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제4차 산업혁명' 준비하자
경향신문16.06.22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시민환경연구소 소장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222202015&code=990100
지난봄에 있었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은 세기적 사건으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당시 생겨난 인공지능 신드롬은 지금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바둑에 관한 한 최정상급 실력의 인간과 기계를 맞붙여놓은 대결구도의 흥행성과 인간이 승리할 것이라는 기대를 보기 좋게 배반한 결과는, 이 사건이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 알파고 이후 한국이 ‘인공지능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외신 기사들은, 한국 사회가 이 사건으로 받은 충격의 깊이를 말해주고 있다.
알파고의 활약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가까운 충격을 받은 이유는 뭘까. 먼저 현기증 나는 기술발전 속도를 들 수 있다. ‘딥러닝’이라는 기계학습법이 제시된 지 10년 만에 인간을 위협하는 경지에 도달한 것은 인공지능 연구의 놀라운 성과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맞춤형 정보제공처럼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왔다. 얼마전 구글의 예술창작 인공지능 ‘마젠타’의 피아노곡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제 알파고의 계산능력을 뛰어넘어 신이 인간에게만 준 선물로 인식돼왔던 창의성까지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이 분야 전문가들은 인간의 능력과 유사한 수준의 인공지능이 완성되는 시점을 2040년 전후로 보고 있다.
<중략>
기계와의 대결에서 패색이 짙어졌을 때 시작되는 또 다른 공포가 있다. 그건 우리도 언젠가는 폐기처분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인간의 ‘집단 기억’에는 이익을 위해서라면 새들과 물고기의 집을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일을 서슴지 않았던 ‘정복의 역사’가 각인돼 있다. 인간의 뇌리에 지배보다 공존의 기억이 더 강렬하게 남아 있다면 기계를 보는 눈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을 경쟁자가 아니라 부족한 점을 메워주는 동반자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같은 맥락에서 올 초 세계경제포럼의 주제였던 제4차 산업혁명도 조금은 낙관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제4차 산업혁명과 지구생태계의 위기가 거의 동시에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0년간 지구가 제공하는 자원의 60%가 파괴됐고 기후변화는 세계경제를 위협하는 최대 위험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따라서 지구공동체의 운명은 제4차 산업혁명의 성격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히도 제4차 산업혁명은 가장 ‘생태적인’ 산업혁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여기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개별화된 주체와 정보를 촘촘하게 엮는 초연계사회의 모습은 ‘생태 그물망’의 원리와 닮았다는 것이 첫 번째다. 제4차 산업혁명은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 그리고 생물학적 세계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는 우리가 생산하고 소비하고 다른 사람들, 다른 종들과 관계 맺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제4차 산업혁명의 주역이 재생에너지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거대한 변화의 준비는 역설적이게도 기술의 한계에 대한 수용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과거 세 차례의 산업혁명은 자연은 무한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복리를 위해 존재한다는 고정관념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것이 이번에도 되풀이된다면 인간은 기계와의 대결에서 영원히 패배자로 남아야 할지도 모른다.
'시사정보 큐레이션 > 국내외 사회변동外(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브렉시트 후폭풍] 신고립주의…세계는 각자도생 시대 (0) | 2016.06.26 |
---|---|
[브렉시트 쇼크] 사상초유 악재…세계가 어떤 길 갈지 아무도 모른다 (0) | 2016.06.26 |
[메이커의 시대] 제4차 산업혁명의 진원…풀뿌리 제품 혁신, 메이커 운동 (0) | 2016.06.26 |
한국 정부의 주자학적 규제들이 유망 산업을 착착 말아 처먹고 있다 (0) | 2016.06.25 |
기본소득을 인공지능과 로봇이 준다네...뉴질랜드 오클랜드시의 ‘공존 실험’ (0) | 2016.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