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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네트워크를 통해 내려지는 `나`에 대한 새로운 정의

배세태 2011. 12. 27. 10:47
 

 

 

다양한 네트워크 속에서 나는 연결된다, 고로 존재한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과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던 과정은 질풍노도를 달리던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심각하게 겪었을 과정일 것이다. 물론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지금도 여전히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자의든 타의든, 절대적이든 상대적이든,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라는 존재는 어떠한 모습으로든 그 형태가 조금씩 분명하고 단단해지고 있다 봐야 하겠다.

 

 

 


날이 갈수록 그 복잡도가 가속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나를 접하게 되고 나에 대하여 인지하게 될 타인의 존재는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이는 네트워크라는 강력한 수단을 만나 기하급수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적 변화 속에서 사회적 나라는 존재는 어찌 보면 수많은 타인과의 연결들을 통해 정의될 수 있으며, 나아가 이러한 연결들 속에서 이루어진 일련의 정의들로 구성된 연속된 공간에서 어떠한 위치를 나타내는 좌표값으로 내 존재가 단정 지어질지도 모르겠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을 남긴 데카르트가 만약 현재 사회에 다시 나타난다면 “나는 연결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정의를 새롭게 내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현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패러다임은 관계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결국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활동에 있어서 한정적 자원이라는 업보는 결국 효율성이라는 큰 숙제를 남겨 주었고, 한때 굴뚝 없는 공장, 고부가가치 등과 같은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해온 ICT 분야는 그간 기존의 산업, 문화와 사회를 효율적으로 변화시킬 하나의 수단으로 인식되며 발전해 왔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 다양한 융복합 환경의 도래에 따른 패러다임의 변화는 ICT 분야, 나아가 방송통신 분야가 더 이상 단순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가치와 변화를 창출할 수 있는 물결로 자리매김 되도록 하였으며, 이러한 환경적 변화의 중심엔 본격적인 연결, 소통을 가능하게 한 네트워크의 발달이 있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현대사회에서 연결성과 개인의 존재는 비단 첨단 ICT 분야에 국한된 화두가 아닌 사회, 문화적으로도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슈로 자리 잡고 있다. 수많은 스마트폰 사용자와 SNS 사용자들이 보여주는 강력한 심리스 연결성을 포함하여,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람들, 사람과 기기, 심지어 최근 M2M, IoT 기술이 보여주는 기기와 기기 간의 연결, 거기다 최근 아직 부분적이긴 하지만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연결성이 지니는 의미와 기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필수적인 측면이 되고 있다.

 

자유로울 때 더욱 지켜져야 할 네트워크 윤리
영화 <매트릭스>와 같은 세상을 예측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네트워크의 발달에 따른 다양한 객체 간의 연결을 통해 나라는 존재는 새롭게 정의될 수도 있을 것이고, 실제 내 존재의 연장, 확대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금 불편한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죽고 난 뒤에도 나는(또는 내 일부분은) 네트워크상의 어떠한 정보로 남아 있을 것이며 나와 직접적인 물리적 연결이 없는 그 누군가는 내 죽음을 알지 못하고 내 정보를 통해 내 존재를 인지할지도 모르는 것이다.(실제로 현재도 페이스북은 안타깝게도 단명한 먼 관계에 있는 지인을 ‘아는 사람’으로 규정, 친구의 연을 맺으라며 친구추천을 해주고 있다.)


이러한 여러 내용들을 고려해 볼 때, 네트워크상의 윤리는 좀 더 포괄적인 측면에서 그 의미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네트워크 윤리는 지켰을 때 칭찬을 받는 착한 일이 아니라 지키지 않을 때 비난과 책임을 물 수 있는 규범이 되어야 한다. 이를 반영하든 최근 모 기업은 직원 채용 시 최종 면접을 앞둔 지원자의 SNS 등 인터넷상에 남긴 기록들을 검색해 평가한다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 나는 과거와 같이 오랜 기간 누군가를 지켜보고 이해될 기회가 많이 줄어든 단편적인 연결들 속에서 비추어질 가능성이 그 양적인 면에서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연결 속에 비춰진 나라는 존재는 실제의 나보다 다양한 연결고리들로 확산되어 나갈 수 있음을 인지하고, 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켜나갈 수 있도록 좀 더 광범위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출처 : 두루누리의 행복한 상상
글쓴이 : 방송통신위원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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