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1)

[21세기판 맬서스의 메시지] 문제는 인구 감소가 아니라 창조적 지식 감소다

배셰태 2016. 7. 19. 06:40

“문제는 인구 감소가 아니라 창조적 지식 감소다”

머니투데이/테크엠 2016.07.18 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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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서스는 경제학의 역사에서 지대론, 일반적 과잉생산론, 지배노동 가치론 등 중요한 업적을 남긴 사상가였다.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경제 사상가가 아니라 인구 사상가로 더 유명하다.


그의 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은 초판을 포함해서 4회의 개정판을 냈는데, 이 가운데 인구증가의 법칙을 선언한 1798년 초판과 이를 방대한 자료로 입증한 1803년 2판의 내용이 주로 거론되어 왔다.

 

인구론이 출판됐던 시기는 근대 자연과학이 발전하고 계몽주의 철학이 초석을 다지고 있던 시절이었다. 당시 지식인들은 인류의 진보 가능성에 대해 낙관론 일색이었다. 인구론은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초판의 부제에서 나타난 것처럼, 그 책은 당시 낙관론의 대표 주자였던 고드윈(Godwin)과 콩도르세(Condorcet)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그가 말한 자연의 법칙은 뉴턴이 행성과 물체의 세계에서 그렸던 조화로운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겉잡기 힘든 인구 증식과 식량 자원의 부족 속에서 만나게 되는 빈곤과 기아의 세계였다.


토지와 자원은 한정되어 있지만 끝없이 생식 본능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그 참상은 우연이 아니라 일종의 필연(必然)처럼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맬서스의 주장에 더욱 경악했다.

 

훗날 생물종의 다양성을 설명할 원리를 연구하던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은 자연 선택의 원리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다.


자연 법칙은 부적합한 종은 무자비하게 절멸시키고 적합한 종은 활발히 번식하도록 한다. 창조론과 대립 관계에 있는 진화론이 오히려 성직자였던 맬서스의 사상에서 도움을 받았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어쨌든 이후 한동안 맬서스의 사상은 잊혀졌다. 동시대에 그와 정반대의 입장에서 논쟁을 벌였던 리카아도가 승리하면서 적자(嫡子)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산물의 가치가 거기에 투하된 노동(embodied labour)의 양이 아니라 교환되는 상대 생산물의 노동량, 즉 지배 노동(commanded labour)의 양이라는 그의 생각은 훗날 효용가치론,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일반적 과잉생산이 불가피하다는 케인즈의 이론을 통해 되살아났다.

 

인구의 비정한 자연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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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우리나라 산아제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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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증가와 식량 생산 사이의 불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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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절벽’ 위기에 놓인 한국 경제


한국 경제의 위기론 가운데 인구 감소설이 있다. 이 설은 2020년대에 우리나라의 인구구조가 인구 절벽(population cliff)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인구 절벽이란 주력 소비연령층인 40~50대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현상을 말한다. 주식 시장의 변동을 주로 인구 변화 요인으로 설명했던 해리 덴트(Harry Dent)가 제안한 용어다.


인구 감소가 경제 위기를 불러온다는 우려는 사고의 패러다임을 생산이 아니라 소비 측면에 두었을 때 불가피한 면이 있다. 부동산 수요와 소비 지출의 감소를 우려하며, 소비 진작책을 경제 회복의 중심에 두는 정책은 한결같이 그런 사고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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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그 안에서 보다 많은 비율의 사람들이 선도적이고 창의적인 지식으로 무장하고 있다면
인구 감소는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지금 청년들은 왜 이른 나이에 결혼하지 못하는가?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 게리 베커(Garry Stanley Becker, 1930~2014)는 사람들이 결혼하고 출산을 하려는 동기는 분명히 경제적 편익과 비용에 대한 기대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런 의미에서 베커는 맬서스의 인구 사상을 충실히 계승했다. 많은 청년들이 미래에 자녀를 부양할 자원을 획득할 기회가 부족하다고 기대하면서 자연스럽게 결혼 포기라는 예방적 억제력이 발동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자녀의 출산과 양육에서 예상되는 고통과 비용을 포기하는 대신 개인의 삶에서 기대할 수 있는 즐거움에 자족하게 된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소위 3포 세대와 나홀로족이 늘어나는 현상은 어떻게 보면 인구의 자연법칙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이미 결혼한 부부가 아기를 낳지 않으려 하는 것도 이 법칙을 따르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1970년대 이후 개발경제와 고성장 시대에 고용을 급속히 늘렸던 것과 같은 현상은 다시 도래하기 힘들다. 비정규직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과거에 사람들이 행했던 많은 일들을 컴퓨터가 맡아서 처리하는 현상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한편 많은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할수록 인구 고령화는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이는 세대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소득 창출 기회가 부족한 청년은 노년층이 저축해 놓은 자산에 계속 의존하게 되고, 생산 없이 오직 소비하기만 하는 노년층은 청장년층의 미래 소득 일부를 연금의 형태로 끝없이 갉아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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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문제의 해법을 주로 소비의 관점에서 보기 시작하면, 이 갈등은 해결할 길이 없다. 출산율 감소는 불가피하다. 저성장 역시 불가피하다.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노동 시장의 구조는 이미 통째로 바뀌었다. 이제 기업은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탁월한 지식’ 찾는다.


토지의 생산력이 인구의 증식력을 제약한다는 맬서스의 명제는 지금도 유효하지만, 오늘날 그 토지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흙이 토지인가?


지금은 지식이 과거 토지의 역할을 점점 대신해 가고 있다. 정신적 토양이라는 말은 결코 비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실이 되었다. 심지어 작물 생산조차도 이제 예전처럼 제한된 토지의 신비한 생산력에만 의존하던 시대를 벗어나 생화학 지식을 통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기업은 단지 부동산이 많다고 가치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얼마나 탁월한 지식을 갖춘 인력들로 하여금 일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어 놓았느냐에 따라 가치가 좌우되는 시대다.

 

정말로 우려할 일은 인구 감소가 아니라 지식 감소다. 아무리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그 안에서 보다 많은 비율의 사람들이 선도적이고 창의적인 지식으로 무장하고 있다면 그런 인구 감소는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들은 어디서나 고용되거나 스스로를 고용하면서, 끝없이 소득을 창출할 것이다.


반대로 증가한 인구의 상당수가 평범하고 낡은 지식만 지닌 채 오직 과거의 사업만을 반복하고 소비를 통해서 일상을 영위하는 데에만 주력한다면, 그들은 당장 고용되기도 힘들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소득을 창출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소비를 통해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 경제는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

 

자연은 생산력의 제약 하에 ‘잉여’를 결코 남겨두지 않는다. 이 현실이 무자비해 보일지 모르지만, 맬서스나 다윈은 이 현실을 ‘필연(necessity)’으로 인식할 것을 주문했다. 원한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슘페터는 20세기를 배경으로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야말로 경제발전을 주도하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인구가 이렇듯 감소하는 상황에서 창조적 다수(creative majority) 육성에 주력하지 않는 한, 경제의 몰락은 필연이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21세기판 맬서스의 메시지다.

 

<중략>

 

<본 기사는 테크M 제39호(2016년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