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그게 뭐지? 잠깐, 아~ 큐레이터가 하는 일이 큐레이션인가?’
큐레이션(curation)이란 뭘까? 여느 사람들이라면 저렇게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일하는 큐레이터, 즉 학예사의 이미지를 연상할 것이다. 자연스럽기도 하고, 실제로도 옳은 추론이다.
하지만 오늘날 스마트 환경 속에서는 새로운 ‘큐레이션’의 의미가 부상하고 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전통적인 큐레이터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마주하는 진귀한 소장품들은 나름대로 구구절절한 사연을 품고 있다. 어떤 화석 속에는 태곳적에 세상을 활보하다 죽어 땅속에 묻힌 고생물의 이야기가, 어떤 그림 속에는 가난과 싸우며 예술혼을 투영해야 했던 어느 화가의 슬픈 인생이 담겨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런 사전 지식없이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아간다면 유리벽 뒤의 화석과 그림은 그저 기묘한 돌덩이와 물감범벅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큐레이터는 저러한 사연들을 찾아내어 전시물 앞에 설명문을 붙여 주기도 하고, 때로는 직접 나서서 해설해준다.
그것만이 아니다.
기존의 전시물들을 다시 배열하여 ‘공룡 특별전’, ‘인상주의 특별전’ 등 갖가지 새로운 테마의 전시회를 기획하고, 새로운 맥락을 부여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설명을 보고, 듣고 나서 다시 마주한 전시물 앞에서 전과 다른 감동을 받고는 한다. 바로 이 작업, 각각의 대상에 녹아 있는 정보를 읽어내어 정리하고, 새로운 맥락을 부여해 전해주는 일이 ‘큐레이션’이다.
오늘날 심화되고 있는 정보홍수, ‘빅데이터’ 시대에도 이러한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아침에 눈뜨고 나면 스마트폰부터 들고 하루 종일 SNS에서 쏟아지는 지인들의 소식을 접하고, 쌓인 e메일을 확인하고, 수많은 뉴스와 자주 가는 커뮤니티의 게시판 글들을 확인하는 행동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물론 우리 스스로도 SNS를 통해 같이 떠들며 데이터를 보태기 바쁘다. 하루 종일 이러한 일을 반복하다 못해 가까운 이들끼리 눈을 마주하고 서로의 목소리를 속삭여야 할 거실과 식탁, 침실에서까지 이런 모습이 이어지기 일쑤이다. 이렇게 우리는 매일 쏟아지는 막대한 데이터에 노출되어있지만, 그 대부분은 그저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갈 뿐이다. 이는 마치 거대한 박물관과 미술관을 단숨에 다 보겠다고 전시물 당 1초씩 눈길을 주고 휙휙 지나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 결과로 우리의 두뇌는 점점 더 새로운 데이터를 갈망할 뿐, 이것을 곱씹어 나만의 정보로 소화할 여유는 사라지고 있다. 자극적인 트윗이 타임라인에 뜰 때, 찬찬히 사실 여부를 검증해보기도 전에 재빨리 RT(리트윗)부터 날려 버린다. 부지불식 중에 우리는 그저 데이터의 복제, 노이즈의 증폭이나 하는 존재로 전락해버리고 있다.
바로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는 데이터를 응축하여 좀더 긴 시간을 들여 정보를 음미하고 통찰하게 해주는 큐레이터가 필요하다. 넘쳐나는 빅데이터의 단편을 모아 맥락을 부여해 인상 깊은 메시지로 가공해내는 그런 전문가 말이다.
‘Curation Nation(번역서: 큐레이션)’이라는 책으로 이러한 큐레이션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스티븐 로젠바움은 원래 에미상을 타기도 한 저명 TV 프로듀서였다. 그러던 그는 2001년 9/11 테러가 나고서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동영상과 증언들이 터져 나오는 모습을 보고 새삼 큐레이션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저렴한 디지털기기로 사람들은 누구나 UCC를 만들어 SNS에 올릴 수 있게 되었고, 뛰어난 검색엔진은 이들을 손쉽게 추려내어 소재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일이 예전처럼 비디오카메라를 매고 현장에 나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았다. 그리고는 많은 아마추어들이 올린 동영상을 모아 편집하고 스토리를 부여하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9월의 7일(7 Days in September)”라는 다큐멘터리였다. 이러한 새로운 형식의 다큐멘터리가 호평을 받자, 로젠바움은 아예 이러한 방식으로 디지털 컨텐츠를 ‘큐레이션’할 수 있는 기능들을 모아 ‘Magnify.net’이라는 사이트까지 운영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대상이 꼭 동영상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텍스트 정보부터 음악, 이미지 등 어떤 데이터 형식이건 큐레이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꼭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자신만이 읽어낼 수 있는 정보의 의미를 담아 응축하여 심플한 블로그 글을 통해 전달한다면, 그 또한 큐레이션이 될 수 있다.
수많은 자신만의 정보 수집 및 발신수단이 보편화된 지금, 기술의 장벽은 더 이상 문제가 될 수 없다. 이미 급속도로 발전하는 빅데이터 처리기술은 자동화된 알고리즘에 의해 상당한 수준까지 데이터를 제공해준다. 검색엔진에 적당한 키워드를 조합해 검색만 해도 연관성 높은 웹페이지 내용들이 줄줄 잘 나온다. 아이폰4S에 탑재되어 화제가 된 ‘시리(Siri)’처럼 인간의 자연어를 인식하여 궁금한 내용을 콕콕 집어주는 기술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큐레이션의 질을 가늠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이를 차별화할 이야기의 아이디어와 통찰이다. 쉽게 얻을 수 있는 1차 가공된 정보에 인식의 맥락을 풍부하게 해주는 메시지를 덧입히는 능력 – 앞으로 다양한 데이터 생산의 장벽이 나날이 낮아질수록, 다른 사람들에게 담백한 화두를 던질 수 있는 그러한 큐레이션의 능력이야말로 더욱 소중하고 가치 있는 능력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자, 오늘도 하루 종일 데이터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이제는 한발 물러서 다른 이들이 믿고 즐길 수 있는 신뢰성 높은 큐레이터로서의 능력을 키워보는 것이 어떨까? 김춘수의 시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데이터가 조용히 다가와 정보의 꽃으로 활짝 피게 할 수 있는, 그런 누리꾼들이 풍부한 인터넷 공간을 꿈꾸어본다.
삼성경제연구소 채승병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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