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치열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가?
역사는 사건의 본말입니다. 사건의 본말을 보는 것은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역사는 직관으로 기록됩니다. 나는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가? 나는 어떤 역사를 살아야 하는가? 부끄럽지 않은 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역사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두려워합니다. 직관으로 나를 보게 하는 것, 그것이 역사입니다.
수많은 책들이 동서고금의 인간 지성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우리는 그런 책들을 보통 고전(古典, classic)이라고 부릅니다. 고전은 단지 옛날 책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정신을 풍부하게, 깊게 그리고 넓게 만드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한 책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천 년이 된 옛날 책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는 현재의 책입니다.
우리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 봅시다. 나는 치열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가? 단순한 사명감으로는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없습니다. 거기에 몸과 마음을 찢는 듯한 삶의 고통과 그에 대한 극복이 더해져야만 위대한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사마천은 냉철하게 그것을 보여줍니다. 《사기》를 쓴 것은 단순히 이런 이유, 다시 말해 《춘추》를 잇겠다는 투철한 역사의식과 역사관으로서의 직업의식 때문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이것들뿐이었다면 《사기》는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마천은 장군 이릉을 옹호하다가 살아남기 위해 궁형이라는 치욕적인 형벌을 자청합니다. 그런데 사마천의 삶에서 '이릉의 화' 는 인간의 삶 전체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50만 전 정도를 바치면 궁형을 면할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돈이 없었고 도와줄 친척도 친구도 없었습니다. 바로 삶 속에서 느낀 처절한 고통, 갈등과 방황 그리고 그 모두를 극복하여 고결한 목적으로 승화시키려는 피나는 노력, 이런 것들이 사마천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마르크스에게는 투철한 역사의식과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또한 돈이 없어 두 명의 자식이 굶어 죽는 혹독한 삶의 시련이 있었습니다. 불후의 명저 《자본론》은 그렇게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도 비슷합니다. 그의 사명감에 18년간의 유배 생활이 더해져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틱하고 치열한 삶, 그러나 그것만이 역사가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역사가 있습니다. 내 부모가 나를 낳았고 내가 자라고 또다시 내가 자식을 낳습니다. 그것은 집안의 역사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녘에 잠자리에 들기까지는 하루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모두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공자가 《춘추》를 짓고 사마천이 《사기》를 지은 것은 후대에 역사적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가 없는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과거는 지나간 일들로만 보면 시간의 폐기물일 뿐입니다. 과거가 미래의 거울이 되면 지금의 나를 있게 하고 앞으로의 나를 만드는 거름이 됩니다. 치열하고 드라마틱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이 부끄럼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조금 덜 부끄럽게 살 수는 있습니다. 자신의 역사가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면 드라마틱하지 않고 치열하지 않아 보였던 내 삶이 드라마틱하고 치열해 보일 것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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