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뱅모 칼럼]'보수'는 때려치고 '우파'는 삼가자...우리 자신을 '자유공화 시민'이라 부르자

배세태 2018. 1. 11. 09:45

[뱅모 칼럼]'보수'는 때려치고 '우파'는 삼가자. 우리 자신을 '자유공화 시민'이라 부르자

펜앤드마이크 2018.01.10 박성현 객원칼럼니스트

http://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872

 

-보수 진보 명명은 근본부터 잘못된 것
-우파 좌파는 역사성 있지만 저들은 좌파도 못 된다
-'보수'는 때려치고 '우파'는 삼가자
-우리 자신을 '자유공화 시민'이라 부르자


1.

 

'보수 vs 진보' 구분틀은 개족보다. 보수의 반대말은 리버럴이며 진보의 반대말은 반동이다. 유럽과 북미에선 '보수 vs 리버럴'이라 부른다. 그러니 원산지의 기준에서 보면 '보수 vs. 진보'는 개족보다. 상대가 스스로를 ‘진보’라 부르려면 우리를 ‘반동’이라 불러야 한다. 상대가 우리를 ‘보수’라 부르려면 스스로를 ‘리버럴’이라 불러야 한다.

 

그런데 원산지 유럽•미국의 '보수vs 리버럴' 구분 자체도 개족보다. 왜?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아버지 에드먼드 버크는 당대의 리버럴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공화당의 뿌리는 미국 자유당(휘그, 리버럴)이며, 공화당이 배출한 첫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원래 골수 휘그(리버럴)이다. 예를 들어 링컨이 평생 탐독했던 책이 넷인데 이중 최소한 하나는 전형적인 리버럴 취향이다. 링컨은 성경, 셰익스피어, 유클리드(그리스 수학자), 애드가 앨런 포우를 탐독했다. 포우는 19세기 데까당 문학(허무주의 문학)의 비조다. 예를 들어 ‘악의 꽃’을 써서 유명해진 보들레르는 사상적으로는 포우의 손자 쯤 된다.

 

유럽•미국의 정치 흐름은 ‘보수 vs. 리버럴’로는 해독할 수 없다. 오직 [지속과 변화의 균형점을 모색하고 실현하기 위해 필사적 노력을 하는가?]를 기준으로 살필 때에만 그 미묘한 흐름이 해석된다. ‘변화와 지속 사이의 균형과 조화’---이게 흔히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사표로 꼽히는 에드먼드 버크와 아브라함 링컨의 정신이다.

 

<중략>

 

이렇듯 원산지 유럽•미국을 둘러 봐도, 이른바 '보수주의의 태두'들의 행적에는 우리가 아는 '보수'의 얼굴과, '리버럴'의 얼굴이 엮여 있다. 지속이 필요할 때엔 '보수'의 얼굴이며 혁신을 감행할 때엔 '리버럴'의 얼굴이다.

 

야비한 조선 땅의 천박한 정치꾼들은 툭하면 '따듯한 보수'를 찾는데, 이는 따듯한 게 아니라 얼어 죽기 십상인 개소리다. 따듯은 무슨 따듯? 정치에 대해선 따듯하냐 차냐를 따져선 안 된다. 현실일 뿐이다. ‘따듯한 보수’가 아니라 ‘변화와 지속의 조화•균형’을 찾아야 한다.

 

우남 이승만이 '보수'인가? 땡전 한 푼 보상하지 않고 왕실 재산을 몰수하고 왕실을 없앴고, 휴지가 된 토지공채를 주고 농지개혁을 했으며, 교육을 진흥시켰고, 온갖 제도를 만들었고, 무지막지한 방법으로 왜색 대처승들을 전국 모든 절에서 내쫓아낸 장본인이다. 어마무시한 리버럴 개혁가다. 그가 만든 정당의 이름 자체가 '리버럴 당'(자유당)이다. 물론 이때의 리버럴은 우드로 윌슨을 끝으로 삼은, 고전적 리버럴이다. 요즘의 야리꾸리한 PC(정치도덕 완장질) 리버럴과는 사뭇 다르다. 오바마, 힐러리 류와는 완전히 다르다...

 

박정희가 '보수'인가? 천지사방에 도로를 뚫고 항구를 만들고 전기를 공급하고 공업화를 이루어내고 핵가족화를 가속시킨 사람이 '보수'인가? 아니다. 획기적인 산재보험, 의료보험을 도입한 사람이 '보수'인가? 아니다... 그는 '군복 출신의 리버럴'이다.

 

우남 이승만과 박정희는 당대엔 보수가 아니라 혁신가였다. 그러나 그들이 만들어낸 작품--대한민국과 경제성장--이 소중히 지켜야 할 자산이 됐기에 이제 와서 '보수'라 부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겼을 뿐이다.

 

<중략>


2.

 

'우파 vs. 좌파'는 그나마 낫다. 역사성이 있다. 우파는 '혁명에 반대하는 세력' 내지 '과격파에 반대하는 세력'이란 뜻이다. 프랑스 혁명 때 과격학살 집단인 자코뱅이 의사당 왼쪽에 몰려가서 자리 잡자, 이에 따라가지 않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의사당 오른쪽에 앉게 됐다. 그래서 좌, 우가 생겨났다.

 

그런데 우리가 스스로를 '우파'라 부르면 상대를 '좌파'라 인정해 주는 꼴이 되고 만다는 문제가 있다. 아니, 김일성 사교 전체주의 집단이 무슨 좌파씩이나 된다는 말인가? 그들에 의해 조종받는 종북이 무슨 좌파? 그냥 악질 부역집단일 뿐이다. 종북에 의해 추임새 받는 친북이 무슨 좌파? 그냥 기회주의 부역세력일 뿐이다. 친북에 의해 부추김 당하고 있는 햇볕 동조가 무슨 좌파? 그냥 스톡홀름 신드롬(인질로 사로잡힌 사람이 인질범에 대해 호감을 가지게 되는 심리) 환자일 뿐이다. "북한도 사람이 사는 곳이며, 합리적 판단을 할 줄 아는 우리민족"이라고 믿고 햇볕에 무릎 꿇으면 내 인생이 편해지고 안전해진 것 같은 착각을 가질 수 있다. 이게 바로 야비한 조선땅의 수 천 만 명을 사로잡고 있는 햇볕 미신이다. 핵 인질범에게 호감을 느끼는 인질 심리...

 

마음 같아선 나 스스로를 '우파'라 부르고 싶지만, 상대가 '좌파'씩이나 될 깜냥이 아니기에, 우파란 용어를 삼가게 된다.

 

그렇다면 상대는 무엇인가? 꿀꿀이죽 개밥통이다. 누덕누덕 알록달록 기운 넝마일 뿐이다. 왜? 상대의 핵심 전략은 가족해체, 사회해체, 국가해체다. 해체(deconstruction)자체가 그들의 속내다. 해체해서 뜯어먹는 것.... 창조할 줄 모르는 것..이게 상대의 본질이다.

 

<중략>


3.

 

이러니 좀 생각있는 사람은 구역질을 심하게 일으킬 수 밖에 없다. 구역질이 바로 우리의 징표다. 우리는 구역질에서 출발한다.

 

진실이 경멸당하는 세태에 대한 구역질.... 가진 자들이 조금 더 가지려고 각박 야멸차게 인색 꼴값 떠는 것에 대한 구역질.... 조직노동자가 귀족화되어 스스로를 '착취당하는 민중'이라 코스프레하는 것에 대한 구역질...72년전에 망한 일제에 대한 적개심을 세뇌해서 정치자산으로 삼으려는 친일파 드립에 대한 구역질....죄 없는 여성대통령에게 ‘최태민 악령에 홀린 아바타’라는 무당•관심법에 따른 죄목을 뒤집어 씌워 탄핵하고 감옥에 처넣은 것에 대한 구역질…. 무엇보다도, 인류 최악 최후의 전체주의 대량학살 체제를 '우리민족'이라 감싸고 도는 행태에 대한 구역질....

 

우에에엑~~~

 

그러나 구역질은 그 자체로서 목표가 되지 못 한다. 이는 증상일 뿐이요 출발점일 뿐이다. 어디로? '보헤어(Woher)'--이게 정의되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의 토사물 속에 파묻힌 채 세상을 저주하는 존재로 주저앉을 뿐이다.

 

구역질한다고? 그래서 구역질하지 않는 자들보다, 햇볕에 취한 자들보다, 친북보다, 종북보다, 간첩보다 '나은 존재'라고? 천만에! '나은 존재가 될 수있는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그런 존재가 되려면 [오롯이 우리 자신의 것인, 가치와 원칙]을 창조해야 한다. 이를 섬겨서 지켜내야 한다. 이 가치와 원칙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그때 우리는 창조자가 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꿀꿀이죽 개밥통을 걷어찰 수 있게 된다. 그때 우리는 자유로워 진다.

 

우리 구역질 환자들은, '진실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염원을 바라봐야 한다. 우리 각자가 '깊은 영혼의 우물을 가진 존엄한 개인'이라는 믿음을 간직해야 한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제도를 원칙으로 삼은 ‘공화국’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비전을 바라봐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꿀꿀이죽 개밥통을 넘어설 수 있다.

 

이같은 진실존중을 향한 염원, 개인 존엄성에 관한 믿음, 자유민주 공화국에 대한 비전을 가진 우리를 무엇이라 이름하면 좋을까? 답은 우남 이승만과 박정희에 있다. 우남의 '자유'와 박정희의 '공화'를 따와서 '자유공화'(liberal republicanism)라 부를 수 있다. 이때 자유는 ‘존엄한 개인’을 가리킨다. ‘공화’는 사회•국가 공동체를 가리킨다.

 

<중략>


다시 말한다. '나'들의 집합이 공동체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나'들이 '진실존중'을 공통된 원칙으로 삼는 것뿐이다. 이게 니체(Nietzsche) 철학의 핵심 메시지다. 나의 진실과 너의 진실, 나의 관점과 너의 관점이 충돌할 때, 이를 묶어줄 유일한 통로는 '진실 모색'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진실존중을 다른 말로 '머리의 정직성'(intellectual integrity)이라 부른다. 양심에 털이 났는지, 심장이 거무죽죽한지, 양심을 까보고 심장을 갈라보기 전에는 알 길 없다. 그러나 머리가 정직한지 아닌지는 언행으로 판단할 수 있다. '머리의 정직성'은 20세기에 들어서야 널리 쓰이게 된 용어다. 인류가 발견한 최신 도덕률이 바로 '머리의 정직성'이다. 진실존중이다.

 

거짓의 힘에 밀려, 박근혜대통령을 감방에 들어앉은 제물로 바쳤다면, 우리는 마땅히 이 정도 화끈한 도덕에 대한 깨우침은 이뤄 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제 우리 구역질 환자들이 자유공화 시민체(citizenry)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꿀꿀이죽 개빕통을 홍대 뒤편 으슥한 골목에 처박을 때가 됐다. 가족해체•사회해체•국가해체를 겨냥한 갖가지 풍조를 긁어 모은 누덕누덕 알록달록 넝마를 불태워버려야 할 때가 왔다.

 

이미, 진실존중의 지평에서 자유공화 시민체(citizenry)가 탄생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태극기를 폼으로 흔들었던 게 아니다. 그 열정, 구역질, 분노가 자유공화 시민 정신으로 발효되어 가는 향긋한 냄새가 풍겨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