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통계청이 우리나라 실업률이 2.9퍼센트라고 발표했습니다. 경기가 대단히 좋다고 느낄 때나 기록될 수 있는 2퍼센트대 실업률을 달성한 것입니다.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축배라도 들어야 할 판입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청년 백수들이 넘쳐납니다. 국민이 체감하는 고용이나 취업 사정과는 그야말로 정반대인 것입니다. 왜 그럴까? 실업률 통계에 숨겨진 모순이 원인입니다.
한국의 고용 통계는 만 15세 이상 인구를 기준으로 합니다. 만 15세 이상 인구는 지난 2007년 3,900만 명에서 최근 4,100만명으로 약 200만 명가량 늘었습니다. 한국의 전체 인구는 정체되어 있는데 15세 이상의 인구가 불과 3~5년 사이에 200만 명이 늘어났다는 사실이 잘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고령화가 굉장히 빠르게 진행돼 나이 든 사람들이 점점 수명이 길어지고, 젊은 사람들이 15세 이상 경제 활동 인구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은퇴해야 할 60대 이상 고령 세대가 경제가 너무 어려워져 차마 은퇴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가게라도 열어 먹고 살아야 하고, 용돈 벌이라도 해서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주로 비정규직이나 자영업 같은 저급한 일자리의 단골손님들입니다. 반면 만 15세 이상 세대, 특히 대학을 졸업한 20~30대는 일자리를 못 찿고 있습니다. 이 젊은 세대는 안정적이고 자기가 원하는 좋은 일자리를 얻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 탓에 청년 실업률은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상태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생활이 어려워 은퇴를 미루고 저임금의 비정규직이나 자영업 등의 일자리라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고령 세대 때문에 양적인 면에서 실업률 수치가 낮아집니다. 청년 세대와 고령 세대 모두가 실제 체감하는 고용 상황이 너무 안 좋다고 느끼는 데는 이런 속사정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실업률 2.9퍼센트는 착시현상일 뿐입니다. 노인 세대의 일자리 유지가 양적인 면에서 실업률 수치를 낮춰져 그저 경제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실업률보다는 '취업률'이 경제 전체의 고용사정을 정확히 반영하는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취업률이란 만 15세 이상 인구 중에서 몇 퍼센트가 실제 취업하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한국 경제 전체를 보면 이 취업류은 거의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경제에서 고용은 일자리 숫자처럼 양적인 면의 증대뿐만 아니라 임금 수준처럼 질적 측면도 무척 중요한 요소입니다. 높은 임금의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비정규직이나 자영업 같은 낮은 임금의 나쁜 일자리가 늘어난다면 국민이 체감하는 고용시장 사정은 악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나아가 높은 임금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은 한국 경제 전체로 보아 생산성 향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뜻인데, 이는 한국 경제의 질적인 경제력이 퇴보하고 있다는 암울한 뉴스입니다.
만약 생산성 향상과 그에 발맞춰 임금이 오르게 되면 당연히 국민소득도 늘어납니다. 그러나 실제 국민 전체가 벌어들이는 국민총소득을 보면 최근 1~2년 동안 감소 내지는 정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실업이 줄어드는데 임금 총액은 늘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입니다.
정부는 이 통계들이 국제노동기구(ILO) 의 규정에 맞게 통계를 작성됐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국제 규정에 맞게 통계를 작성하고 있다는 말과 통계의 신뢰성 문제는 별개입니다. 정부는 매월 2,500만 명 이상의 경제 활동 가능 인구를 대상으로 고용 통계를 작성합니다. 그런데 매월 2,500만 명을 조사해서 취업해 있는지, 실업 상태인지 일일히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결국 극히 일부 표본조사를 바탕으로 실업 통계를 자성할 수밖에 없고, 여기서 실업 통계의 신뢰성이 손상되는 것입니다.
한국의 고용 통계가 얼마나 엉터리인지는 세금을 내는 근로소득자 통계와 비교해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1년 기준으로 연말정산 근로소득을 신고한 월급쟁이는 총 1,554만 명입니다. 또 종합소득세를 신고한 사람은 총 396만 명가량입니다. 물론 근로소득과 종합소득을 함께 신고한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중복 신고자를 포함해 이를 다 합쳐도 1,950만 명입니다.
이른바 종합소득과 근로소득 등 소득이 생기는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의 수가 1,950만 명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자영업자 중 무급 가족종사자 125만 명을 포함한다손 치더라도 2,075만 명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통계청이 발표하는 총 취업자 수는 2011년 2,424만 명에 달했습니다. 무려 350만 명이나 더 많은 것입니다.한국의 고용통계가 얼마나 신뢰성 없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정부가 신뢰성 떨어지는 실업률 통계로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자화자찬을 하기보다는 고용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고용의 질적 악화 문제를 국민에게 솔직하게 알리는 게 옳습니다. 즉, 고령화로 일자리 구조가 나빠지는데 정부가 이와 관련해 '어떻게 정책적으로 대응하겠다' 는 정책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에 옮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업률이 낮아지니까 고용사정이 굉장히 좋다고 착각하는 날엔 잘못된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집니다. 한낱 통계 수치에 현혹돼 고용시장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점인 청년 일자리, 고령화, 그리고 생계유지가 어려워진 은퇴 세대를 등한시한다면 그 대책은 한낱 땜질식 처방으로 그칠게 뻔합니다.
사람들 대부분이 죽을힘을 다해 일하고 열심히 삽니다. 너나 나나 온 힘을 다해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데도 제대로 취업이 안 된다는 것은 개인 문제라기보다는 '경제 시스템'이라는 구조적 문제 때문입니다. 개인 차원에서 일자리 문제를 대처하기가 어려운 까닭입니다. 경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결국 정치 문제로 귀결됩니다. 국민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머지않아 정치 • 경제적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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