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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천재나 영웅도 세상에 대한 완전한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배셰태 2013. 10. 8. 05:39

 

세상에 영원불변하는 진리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권위에 맹종해서는 안 됩니다. 학자들이 이론에 집착하여 자기 이론을 내세우는 것도 절대적 진리가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권위를 내세워 자신의 이론이 절대적인 것처럼 가장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이론을 따르기를 바랍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스스로 진리를 찿기보다는 절대적 권위에 따르기를 좋아합니다. 오늘날 대학에서 성행하고 있는 학문의 근친상간도 절대적 권위에 복종하는 데서 비롯된 부조리의 단면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편으로는 절대적 권위를 싫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 권위에 따르는 이유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학문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조차 신천지를 개척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 진리를 발견하기보다는 권위에 따르려 합니다.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번거로움을 피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천재나 영웅도 세상에 대한 완전한 그림을 그릴 수 없습니다. 천재들이 발견한 세간의 진리도 자신이 본 한 편의 드라마에 불과합니다. 검증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조차 개개의 이론들은 한 인간의 관점에서 비롯됩니다. 오랜 세월 동안 진리의 탑에 서 있던 지구중심설은 태양중심설에 의해 무너지지 않았던가. 이는 비단 과학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과거의 일만은 아닙니다. 오늘날에 천재 과학자들이 내세운 과학의 법칙을 뒤집는 이론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세계는 그 자체로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무지와 그릇된 상상력과 욕망과 애착이 만들어 낸 한없이 많은 인연의 화합일 뿐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노자 역시 "절대적인 존재란 없다. 인간 스스로 규정하면 인간 스스로 규정한 만큼의 한계를 가진다" 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권위도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므로 맹목적으로 추종해서는 안 됩니다. 맹목적인 추종은 독단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종교를 맹신하는 것은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운명은 초자연적인 힘으로 주어진 숙명이 아닙니다. 스스로 노력하여 쟁취하는 것입니다. 설령 천국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무위도식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영생을 좇아 종교에 목을 맵니다.

 

철학자 임어당은 "인간은 불완전 하긴 하지만 미완성의 작품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성품이므로 더는 초자연적인 힘으로 조각될 필요가 없다" 라고 하였습니다

 

지성의 최고의 위치에 있다는 철학 역시 절대적 권위를 가질 수 없습니다. 철학자들은 세상을 단편적으로 볼 뿐 전체적으로 보지는 못합니다. 공자는 공자의 입장에서 도덕성을 강조하고, 노자는 노자의 입장에서 자연스러운 삶인 무위자연을 강조합니다. 또 한비자는 한비자의 입장에서 강력한 법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것들 중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노자가 추구하는 무위자연도 필요하며, 공자가 말한 도덕성도 필요합니다. 또한 한비자가 강조한 강력한 법도 필요합니다. 인간은 성선설에서 주장한 것처럼 완전한 선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악설에서 말한 것처럼 절대적으로 악한 존재도 아닙니다. 인간은 선과 악을 넘나드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자유를 보장해 주면서도 도덕이나 법으로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한 기운이 감돌 때에는 노자의 생각처럼 마음대로 뛰어 놀게 하거나 공자의 생각처럼 최소한의 양심인 도덕에 따라 살게 해도 되지만, 악한 기운이 감돌면 한비자의 생각처럼 강력한 법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천하를 통일하고 안정되었던 한나라처럼 나라가 태평할 때는 공자의 덕이 칭송되었습니다. 하지만 전국이 전쟁으로 몸살을 앓던 춘추전국시대에는 덕을 강조한 공자가 대우를 받지 못했고, 강력한 법을 강조한 한비자가 대우를 받았습니다. 전쟁이 난무한 혼란스러운 세상을 덕으로 다스리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강력한 법 없이는 다스릴 수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사에서 어느 하나의 의견과 주장은 맹종하면 편견에 빠질 뿐입니다. 이것은 곧 세상 전체를 보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좁은 세상에서 사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진정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서로 다른 철학자들을 만나고 그 철학자들을 통해 자신이 보지 못한 세상을 깨닫고, 깨달음을 바탕으로 전체를 조망하여 점진적으로 인생의 지도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다시 조율하여 인생의 청사진을 그려 보는 사람이야말로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관습이라 할지라도 폐해가 많을 때는 과감히 타파되어야 합니다. 위대한 관습이나 법이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용의 원칙에 따르면 관습이나 법도 모두 사람이 정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일 수 없고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악법도 법이다' 라는 논리는 권력을 잡고 있는 독재자를 대변할 뿐, 공공의 이익을 위해 법을 따라야 하는 일반 국민의 생각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잃어버린 자신의 권리를 찿기 위해서는 불합리한 관습을 과감히 청산해야 합니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새로운 것들이 창의력이라는 새 옷을 입고 마구 쏟아져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합리한 관습의 굴레를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바를 좇아 자신의 방법에 따라 행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