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자기계발·동기부여外

SNS시대, 레밍처럼 같이 죽을 것인가, 관계혁명으로 같이 살 것인가

배셰태 2013. 5. 17. 19:58

 

우리는 자주 '다수'와 '소수'를 혼동합니다. 다수란 그저 수적으로 많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권력구조에서 다수와 소수를 가름하는 기준은 수가 아니라 누가 더 많은 권력을 소유하고 있느냐 입니다.

 

가령 한판의 피자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피자를 일곱 조각으로 나누었는데 한 사람이 세 조각을 다른 한 사람이 두 조각을 가져가고, 나머지 두 조각을 백 사람이 나눠야 한다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다수는 백 사람이 아니라 다섯 조각의 피자를 가진 두 사람이 됩니다.

 

이때 우리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두 사람이 다섯 조각의 피자를 독차지하고 나머지 백 사람이 두 조각의 피자를 가지는 것이 옳을까? 합리적인가? 지금껏 우리는 피자가 몇 조각인지, 내가 가진 피자의 양이 얼마인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많은 수의 사람이 그러니 따라갔을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외롭고 힘들고 지친 삶을 사니, 내가 외롭고 힘들고 지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삶은 절벽으로 밀려 떨어지는 레밍(나그네쥐)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레밍보다 더 심각할 수 있습니다. 레밍의 무리에서 제일 먼저 죽는 것은 선두의 레밍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대중을 잘못 이끌었던 선두는 죽지 않습니다. 인간사회에서는 선두의 레밍이 더 많은 것을 갖고 그 뒤를 따른 대부분의 레밍은 피폐한 삶을 살게 됩니다.

 

한 마리의 레밍이 마구잡이로 뛰지 않았다면, 그 한 마리를 무턱대고 쫓지 않았다면, 아니 적어도 달리면서 어디로 가는지를 생각했더라면 레밍은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와 레밍이 다를 수 있는 결정적 차이입니다.

 

삶을 바꾸고자 하는, 인생을 재편하고자 하는 수많은 나가 소셜미디어로 모여 우리가 된다면 그 힘은 더욱 세지고 그 열기는 더욱 뜨거워질 것입니다. 관계혁명이라 함은 나와 너, 나와 우리, 나와 세상의 관계를 이해하고 관계 속에서의 나를 정립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인식은 관계혁명의 첫 단추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