하고 땅이 비옥하여 농사짓기에 천혜의 환경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황하강은 높은 산맥과 가혹한 환경으로 매년 범람이 반복되어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히는 거칠고 난폭한 강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대 중국문명이 탄생한 곳은 양자강이 아니라 황하강이었습키다. 안락한 환경이 아닌 척박한 환경이 오히려 위대한 인류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입니다. 가혹한 환경은 그 속에서 사는 이들에게 엄청난 시련과 고난을 안겨 줍니다. 또한 그러한 혹독한 조건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지는 이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자연과 역사는 매번 우리에게 묻곤 합니다. 우리가 살아남고 번성하는 데 주변 환경은 어떤 변수로 작용하는 것일까? 유리한 환경과 불리한 환경은 과연 어떤 것이 생존에 더 좋은 것일까?
이 질문은 민족이나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통용됩니다.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극도로 불리하고 잔혹하다면 그것은 내가 성장하고 발전하는데 걸림돌일까 디딤돌일까? 지금 나에게 닥친 이 감내하기 힘든 고난과 시련은 넘을 수 없는 절망의 절벽일까, 아니면 넘어야 할 희망의 통로일까?
사자와 가젤이 서로 살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듯이 청어와 곰치가 살아 남기 위해 죽어라고 쫓고 쫓기듯이 우리 또한 살아가기 위해 각자 끊임없는 사투를 벌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는 사자일까 아니면 가젤일까? 아니 나는 사자이고 싶은가, 아니면 가젤이고 싶은가? 하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자이든 가젤이든 날마다 달려야 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합니다.
달리는 이유가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든 아니면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든 아침에 일어나면 살기 위해 다시 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너무 서글프게 들리는가? 그런 삶이 너무 고달프다고 생각하는가? 나 혼자만 그렇게 사는 것 같아 더욱 슬퍼지는가?
아닙니다. 잘 몰라서 그렇지 사람들은 저마다 다 달리고 있습니다. 다만 달리고 있는 동기와 목적이 제각각 다를 뿐입니다. 가장 위험한 것은 아예 달릴 생각을 접고 주저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천적의 먹이가 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열심히 뛰는 것을 너무 고단해하지 마세요. 뛴다는 것은 생명이 펄펄하게 살아있음을 스스로 확인하는 것이며 심장이 더욱 뜨겁게 꿈틀대고 있음을 알려주는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뛰면서 꼭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뛰고 있는 것일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 뛰는 것일까, 아니면 도약하기 위해서 뛰는 것일까? 남들 뒤쫓아가느라 헐레벌떡 뛰고 있을까, 내 길을 가느라 가열차게 뛰고 있을까? 먹고살기 위해 뛰고 있는 것일까, 꿈을 이루기 위해 뛰고 있는 것일까? 죽지 못해서 뛰는 것일까, 눈부신 삶을 향해 뛰는 것일까?
세상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달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약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는 길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처한 악조건을 적극적으로 타개하다 보면 생존의 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결국 각자 주어진 환경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진정 '강한 놈'입니다.(출처 : 싸이월드 `정균승의 테마여행` 중에서...일부 발췌 각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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