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공유·사회적 경제外

'진정한' 창조경제란-장제국 동서대 총장

배셰태 2013. 5. 20. 11:24

[시론] '진정한' 창조경제란 /장제국

국제신문 2013.05.19(일)

 

우리사회 뿌리깊은 반창조적 구조 개혁…민간의 필요에 의한 아이디어 북돋아야

 

최근 들어 창조경제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한창 혼선을 빚던 '창조경제'의 정의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리해 주어 그나마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정부 부처마다 쏟아져 나오는 '창조' 홍수는 또 한 번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창조외교", "창조교육" 등 모든 단어 앞에 '창조'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창조'를 이야기하면서도 우리가 '따라 해야 할' 나라들을 집중 거론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스라엘이 주목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이론의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한 인사가 이스라엘의 '후츠파(뻔뻔하고 당돌하다는 의미)'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는 소문이 나돌자 삽시간에 이스라엘 배우기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또한, 우리 아이들에게 좀 더 창의적인 환경을 제공하자는 취지로 도입 검토되고 있는 '자유학기제'의 경우 아일랜드의 예가 최고라며 이를 두고 찬반 토론이 뜨거워지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그뿐 아니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도 있으니, '따라 하기'가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모방을 통해 무언가 창의적인 것이 나올 수만 있다면 결과적으로 좋은 일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창조'를 이야기하고 있는 마당에 외국의 벤치마킹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이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아마도 그 부자연스러움은 작금의 '창조경제' 논의가 정부주도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창조'란 정부와 같은 누군가의 '드라이브'나 '강요'로 이루어질 수 없고, 오직 민간의 자율적 '필요'에 의해 창출되기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미국만큼 창의적인 나라가 없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벤처'라는 개념도 애초 미국에서 시작된 것이다.

 

<중략>


그렇게 본다면, 정부가 해야 할 '창조경제' 정책이란 간단하다. 외국사례를 참고해 새로운 산업을 '인위적'으로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각종 반시장적 제도적 문제를 과감히 해결하는 것이다. 그래야 민간이 자신의 아이디어가 실현될 수 있다는 '희망'과 '신념'을 가지고 도전할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실패할 구조를 뻔히 만들어 놓고는 "실패해도 괜찮다"라고 격려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창조경제'의 싹부터 노랗게 만드는 문제가 산적해 있다. 몇 안 되는 대기업의 '갑'질이 판치는 거대운영체계 위에서 돌아가지 않는 벤처는 제아무리 창의적이라 할지라도 낙오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엄연히 존재한다. 또한, 지금과 같은 지독한 수도권 중심의 국가구조에서는 '을'에 급급한 지방에서 창의 경제가 실현될 리 만무하다. 과감한 지방분권정책이 새로운 경제를 일으키는 출발점인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반창조적' 구조를 과감히 개혁하여, '모방'이 아닌 '진정한' 창조경제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