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자기계발·동기부여外

당신이 '아는' 세상과 당신이 '사는' 세상은 다르다

배셰태 2013. 10. 6. 20:37

 

좁은 눈으로 세상을 재단하지 마라

세상은 '절대' 가 아니라 '상대' 다

생각 뒤집기의 중심은, 내가 아닌 상대

 

모든 것에는 절대는 없습니다. 기준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수많은 기준은 그저 산술적인 것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기준이 달라지면 판단도 달라집니다

 

과학은 진리일까? 수학엔 언제나 하나의 해답만 있는 걸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받아들여지기 전까지 우주의 중심은 지구였습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태양을 비롯한 행성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을 믿었습니다.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는 이단 재판에 회부되고 재판장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 는 역사에 길이 남을 한마디를 던졌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 역시 당시에는 갈릴레오의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 지금의 정설은 지동설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 오류로 판명되지 않으리라 단정할 수 있을까?

 

우리는 과학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숫자를 맹신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믿는 것은 그저 '아직까지 유효한' 하나의 패러다임일 뿐입니다. 한 시대를 규정하는 인식의 체계가 패러다임입니다. 이것은 영구불변의 존재가 아닙니다.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설명할 수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고, 새로운 상황에 대한 증거가 쌓이면 패러다임은 전환됩니다. 이전까지 진리로 여겨졌던 패러다임은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시대를 규정하는 권리를 넘겨줍니다

 

결국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전환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고, 패러다임이란 일종의 사회적 주관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은 '절대' 가 아니라 '상대' 입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절대를 내세우는 것, 그건 위태로움입니다.

 

옳고 그름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리고 사회의 규범 역시 상대적입니다 기억하세요. 우리에게 옳음은 그저 '우리의 옳음' 일 뿐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같은 사회를 살면서도 각자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합니다.

 

나아가 사람들은 옳고 그름보다 그 논쟁의 승부를 즐깁니다. 편을 지어 이야기하고 자신의 생각과 같으면 옳음이요, 나와 같이 않으면 그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옳고 그름이 모호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손바닥을 뒤집어라!' 그 일은 너무 쉽습니다. 그래서 손바닥 뒤집는 것과 같이 아주 쉬운 일을 일컬어 '여반장' 이라 합니다. 그럼 말을 바꿔봅시다. '생각을 뒤집어라!' 생활 속에서 흔히 듣는 말입니다. 그런데 생각을 뒤집는 일은 어렵습니다. 같은 행위에 대상만 달라졌을 뿐인데, 왜 무엇은 쉽고 무엇은 어려울까?

 

우리는 사물을 보면 먼저 일차적인 가치에 매몰됩니다. 일차적인 가치란 일반적으로 그것을 쓰는 방법입니다. 박을 보면 그것으로 바가지를 만들려 하고 나무를 보면 베어 목재를 쓸 생각을 합니다.

 

생각 뒤집기의 중심은 '내' 가 아니라 '상대' 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상대는 사람만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사물, 사회, 제도 등 나와 마주한 모든 대상이 상대가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전부로 압니다. 그래서 갇힙니다. 자신의 처지에 갇히고 자신의 생각에 갇힙니다. 갇혀서는 밖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르는 것인데, 그것을 거짓으로 여깁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장작이 있으면 불은 계속 타고, 이미 있던 장작도 함께 타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아는' 세상과 당신이 '사는' 세상은 다릅니다. 당신이 아는 것을 전부라 여기지 마세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 본 것보다 보지 못한 것을 생각할 때,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당신 세상의 크기도 달라집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