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1)

사람을 잡아먹는 무서운 세상이 온다-정균승 군산대 교수

배셰태 2013. 10. 31. 22:17

 

16세기 영국의 작가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라는 표현을 썼다. 사람이 양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양이 사람을 잡아먹다니. 무슨 그런 해괴한 일이 있었단 말인가. 

 

그 자초지종을 알아 보면 이렇다.14세기에 유럽 전역을 휩쓸고 지나간 흑사병으로 인해 엄청난 사람들이 죽었다. 영국의 인구도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자연히 전반적인 수요가 줄어들자 생산한 농산물이 남아돌고 가격은 계속해서 떨어졌다. 지주들은 농사를 지어서 수지를 맞추기가 힘들었다. 

 

마침 영국에서는 이미 15세기 들어 모직산업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농작물 생산으로는 이윤을 남기기가 갈수록 어렵게 되자 지주들은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머지않아 그들은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 땅을 갈아엎은 다음 그곳을 목초지로 개간해 거기서 모직의 원료인 양털을 생산하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땅에 울타리를 치고 함께 데리고 일하던 소작인과 농노을 내쫓고 양을 키우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생계의 터전을 잃고 길거리로 내몰렸다. 졸지에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는 사람들이 영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저 유명한 인클로저(Encloser)운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울타리를 둘러치다’ 는 뜻의 인클로저는 경제적 이익을 좇아 사람들을 몰아내고 양을 기르던 당시 영국의 세태를 반영하는 슬픈 말이다. 그런 사회를 풍자하여 토마스 모어는 자신의 책에서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풍자적인 비유를 사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500년이 지난 21세기 들어 우리 주변에는 다시 사람을 잡아먹는 해괴한 일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그 주역이 양이 아니었다. 자동화라고 하는 괴물이 사람들을 덮쳤다. 생산 현장에서는 노동자 대신 기계와 로봇 그리고 전자제어장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무실에서는 첨단의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들이 사람들의 책상을 빼내고 있다. 블루칼라로 불리던 생산직 노동자들과 화이트칼라로 지칭되던 사무직 노동자들이 자동화 시스템에 의해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불행의 그림자는 그들에게만 드리워진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생산직 및 사무직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들자 그들을 관리 감독할 관리직의 역할 또한 비례적으로 줄어들었다. 생산직․사무직․관리직이라는 소위 산업사회 ‘고용 3인방’ 이 자동화의 거대한 파도에 동시에 휩쓸려간 것이다. 

 

공장과 사무실에 기계와 컴퓨터가 울타리를 둘러치고 사람들을 내쫓는 현상은 가희 ‘21세기형 인클로저 운동’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현상이 절대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에 나앉을 것이며, 그들은 다시는 예전에 자신이 일하던 곳으로 돌아가기 힘들 것이다. 이제 생산을 하는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로 바뀌는 세상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생산직과 사무직 그리고 관리직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제러미 리프킨이 <노동의 종말>에서 예견한 것처럼 2050년경에는 인구의 5% 정도면 산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을 충당하고도 남음이 있는 세상이 올지 모른다. 우리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고용의 개념이 달라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전통적으로 고용이란 삯을 주고 사람을 부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한 데 대한 품값으로 돈을 주고 사람에게 일을 시킨다는 뜻이 고용인 것이다. 지금까지 고용은 늘 그랬다. 고용주는 자기를 대신하여 물건을 만들어줄 사람들을 고용하여 일을 시키고 돈을 주었다. 그것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고마운 것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고용주의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사람보다 일도 잘 하고 말도 잘 듣고 품삯도 싼 기계와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고용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로 인해 오랫동안 유지해오던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밀월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평생직장은 공허한 말이 되었고, 직장에서의 퇴직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좋은 직장의 수는 갈수록 줄어드는 대신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불안하고 일시적인 직장들만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영화 <관상>의 마지막 부분에는 매우 인상적인 대사가 무겁게 흘러나온다.

 

“난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소...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바람을 보아야 하는데...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 

 

눈앞에 보이는 파도라는 현상을 바라보느라 정신이 팔려 정작 중요한 바람이라는 본질을 미처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취직하기 어렵다는 현상에만 집착하다 보면 고용의 대세가 달라졌다는 본질을 보지 못하고 살 수 있다. 이제 남이 나를 고용하던 시대는 점차 저물고 있다. 앞으로는 '내가 나를 고용' 해야 하는 시대가 부상하고 있다. 

 

어차피 일을 시키고 돈을 준다는 점에서 고용의 정의는 달라진 게 없을지 모르나, 20세기처럼 남이 나를 고용하던 시대에서 21세기에는 내가 나 스스로를 고용하는 시대로 고용의 본질이 달리지고 있다.

 

내가 나를 고용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바로 자기 스스로 '1인 기업가' 또는 '1인 창업가' 의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면접 볼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창업할 생각도 해봐야 한다는 뜻이다. 21세기형 고용의 본질은 프리랜서이자 프리 에이전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느 분야에서도 그 일이 요구하는 역량과 전문성을 충분히 갖춰 시장에서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무슨 일이 되었든 남이 시키는 일만 해서는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이 오고 있다.

 

무엇이 되었든 남과는 다른 '똑소리 나는 일' 한 가지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그것이 무엇인지 찾아나서는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도 우선시해야 한다.그것이 자동화의 시대에 잡아먹히지 않고 번영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대안이다.

 

출처 : http://blog.cyworld.com/wjdrbstmd/42254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