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패망과 함께 종북도 끝장
뉴스타운 2016.10.10 백승목 대기자
http://m.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5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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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당세도 70년, 종북발호 50년, 김정은 학정 5년이 끝장날 때
북한은 10월 10일이 소위 ‘노동당창건’ 71주년이라고 하여 요란하게 기념해 왔다. 하지만 이날은 가짜 당 창건일이다.
<중략>
천년을 갈 것 같던 공산혁명종주국 소련이 70여 년 만에 해체 될 수밖에 없었듯이 10월 10일이 당 창건기념일이 됐건, 7월 1일이 당 창건기념일이건 70년 3대 세습독재가 김정은 대에 이르러 파멸에 직면하여 수명이 다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자연사가 될 것이냐, 안락사를 시킬 것이냐, 자폭자멸을 할 것이냐 이다.
현재 북한이 직면한 파국은 일본 오사카 기쁨조혈통 천출(賤出)소생 김정은이 날조된 백두혈통(白頭血統)을 사칭 성골(聖骨)행세를 하면서 최고 존엄으로 군림하여 당. 군. 정의 골간이자 버팀목이었던 군부를 능멸하고 빨치산가계를 냉대하면서 무자비한 학살극과 극단적 공포정치를 자행함에 따라 스스로 단명 재촉을 한 탓이다.
특히 지난 8월 말~9월초에 불과 300mm정도 폭우로 인한 함경북도 두만강수계 수재(水災)는 김일성 빨치산 활동 김정일의 출생지로 날조 한 백두산과 삼지연일대 혁명사적지에 전기 공급을 원활케 하기 위해 서둘러서 건설한 백두산청년영웅발전소가 붕괴위기에 처하자 무단방류함으로 인해 함경북도 주민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이는 얼핏 보기에 풋내기 도살자 김정은이 저지른 무모한 인재(人災)처럼 보일지 몰라도 좀 더 깊이 드려다 보면, 김정일이 1997년 1차 고난의 행군을 통해서 함경도 자강도 양강도 산간벽지에 유배 보낸 복잡계층 300만 명을 청소한 것과 마찬가지로 함경북도 오지에 거주하는 적대계층을 물로 쓸어버린 계급청소 대학살사건인 것이다.
어쨌든 무모한 도발과 핵 도박으로 인한 극도의 고립, 경제파탄과 절대 식량부족, 학살극과 공포정치에 대한 반감과 함경북도 수몰로 인한 6만여 이재민의 하늘에 치솟는 원망과 구천을 떠도는 수백명의 사망실종 원혼(冤魂)이 원시 야만적 김정은 3대 세습살인 폭압독재 체제를 더 이상 용납지 않게 됨으로 인해 ‘김정은 제거’외엔 답이 없게 됨에 따라서 3대 세습체제는 “안락사”의 기회조차 놓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서 “북한이 망하면 우리도 함께 망한다”며 비명을 지르는 DJ잔당과 “북한(김정은)도 형제”라며 군량미 제공과 수해복구지원을 주장하는 이적반역 국회프락치와 노동당대남공작 난수표 암호지령방송 직후 부터 사드배치 반대와 백남기 시위로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는 종북 반역폭력세력들에게도 종말이 닥쳤음을 알게 된 것이다.
전작권 환수, 연합사해체, NLL무력화를 관철하려고 발광하던 친노 패거리, 맥아더동상파괴와 사드배치 반대 반미투쟁에 혈안이 된 종북폭도, 국가보안법폐지와 국정원해산에 목을 매던 ‘(남조선사회)민주화’세력, 연방제통일과 개성공단 금강산 퍼주기 재개 ‘우리민족끼리’족속 등 북한 3대 세습체제옹위 전위를 자처하던 ‘남조선 적지(敵地)에 있는 김정은의 동지’들의 단말마적 비명이 들려오고 있다.
항간에 떠돌고 있는 김정은의 6차 핵실험 불장난, 로켓발사 불꽃놀이 자행이나 추가도발설과 상관없이 북한 노동당 70년 세도 , 남한 내 3대혁명역량 종북반역 50년 발호, 김정은 5년 학정이 북한내분으로 인한 자폭이 됐건, 한미연합 선제타격 외과수술이 됐건, 김정은 제거 참수작전이 됐건 막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됐다.
김정은도 형제라며 군량미제공과 수해복구지원을 주장하는 자들의 떨리는 목소리와 애절한 눈빛에서 ‘우리민족끼리’를 넘어서 마치 ‘북에 남겨 두고 온 피붙이’에 대한 염려와 애착의 그림자를 보는 것 같아 입맛을 제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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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참고요]
■[북폭 시나리오] 한국 반대해도 미국은 때릴 수 있다
미래한국 2016.10.07 전경웅 객원기자
http://blog.daum.net/bstaebst/18662
한국 사회에서는 20년 넘게 “클린턴 미 행정부의 북핵 선제 타격을 막은 것은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강한 반대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회담 덕분”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 2015년 12월 펴낸 회고록 <핵 벼랑에서의 나의 여정>에는1994년 6월 ‘북폭 중단’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북핵 시설 선제 타격은 북한이 영변 원자로의 폐연료봉을 재처리하기 시작한 뒤 닷새 뒤인 1994년 6월 16일 정오로 예정돼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군사작전 개시 시간를 불과 한 시간가량 앞두고, 당시 개인 자격으로 북한을 찾아 김일성과 만나고 있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역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이로써 클린턴 행정부는 ‘북핵시설 선제 타격’ 작전을 연기했다고 한다.
1994년 6월과 같은 뒤통수를 맞지 않으려면, 오바마 미 행정부는 물론 차기 미 대통령과 철저히 공조하는 것은 물론 어설픈 민족주의적 감정에 젖어 북한 편을 들지 않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이를 바탕으로 북한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 능력을 어떤 수단으로 제거할 것인지 선제적으로 제안하는 것이 한반도에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나지 않도록 하는 방법으로 보인다.[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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