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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한쪽선 창조•공유경제 내세워 창업 장려…다른쪽에선 '규제입법' 뒤통수

배셰태 2016. 1. 18. 10:42

정부 지원 '스마트 벤처'도 규제 칼날에 싹 잘릴 판

조선일보 2015.01.18(월) 정철환 기자

http://m.biz.chosun.com/svc/article.html?contid=2016011702241&facebook

 

한쪽선 창조경제 내세워 창업 장려… 다른쪽에선 '규제입법' 뒤통수

 

- 카풀 서비스 '콜버스' 서울시, 국토부에 위법성 검토 요청… 시범서비스 한 달 만에 폐업 위기

- 중고차 매매 서비스 '헤이딜러' 오프라인 경매장 없으면 처벌… 법률안 통과되자 서비스 잠정 종료

- 벤처업계 비판 쏟아져 "정부, 청년 창업 활성화한다면서 기존사업자 이익 지키기만 골몰"

 

콜버스라는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 서비스가 있다. 대중교통이 끊긴 새벽 시간에 같은 방향으로 귀가하는 사람들을 미니 버스에 모아 태워주는 일종의 '카풀' 서비스다. 자정 무렵 택시를 잡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서울 강남 인근의 직장인들이 편리하게 이용하면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중소기업청의 '스마트벤처창업학교' 지원 사업에도 뽑혔다.

 

하지만 이 서비스는 지난달 11일 시범 서비스를 시작한 지 한 달 여 만에 폐업 위기에 몰렸다. 서울시가 "시(市) 조례와 운수사업법에 어긋난다"면서 국토부에 위법성(違法性) 검토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인허가권을 쥔 지자체가 이렇게 나오자 요금 징수를 대행해줄 전자결제 업체들은 콜버스와 계약을 맺지 않고 있다. 박병종 콜버스랩 대표는 "서울시가 육성하는 '공유경제' 비전에 걸맞게 시작한 사업인데 곤혹스럽다"면서 "이대로 가면 곧 자본금이 바닥나서 폐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창조경제' '공유경제'를 내세워 창업 활성화를 주도하는 중앙·지방정부가 실제로 창업을 하면 "기존 법규에 어긋난다"며 규제하는 황당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창업하라"며 수천억원 예산을 지원하면서도, 다른 쪽에서는 이렇게 등장한 신사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이다. 창업가들은 "도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정부 지원까지 받았는데 불법 서비스라니

 

콜버스뿐만이 아니다. 지난 5일에는 헤이딜러라는 중고차 매매 서비스가 '서비스 잠정 종료'를 선언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간편하게 자신의 중고차를 팔 수 있도록 해주는 이 서비스는 지난해 중소기업청의 '투자 연계 멘토링' 사업 지원 대상으로 뽑혀 창업 지원금 1억9000만원을 받았다. 미래창조과학부도 이 서비스의 우수성을 인정해 '창조경제 우수사례'로 선정했다.

 

하지만 이 서비스의 문을 닫게 만든 것도 정부였다.

 

<중략>

 

헤이딜러 운영사인 피알엔디(PRND)컴퍼니 박진우 대표는 "법안이 공포되는 순간 (회사와 직원들이) 범법자가 되는 셈이라 미리 서비스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바이카 등 비슷한 서비스를 하는 다른 업체도 서비스 지속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신사업 규제에 성장 기회 놓치기도

 

이들뿐만이 아니다. 금융과 기술을 결합한 핀테크(Fintech) 서비스를 준비해온 업체들도 금융 규제가 제때 풀리지 않아 시장 진입에 오랜 시간을 허비하거나 한동안 서비스가 폐쇄되기도 했다. 카카오의 간편결제, 토스의 송금 서비스, 8퍼센트의 P2P(개인 대 개인) 대출 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 이석우 카카오 대표는 "(규제 때문에) 서비스 기획 후 출시까지 2년이 걸렸다"면서 "카카오 정도 되는 기업도 이런데 작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국내 신생 벤처들이 창의적인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규제를 풀기 위해 애쓰는 사이에 해외에서는 비슷한 핀테크 서비스가 속속 시장을 선점해가고 있다. 또 국내 시장에서도 기존 금융회사들이 대거 뛰어드는 바람에 선발 업체의 이점이 대폭 줄어들었다.

 

벤처 업계에서는 "규제 권한을 쥔 중앙·지방정부의 관료들이 기존 사업자들의 이익과 자신들의 권한 지키기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콜버스에 대해서는 기존 택시 사업자들의 불만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서비스가 확산되면 이른바 '황금 시간대'인 자정 무렵에 택시를 타려는 손님들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정(市政)이 어느 한쪽에 치우칠 수 없다 보니 택시 업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듣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국토부의 자동차 경매 관련 '청부입법(請負立法)' 역시 경매장을 보유한 현대차·롯데·SK 등 대기업들이 최대 수혜자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 벤처업계 대표는 "정부는 청년 창업을 활성화한다면서 한쪽에서는 이와 정반대되는 일을 하고 있다"며 "이런 환경에서 누가 벤처 창업에 뛰어들겠느냐"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