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빈곤 형태, '타임 푸어'
레디앙 2016.10.04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http://www.redian.org/archive/103051
"빨리빨리"와 "바쁘다, 바빠"는 시간적 가난의 징표
전통 사회나 초기 산업사회 같은 경우에는, ‘빈곤’의 정의는 간단합니다. 의식주 해결이 언제 어려워질지 모를 사람, 즉 언제 배가 고프고 언제 유망민 신세가 될지 모를 정도로 물질적으로 “없는” 사람은 바로 “빈민”, “궁민”으로 분류되곤 했습니다.
사실, 이런 전통적 의미의 빈곤은 한국에서만 해도 1970년대까지, 즉 보릿고개가 존재했던 시절까지는 꽤나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라’와 ‘기업’들은 비록 부유해져도 민중들의 삶이 그만큼 좋아진 건 전혀 아니니까 지금도 약 15~20%의 한국인들은 전통적 의미의 빈민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도입으로 전통적 의미의 빈곤은 다시 핵심부에서도 증가돼왔지만, 대개는 산업사회의 발전에 따라서 다수에게의 ‘빈곤’의 의미는 달라집니다. 유럽의 복지국가라면, 기본적 의식주 해결을 국가가 어느 정도 보장해줍니다. 한데, 꼭 배가 고플 확률은 낮아도 신자유주의로 넓어진 중하층은 기아 대신 불안에 시달립니다.
<중략>
절대적 빈곤에서 불안, 타임 푸어로
불안은 중하층의 생명을 갉아먹습니다. 그런데 자본의 먹이사슬에서 그것보다 약간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중중, 중상층을 봐도, 불안은 줄어들어도 그 대신에 “시간적 빈곤”이 그 자리를 메꿉니다. 언제 잘릴지 몰라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나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없고 광적으로 빠른 업무 리듬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이런저런 질환들을 계속 얻어가면서, 시간적 압박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보내는 것은 중중/중상층 “타임 푸어”들의 모습입니다.
<중략>
“잘사는 노동자”라는 게 바로 자기 시간은 거의 없고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기업’이 식민화한 노동자라는 점을, 제도권 언론들은 당연히 이야기하려 하지는 않죠. 87%가 직장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한국의 직장인들에게는 보통 처자와 함께 저녁식사를 집에서 함께 하는 것은 이루기가 어려운 꿈입니다.
정규직이라 해도, 한국 직장인의 통계적인 평균 귀가 시간은 7시 5분이며, 평균 하루 노동시간은 거의 11시간입니다. 평균 주당 야근일은 3,5일이고요…. 대한민국의 직장인은, 정규직이 돼도 평균 6시간밖에 수면하지도 못합니다. “슬립 푸어” 직장인들의 사회는 대한민국이죠.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지만, 사실 “빨리빨리”와 “바쁘다, 바빠”는 현대판 가난의 상징이죠. 시간적 가난, 여유의 빈곤 말이죠.
<중략>
신자유주의는 시간적 빈곤을 고착화시키고 말았습니다. 세계적 신자유주의 노동분담 체제에서는 한국의 위치란 제조업 위주의 착취공장입니다. 이 착취공장에서는 시간적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은 지배층의 일부 이외에는 거의 없을 것이고요.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들이 일어나지만, 한국만큼 “타임 푸어”들의 일상이 고된 나라도 찾아보기가 힘들죠. 신자유주의적 체제를 반대하는 혁명으로 나서자면 “여유 있는 자유의 삶을 위하여!”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은 맞을 것입니다!
'시사정보 큐레이션 > 국내외 사회변동外(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혁신의 길] 지식의 향연, `제17회 세계지식포럼`오늘 개막 (0) | 2016.10.11 |
---|---|
노동당세도 70년, 종북발호 50년, 김정은 학정 5년이 끝장날 때가 왔다 (0) | 2016.10.10 |
한국 工大, 연구는 않고 권력싸움만…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그들만의 리그 (0) | 2016.10.08 |
"삼성전자 쪼개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 2차 공습 (0) | 2016.10.06 |
[뉴욕 금융리더포럼] 세계금융시장 `트리플 탠트럼` 공포 (0) | 2016.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