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미·중 갈등과 한국의 선택] 어설픈 전략적 모호성은 미·중 모두로부터 배척당한다■■

배세태 2020. 6. 23. 20:25

[김용현의 한반도평화워치] 어설픈 전략적 모호성은 미·중 모두로부터 배척당한다
중앙일보 2020.06.23 김용현 육군협회 지상군연구소장, 전 합참 작전본부장
https://mnews.joins.com/article/23807877?cloc=joongang-mhome-Group22#home

미·중 갈등과 한국의 선택


그래픽=최종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사 흐름을 바꾼 3가지 중대 사건이 있다. 미국·소련 초강대국의 대립, 소련의 붕괴, 중국의 부상이 그것이다. 2차 대전 전승국인 미·소의 대립은 40년 넘게 냉전 시대를 이끌었다. 1991년 소련 붕괴는 탈냉전과 함께 미국을 글로벌 유일 패권국으로 만들었다. 
 
전략적 모호성은 한쪽을 선택하기 어려울 때 유용하나
실패할 경우 양쪽에서 배척당하고 적으로 돌아서게 해
미·중 신냉전 맞아 한·미동맹 기반 대외전략 확고히 하고
단기적 대중 관계 악화나 제한적 손실 감수할 수 있어야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이 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여 개방하게 되면 전체주의는 소멸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비밀경찰 유지를 통해, 중국은 공산당 일당독재를 통해, 전체주의를 유지하면서 경제 발전을 추구했다. 
  
특히 중국은 개발도상국에 주어지는 다양한 혜택 등 시장경제를 자국에 유리한 방식으로 도입하면서 고속성장을 이어갔다. 급기야 2009년 일본을 제치고 G2 국가로 등단했고 축적된 부를 군사 혁신에 집중하면서 경제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미국의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미국은 2008년 금융 위기를 맞으면서 중국 견제론이 등장했고,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집권 뒤 중국을 경쟁자·수정주의자·도전자로 표현하면서 압박과 충돌이 가시화됐다. 최근 코로나19 사태와 함께 미국인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66%를 넘어섰다. 중국 견제에 대한 집단의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미·중에 한국의 전략적 가치 높여야 
  
미·중 충돌의 예상 시나리오는 대략 3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미국이 중국의 도전을 좌절시키고 패권을 지속 유지하는 것으로, 가능성이 가장 높다. 둘째,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유일의 패권국이 되는 것으로, 가능성이 작다. 셋째, 중국의 양보를 전제한 타협안이다. 미국 국력이 중국보다 우월한 현실을 인정한, 비대칭 양극화 시대가 당분간 지속한다는 것으로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 미국은 패권 인정이라는 명분과 무역수지 개선이라는 실리를 얻고, 중국은 시간을 벌어 장기전을 통해 반전의 기회를 가지려 할 것이다. 
  
미·중 충돌 대비를 위해서는 정확한 상황 인식이 필요하다. 첫째, 역사적 인식이다. 한반도는 주변국의 세력 충돌과 세력 재편 시기에 종종 위기를 맞았다. 1592년 임진왜란은 조총이라는 신무기로 무장한 신흥 강국 일본이 기존 패권국 명나라에 도전한다는 명분 아래 발생했다. 1636년 병자호란은 신흥 강국 청나라가 기존 패권국 명나라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1950년 한국전쟁은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세력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충돌로 볼 수 있다. 둘째, 미·중 충돌은 트럼프와 시진핑, 두 사람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미국이 단순히 무역 적자 해소나 무역 우위를 점하기 위한 분쟁도 아니다. 장기적 차원의 패권 전쟁이다. 이는 향후 50년 한국의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단기가 아닌 중·장기적 인식이 필요하다. 셋째, 우리 정부는 양자택일을 강요받게 됨으로써 미·중 충돌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미·중 사이 선택의 문제는 향후 심각한 국론 분열로 나타날 수 있다. 선택을 미루거나 경계선을 택할 경우 한국의 입지가 더욱 어려움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인식 아래 대응 방향을 설정하는 게 중요하다. 첫째, 미·중 충돌로 인한 딜레마 극복을 위해서는 원칙을 세우고 전략적 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원칙은 국가의 전략적 이익에 기반을 둔다. 국가 생존과 국민 안전에 직결된 생존이익이나 사활 이익에 대해서는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반면 국가 자산이나 자원과 관련된 중요 이익이나 주변 이익에 대해서는 유연성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미·중 충돌 환경을 고려해 우리의 전략적 가치를 제고해야 한다. 경제력과 군사력에 기초한 자강력 향상, 동맹의 능력과 신뢰의 증진, 주변국과의 협력 강화 등이 우리의 전략적 가치를 높여줄 것이다. 원칙에 입각한 분명한 입장과 전략적 가치 제고는 딜레마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시켜줄 수 있다. 
  
둘째, 어설픈 전략적 모호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대량살상무기(WMD) 보유 여부를 두고 전략적 모호성을 택했다. 결국 미국의 의심을 받게 돼 전쟁을 초래했고 비참한 결과를 맞았다. 전략적 모호성은 한쪽을 선택하기 어려울 때 유용한 전략이긴 하나 치명적 약점이 있다. 실패 시 양쪽 모두에게 배척당하거나 적으로 돌아서게 한다. 2016년 사드 배치 문제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으나 미국으로부터는 동맹에 대한 의문을, 중국으로부터는 경제 보복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신냉전기에는 전략적 확실성이 유용 
  
신냉전 시대에는 전략적 모호성보다는 전략적 확실성이 더 유용하다. 생존 이익과 사활 이익은 고수하되 중요 이익이나 주변 이익에 대한 제한적 손실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미·중 충돌이 격화돼 선택의 갈림길에 설 경우 한국은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하는 대외 전략을 확고히 하고, 중국에 대해서는 단기적 관계 소원이나 제한적 손실을 감수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G2 국가이긴 하나 국력 면에서 미국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다. 중국이 단기에 미국과 대등한 능력을 갖추는 것 또한 어렵다. 
  
셋째, 미·중 충돌 장기화와 향후 우리에게 미치는 민감성·중요성을 고려해 미·중 갈등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야 한다. 엄중한 대응 원칙과 함께 우리의 전략적 가치를 어떻게 높여서 국가 생존과 번영을 유지할 것인지, 정부와 관련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미·중 충돌에 대비한 국가 전략과 미래 전략을 수립할 수 있도록 조직해야 한다. 미래는 준비된 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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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충돌 속 정권 아닌 국가 이익 고려한 결단 절실

미·중 충돌의 본질은 무역 전쟁이 아니다. 미래를 둘러싼 패권 전쟁이다. 미·중 충돌은 봉합과 악화를 반복하면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져들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유의미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지난 500년간 신흥 세력이 지배 세력에 도전한 사례는 16번 있었으며 그중 12번이 무력 전쟁으로 이어졌다. 새로 부상하는 세력이 기존 지배 세력을 대체할 정도로 위협적일 경우 무력 충돌로 이어지는 현상은 법칙에 가깝다. 미·중 두 나라의 역사적 괴리, 가치와 전통의 차이는 화합이 어려우며, 전쟁으로 향하는 길은 더욱 매끈하게 닦여져 있다는 것이다. 
  
미·중 충돌 관련 양국의 전략도 확연하게 다르다. 미국의 전략 목표는 중국의 도전을 좌절시키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중국의 고립과 분열이라는 기조 아래 경제력뿐 아니라 정치·외교력, 군사력, 정보력, 첨단기술력까지 앞세운 물리적 강제력이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홍콩·티베트·신장위구르·대만 문제 등 체제와 이념에 기반을 둔 심리전과 분열전, 그리고 동맹 결속을 통한 중국 봉쇄 등 총공세에 나설 태세다. 
  
반면, 중국의 전략 목표는 중국몽(中國夢)의 실현, 즉 미국을 제치고 글로벌 패권국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내부 체제 결속과 주변국 관리로 미국의 전략을 차단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상대적 열세인 물리적 충돌을 피하면서 일당독재 장기 집권이라는 체제의 특성을 활용할 것이다. 4년마다 대통령을 선출하는 미국에 비해 시간은 자기편이라는 인식 아래 장기전·심리전· 여론전에 집중할 태세다. 
  
첨예한 미·중 충돌 속에서 전략적 모호성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다 양쪽 모두를 적으로 만드는 치명적 위험을 자초할 수 있다. 반면 전략적 확실성은 한쪽으로 편중돼 반대쪽을 적으로 만드는 위험이 있다. 그러나 양쪽 모두에게 배척당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 둘 중 강한 쪽을 선택하게 되면 이를 지렛대로 반대쪽의 위험을 더 많이 줄일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정권 이익이 아닌 국가 이익 차원의 결단과 혜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