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1)

부의 '낙수 효과',  ‘부자의 돈’은 아래로 흐르지 않는다

배셰태 2015. 6. 22. 11:08

‘부자의 돈’은 아래로 흐르지 않는다

KBS 2015.06.22(월) 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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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29

 

그동안 우리 경제를 지배하다시피 한 경제 기조는 ‘낙수효과(Trickle-down)’였다. 재벌과 고소득층에게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면 그 돈이 물처럼 흘러내려가 서민과 저소득층도 잘 살게 된다는 주장이다. 정부와 경제단체들은 이 낙수효과 이론을 재벌과 부유층에 더 많은 돈을 몰아주는 경제 정책을 정당화하는 중요한 근거로 사용해 왔다.

 

그런데 이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는 중요한 연구 결과가 신자유주의의 첨병 역할을 해 왔던 IMF(국제통화기금)에서 나왔다. IMF가 1980년부터 2012년까지 전 세계 159개국의 방대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소득 상위 20%의 소득이 1%P 늘어나면 경제성장률이 0.08%나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에 비해 소득 하위 20%의 소득이 1%P 늘어나면 5년 동안 경제성장률을 0.38%나 끌어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부자들의 소득이 늘어나면 낙수효과에 의해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도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 성장률이 추락했고, 저소득층의 소득이 늘어날 때 경제성장이 더욱 가속화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나 재벌이 그토록 힘주어 외쳐왔던 ‘낙수효과의 기적’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 왜 러시아 농부는 옆집 소를 죽여달라고 했을까?

 

<중략>

 

“저 옆집에 사는 부자 농부의 소를 죽여주세요.”

 

러시아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다. 자신이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옆집 소를 죽여 달라고 하는 다소 어이없는 결말이지만, 인간은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낙수효과를 믿는 사람들은 이 같은 인간의 본성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즉, 소수의 부자들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독차지하더라도 서민들은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만 따지기 때문에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이 돌아온다면 주어진 임금만 바라보며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 공정함을 추구하는 인간, 이를 부정한 낙수효과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큰 손해를 보게 되더라도 공정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관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실험이 바로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다. ‘최후통첩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실험에 참가한 두 사람을 제안자와 응답자로 나눈다. 그리고 먼저 ‘제안자’에게 1만 원을 주고 이 돈을 어떻게 나눌지 응답자에게 제안하도록 한다. 그러면 ‘응답자’는 이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한다. 응답자가 제안을 받아들이면 두 사람이 돈을 나눠 갖지만, 응답자가 거절하면 아무도 돈을 받지 못하고 게임이 끝난다.

 

<중략>

 

낙수효과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공정함을 전혀 추구하지 않고 눈앞의 자기 이익만 따지는 이기적인 존재로 간주한다. 극소수의 부자들이 과도한 몫을 챙겨가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떨어지는 낙수에 감사하며 자기 일만 한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해야만 낙수효과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인간은 정당한 몫을 받지 못하면 일에 대한 의욕을 잃고 최선을 다할 수 없게 된다. 더구나 아무리 노력해도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조차 사라지면 결국은 자포자기에 빠져 아예 일하는 것조차 포기하게 된다. 여기에 부당함에 대한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 결국 옆집 소를 죽여 달라는 소원을 비는 러시아 농부처럼 공멸의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실제로 ‘옆집 소를 죽이는 현상’이 얼마나 경제 성장에 치명적인지에 대한 경제학적 연구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중에서도 뉴욕 대학의 벤하빕(Jess Benhabib) 교수나 샌디에고 주립대학의 굽타(Dipak Gupta) 교수, 하버드 대학의 알레시나(Alberto Alesina) 교수 등은 부의 불균형이 심화되면 가난한 사람들이 매우 파괴적인 행위를 할 가능성이 커지고 경제시스템 전체의 불안정성이 심화되어 투자가 급감하고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게 된다고 경고하였다.

 

 

■ 부자는 돈을 쓰지 않는다. 다만 쌓아둘 뿐이다

 

낙수효과가 작동하지 않는 또 다른 원인은 부의 편중이 자본주의 경제의 가장 중요한 버팀목인 ‘소비기반’을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의 연구 결과, 우리나라에서 상위 10%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46%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의 48%보다는 낮지만, 일본의 41%나 프랑스의 33%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의 고도 성장기였던 1979년부터 1995년까지 상위 10%의 소득비중은 30% 정도에 머물렀지만, 시간이 갈수록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13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득의 73%를 소비에 쓰고 있는 반면, 소득 상위 10%는 고작 58%만 소비에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지금처럼 소비 부진이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상황에서 부유층이 차지하는 몫이 이렇게 급속도로 불어나면, 경제 전체적으로 소비가 줄어들어 투자가 감소하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악순환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속도가 둔화된 시기와 부의 집중이 심화된 시기가 일치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도 낙수효과를 고집하면서 돈을 계속 부유층에만 몰아주는 정책만 고수하면 어떻게 될까? 당장 먹고 살 돈이 없는 서민층은 빚을 내서라도 소비를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가계부채는 더욱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빚으로 간신히 유지되는 경제는 아주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지는 위태로운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대공황시대였던 1934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에 취임했던 매리너 에클즈(Marriner Eccles)는 이 같은 상황을 포커판에 비유했다.

 

<중략>

 

에클스의 비유처럼 아무리 빚으로 틀어막는다고 해도 극소수의 부자들만 돈을 따는 시스템이 계속되고 이를 강화하는 정책을 지속한다면 그 경제는 결코 지속 가능할 수가 없다. 포커판이 멈추게 되면 일반 국민들은 물론 그나마 돈을 따 왔던 소수의 부유층들도 손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모두가 패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모든 지혜를 모아 몰락으로 향하는 ‘게임의 룰’을 바꿔야 한다. 그것이 IMF가 우리에게 보낸 경고의 메시지다.

 

우리가 1920년대 대공황을 불러왔던 미국인들보다 더 현명할 것이라고 믿고 싶다. 아니, 반드시 그들보다 현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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