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무늬만 규제개혁'에, 대통령도 국민도 속았다
조선일보 2016.03.04(금) 이병태·KAIST 경영대학 교수(KAIST청년창업투자지주 대표)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3/03/2016030302315.html
박근혜 정부는 경제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 노력을 진행 중이지만 규제 개혁 없이는 경제 활성화도, 성장 잠재력 확충도 불가능하다고 본다. 지금 진행되는 제4차 산업혁명은 인터넷과 정보 통신 산업에 국한된 변화를 가져왔던 닷컴 시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은 기술 기업들이 혁신을 무기로 삼아서 핀테크, 원격 진료, 금융, 의료, 호텔 등에 진군하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당연히 기존 산업과 충돌이 벌어지기 때문에 현재의 규제와 기득권 보호 장치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새로운 산업이나 일자리는 생겨나기 힘들다.
국가 경제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는 시대 개혁의 흐름에 따라 대통령은 "규제는 암 덩어리이고, 물에 빠뜨려 살아남지 못하는 규제는 모두 철폐하라"고 강하게 지시했다. 하지만 이런 대통령의 절규에도 관료들은 개혁의 시늉만 내는 양상이 지속되고 있다. 규제 개혁을 추진하는 이유는 소비자에게 더 좋은 선택 기회를 제공하고 산업에 치열한 경쟁을 도입해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런 규제 개혁의 본질적 목적에 부응하지 못하는 '무늬만 규제 개혁' 정책이 양산되고 있다. 규제 개혁이라고 발표되는 것마다. 등록제나 허가제의 틀 속에 남아 있어서 정부 관료들이 규제 권한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감지된다.
예를 들어 우버(Uber)는 전 세계 360개 도시에서 차량 공유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서비스 예외 지역이다. 차량 공유 서비스는 일반 개인들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택시 호출 앱과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우버는 최근 3년 사이 뉴욕시에서 3만명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었다. 개인의 유휴 차량을 활용해 택시보다 요금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택시를 잡기 어려운 시간이나 장소에서 손쉽게 이용할 수 있어 소비자 편의도 높아졌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공유 차량이 도입된 지역에서 음주운전 사고로 인한 사망률이 3.6~5.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택시 면허가 없는 사람은 유료 운송 서비스를 못하도록 금지해 차량 공유 서비스가 자리를 못 잡고 있다. 개인의 참여를 봉쇄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도 불가능하다. 최근 국토부가 규제 개혁 사례로 내세운 심야 콜버스 또한 택시·버스 등 기존 업체만 할 수 있어 새로운 경쟁의 도입과 일자리 창출의 가능성은 거의 봉쇄되어 있다.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 민박업'에 대한 규제 개혁 사례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기존 민박업과 형평성을 감안한다는 이유로 등록제를 도입했다. 기존의 규제 틀 속에 집어넣겠다는 뜻이다. 게다가 1년에 120일만 방을 빌려줄 수 있게 한정했다. 집주인들은 월세와 전세 등에 비해 경제성이 떨어지니 굳이 공유 숙박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
아폴로 11호는 1969년에 달나라에 갔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우주정거장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기술적·제도적으로 가능하다고 해도 경제성이 없으면 새로운 산업이 생기지 못한다. 그런데 관료들은 새로운 산업이 태동하려고 하면 경제성을 없애는 갖가지 단서를 달면서 규제 개혁이라고 홍보만 열심히 하는 형국이다.
물론 새로운 산업의 문제점에 대해 규제가 필요한 때도 있다. 하지만 새 비즈니스가 소비자와 사업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규제를 마련하는 것과 신규 사업은 무조건 문제가 있다고 보고 사업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막아버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접근 방식이다. 이런 사이비 개혁을 하고도 관료들은 "대통령의 뜻에 따라 열심히 개혁했다"고 시행 건수를 보고할 것이다. 이 와중에 대통령도 속고 국민도 속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답답함을 피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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