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의 먹고사니즘] 고르게 상속하는 사회는 어떤가
한겨레21 제1103호 2016.03.16(수)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경제평론가
http://h21.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41350.html
일하는 청년층보다 은퇴 연령층 소득 증가율이 높은 선진국… 기계에 근로소득 잠식당하는 청년에게 ‘기초자본’을 주자
이세돌과 알파고 사이 세기의 바둑 대결을 지켜보며 나는 엉뚱하게도 최근 접했던 한 통계를 떠올렸다. 2015년 20∼30대 가구소득이 사상 최초로 줄어들었다는 조사 결과였다. 어쩌면 알파고가 20∼30대의 경제적 안녕과 충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도 모르게 걱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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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청년 전체의 위기
지난 2월5일 서울역에서 ‘흙수저당’ 회원들이 청년고용세 법안 제정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20~30대 가구소득이 사상 최초로 줄었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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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2030세대의 가계소득이 줄었을까?
기본적으로는 고용 불안이다.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9.2%로 역대 최고 수준을 보였다. 고용된다고 해도 질이 좋지 않았다. 취업을 해도 비정규직 일자리거나 생계형 창업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비정규직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해 학교를 졸업하거나 중퇴하고 첫 직장을 잡은 청년층 400만 명 가운데 20.3%(81만2천 명)는 1년 이하의 계약직이었다. 신규 채용 청년층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은 지난해 8월 현재 64%였다. 2008년 54% 수준이었으니 그새 10%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심각하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런 현상이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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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근로소득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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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젊은 세대만 고생하는 게 아니라니 안도라도 해야 하나? 거꾸로 더 걱정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약간의 노력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인류 전체가 매달려 획기적인 해법을 찾아야 하는 고차방정식에 맞닥뜨린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 지금 세계가 직면한 현상, 즉 일하는 젊은 층이 은퇴 고령층에 비해 실질소득이 뒤처지는 현상은 전쟁이나 대형 재해 등 예외적인 때를 빼면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역사상 처음이다. 그것도 선진국 전체가 공통으로 맞닥뜨린 문제라니 더 충격적이다.
젊은 세대의 특성은 주된 소득이 근로소득이라는 점이다. 40대를 넘어서면서 늘어나는 자본소득이나 사업소득 등이 젊은 세대에는 비중이 낮다. 또한 노령층이 가진 연금소득 등 이전소득이 젊은 세대에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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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력 팔던 모델의 몰락
불안정 노동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청년들은 일해도 가난하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 류우종 기자
어쩌면 경로는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근로소득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미 노동시장에서 일정한 지위를 획득한 40~50대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등을 통한 정치력과 조직 내에서 이미 획득해둔 의사결정권을 바탕으로 그 불안정성을 받아안지 않고 외부로 떠넘긴다. 그 불안정성은 따라서 고스란히 30대 이하 노동자들에게로 넘어간다. 한편 60대 이상 고령층은 복지제도를 둘러싼 오랜 싸움의 전리품으로 이미 확보해둔 안정적 연금소득을 유지하거나 강화한다. 결과적으로 30대 이하 노동자의 소득은 점점 더 불안해지고 나머지는 상대적인 안정성을 유지한다.
그런데 왜 근로소득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했을까? 이 질문이 바로 이세돌과 정면으로 맞붙은 알파고와 세대 간 소득 격차 통계 사이의 접점이다. 기계와 소프트웨어가 인간의 노동을 본격적으로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노동시장에서 높은 보상을 받던 고급 노동력을 대체하고 있다. 그러면 노동시장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노동자가 처한 상황은 점점 더 열악해진다. 특히 신규 진입 노동자, 즉 젊은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임금 인하 압박이 세진다. 그러다보니 이 계층의 주류를 이루는 젊은 세대의 실질소득이 정체 또는 하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인간이 노동력을 팔아 임금을 받아 살아가는 모델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세대 간 불평등은 사회에서 더 깊은 불평등을 가져온다. 자신의 소득만으로 부를 축적하기가 어려워진 상태이므로, 젊은 세대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가 있어야만 재산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상속 여부가 계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된다. 이른바 ‘금수저’ ‘흙수저’론이 나오게 된다.
근로소득 체계가 깨어져간다면 여기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문제가 풀릴까? 임금을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만 생각하던 이들에게는 난감한 일이다. 로봇으로 인해 많은 일이 대체되면서, 필요한 일을 찾고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중요한 과업이 됐다. ‘정당한 대가를 받는 일자리’ 자체가 희귀한 현상이 되어가는 것이다.
영국의 유명한 불평등 연구자인 앤서니 앳킨슨 런던정경대학 교수는 모든 성인에게 ‘기초자본’을 제공하자는 제안을 한다. 앳킨슨은 <21세기 자본론>으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정경대학 교수의 스승으로도 불린다. ‘괜찮은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는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소규모 사업이나 자신의 역량 강화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소규모의 자본을 성인이 되는 순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사회의 상속’ 개념의 기초자본 제도를 도입하자는 제안이다.
앳킨슨은 ‘상속’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전 세대가 축적한 자산은 다음 세대 모두가 나누어 가질 권리를 갖고 있다는 관점이다. 상속의 불평등성이 문제라면, 모든 사람이 같은 금액을 상속받게 한다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사람이 같은 출발선에 서게 되지 않겠느냐는 아이디어다.
영국에선 이미 시작했다
실제 2005년 영국 정부는 비슷한 효과를 가진 정책을 도입했었다. 영국은 당시 ‘어린이신탁기금’(Child Trust Fund)을 설치해, 2002년 9월1일 이후 태어나는 어린이들에게 250파운드를 모두 지급하고 세금 혜택이 있는 기금 계좌에 넣도록 했다. 부모는 자녀의 계좌에 추가로 기여금을 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7살이 되는 시점에 250파운드를 더 넣어주었다. 이 기금은 해당 어린이가 만 18살이 될 때 인출해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작은 액수이지만 성인이 되는 순간 자산을 갖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하는 제도였다. 앳킨슨은 이보다 훨씬 더 큰 의미 있는 규모의 자산을 성인기 진입과 동시에 제공하자고 제안한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녹색당 등의 제안도 비슷한 맥락이다. 자동화와 로봇의 노동 대체로 충분한 보수와 안정성을 제공하는 ‘괜찮은 일자리’ 자체를 제공하기 어려워진다면 아예 임금이 아닌 기본소득으로 살아가는 사회를 디자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대체하고 나면, 그 수많은 바둑기사들의 일자리는 사라지고 마는 것 아닌가. 이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 질문이 지난해 소득이 깎이고 경제적 고통과 불안 속에 있는 대한민국 20~30대 미래 세대 위에 다시 한번 겹쳐진다. 세기의 바둑 대국을 지켜보고 나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부쩍 더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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