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1)

ICT(SW) 후진국 한국은 최강국 중국에게 배우는 걸 절대로 부끄러워 말라

배세태 2015. 10. 2. 14:14

[박정훈 칼럼] "중국에게 배우는 걸 부끄러워 말라"

조선일보 2015.10.02(금) 박정훈 부국장·디지털뉴스본부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0/01/2015100104597.html

 

고객이 제품 갖고 놀게 하는 參與 경영으로

質 향상시킨 샤오미의 베끼기 아닌 혁신 內需로
기술 축적한 중국을 逆모방 하는 게 우리 현실
우월감 털고 위기감 가져야

 

시작 11년 만에 세계 최강으로 부상한 중국 고속전철의 초고속 약진이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다.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이것을 '공포감'으로 표현했다. 지난주 한 포럼에서 그는 "죽어라 뛰는데 차(중국 기업)가 휙 지나가는 느낌을 아느냐"며 자신을 떨게 하는 공포의 실체를 토로했다. 모바일 분야에서 중국이 우리를 "무려 2년" 앞섰다며 곧 엄청난 해일로 덮쳐올 것이라고도 했다. 카카오톡을 만든 대한민국 혁신의 아이콘도 중국발(發) 공포엔 속수무책인 듯했다.

 

김 의장이 예로 든 게 IT 업체 샤오미(小米)다. 창립 5년 된 이 신생 기업이 천하의 삼성전자를 위협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조차 못했다. 지난해 샤오미는 중국 스마트폰 시장 1위로 올라섰다. 부동(不動)의 중국 1위를 달리던 삼성은 여기에 밀려 4위까지 추락했다. 처음엔 저가(低價) 베끼기 공세려니 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샤오미 쇼크는 놀라운 혁신의 결과였다. 애플과도 다르고 삼성은 흉내조차 내기 힘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한 것이었다.

 

샤오미의 경영 모델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사례 연구에 나오는 어떤 선진 기업보다 인상적이다. 핵심은 그들이 외치는 '사용자를 친구로'란 구호에 압축돼 있다. 보통의 기업에 고객이란 돈지갑을 열게 해야 하는 대상이다. 반면 샤오미는 고객과 친구처럼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전략을 구사한다. 고객들이 친구가 돼 비즈니스 프로세스 전반을 도와주도록 한다는 개념이다. 키워드는 '참여'다. 샤오미는 연구·개발과 서비스, 경영 판단에까지 고객을 참여시켰다. 고객에게 제품이 아니라 '참여감(感)'을 팔겠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샤오미 스마트폰의 OS(운영체제)는 일주일마다 새롭게 업데이트된다...<중략> 지금까지 어떤 혁신 기업도 이렇게 거대한 고객 집단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자발적 참여의 비결은 고객들을 '놀게' 하는 것이다. 샤오미는 고객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갖고 논다'는 개념으로 접근한다. 샤오미는 참여감을 제공한 '놀이터'를 펼쳐놓을 뿐이다. 그러면 고객이 스스로 찾아와 놀고 즐기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준다는 것이다. 샤오미의 하드웨어는 아이폰을 베꼈을지 몰라도 경영 철학은 어느 첨단 기업보다 독창성이 넘친다. 고객층이 충성스럽기로 유명한 애플도 이런 참여형 경영은 생각하지 못했다.

 

이미 샤오미는 세계적 혁신 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MIT는 '세계에서 가장 스마트한 50대 기업' 중 2위에 샤오미를 올렸다. 애플은 16위였고, 삼성은 순위에 들기조차 못했다. 삼성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지만 샤오미처럼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판 자체를 바꾸는 능력은 없다. "공포감을 느낀다"는 김범수 의장의 실토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중국 하면 우리는 싸구려 모조(模造) 이미지를 떠올려 왔다. 빨리 베껴 싸게 파는 주특기로 우리를 추격하지만 수준은 한 수 아래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젠 중국발 공포의 실체가 양(量)에서 질(質)로 바뀌었다. 거의 대등하게 우리와 품질을 겨루면서 어느 분야에선 이미 우리를 능가했다. 그들을 배우고 때에 따라선 베껴야 할 분야가 속속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소속 의원들에게 '축적의 시간' 이란 책을 나눠주었다. 자기 분야 최고 전문가인 서울대 공대 교수 26명이 "목에 칼이 들어왔다"며 산업 기술의 위기를 증언한 책이었다. 김 대표가 왜 이 책에 꽂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오싹했던 대목은 역시 중국 공포였다.

 

집필에 참여한 교수들은 중국이 '생산 공장'을 넘어 '혁신 공장'이 됐다고 진단했다. 중국이 거의 전 산업 영역에서 세계 최초 모델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떤 분야에선 우리가 중국에서 배우는 것이 이미 상식이 됐다는 것이다. 기술 축적에 필요한 시간적 제약을 중국은 거대한 공간(내수 시장)의 힘으로 극복해냈다.

 

이미 일부 제조업 현장에선 중국 제품을 베끼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 교수는 국내의 한 중전기(重電機) 단지를 찾아갔을 때 목격한 충격적 장면을 전했다. 연구소 한쪽에 중국 제품을 갖다 놓고 그것을 본떠 제품을 설계하더라는 것이었다. 이런 '역(逆)베끼기' 현상은 점차 뚜렷해질 것이다.

 

서울대 공대 교수 26명의 조언은 냉혹하다. 우리가 중국에서 배워야 하는 현실을 "절대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중국산 '짝퉁'을 비웃었던 우리가 이제 중국을 모델 삼아 베껴야 하는 운명의 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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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축적의 시간》관련기사]

 

■[사설] 서울대 工大가 토로하는 '메이드 인 코리아'의 위기

조선일보 2015.09.22(화)

http://blog.daum.net/bstaebst/15974

 

서울대 공대 교수 26명이 선진국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처지가 된 한국 산업 기술의 위기를 경고하는 책을 펴냈다...교수들은 우리가 창조 역량을 발휘하는 단계로 도약하지 못하면 얼마 안 가 중국에 추월당할 것이라고 보았다.

 

우리에게 없는'창조적 개념 설계' 역량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밀어붙인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경험과 지식을 축적하고 숙성시킬 때 비로소 확보할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단계에 와 있다.

 

모두가 '과거의 한국형 성장 방정식이 끝났다'는 엄연한 사실을 빨리, 제대로 받아들이고 학교 교실과 연구소, 기업 현장, 정부가 근본부터 바뀌어 나가야 한다. 말로만이 아니라 진짜로 변화와 혁신을 반기고 실패를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20년, 30년 뒤를 봐야 하고 국민은 인내를 갖고 시행착오를 감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