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전쟁의 진짜서막: 장기 386시대가 다가온다
경향신문 2015.05.23(토) 정용인 기자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505231429081&code=9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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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혹은 세대 구분에 대한 연구는 사회과학 영역에서 꾸준히 다뤄온 주제다. 대중적으로 세대론 논의에 불을 댕긴 것은 2007년 우석훈 교수와 박권일씨의 공저 <88만원세대>가 출간된 이후부터다. 책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20대는 88만원밖에 못 벌 세대’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88만원 세대’라는 작명에서 88만원은 책이 쓰여질 당시 비정규직 평균임금 119만원에서 20대가 벌어들이는 비율인 73%를 곱해 나온 숫자다. IMF 환란 이후 사회안전망이 제거된 승자독식 사회가 만들어졌는데, 그 첫 희생자가 당시 20대라는 것이 책의 주장이다. ‘삼포세대’는 지난 2011년 경향신문 기획보도를 통해 나온 개념이다. 만성화된 청년실업과 일자리 부족으로 20대에서 30대까지의 세대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대척점에는 광고홍보사가 만들어내고 조선일보가 적극 받은 G세대가 있다. G세대의 G는 글로벌의 약자다. 김연아와 같이 국제무대에서도 떨지 않는 진취적인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청년세대론의 가장 최신 버전이 역시 조선일보가 지난 2월 내놓은 달관세대다. 일본에서 나온 사토리(さとり)세대 개념에서 차용한 개념이다.
각종 세대론이 엄밀한 근거를 갖고 제기되는 개념인지를 두고 사회과학계에서는 비판적 의견이 나온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대론이 매력적인 것은 역설적으로 불명확성과 단순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불명확하기 때문에 온갖 것에 세대를 끌어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3년 발표한 논문에서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한 젊은이의 일탈에 눈살을 찌푸리며 ‘그 세대’를 욕한다. 한 어르신의 실수를 ‘그 세대’의 모습으로 확대한다. 세대는 누구도 될 수 있지만, 아무도 아닐 수 있다.” 세대가 또한 매력적인 것은 쉽게 ‘그들’과 ‘우리’를 가르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유행된 ‘세대론’은 특정 구조의 피해자(‘88만원 세대’, ‘삼포세대’)이거나 칭송의 대상(‘G세대’, 중앙일보의 ‘P세대’)이다. 박재흥 경상대 사회학과 교수는 2009년에 발표한 <세대 명칭과 세대갈등 담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 논문에서 “많은 경우 과도한 일반화는 어른들의 ‘우려와 기대’를 담고 있을 뿐”이라며 “세대명 남용은 설사 진보의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세대는 계급을 대신하는 연대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사진은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한 대선후보의 여의도 유세에 모여든 군중들. / 강윤중 기자
전통적인 계급론적 분석을 대신하여 세대론을 분석도구 내지는 공격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한국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아니다. 연금이나 건강보험과 같은 복지제도의 적용을 두고 전 세계적으로 벌어졌던 현상이다.
미국 후버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역임한 박종훈 KBS 기자(경제학 박사)가 낸 책 <지상 최대의 경제사기극, 세대전쟁>을 보면 보다 드라마틱한 사례들이 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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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88만원 세대론’이 사회적으로 확산된 후, 20대가 패자라면 승자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승자독식의 열매를 독식하는 세대로 지목된 것은 386이었다. 승자독식 사회에서 기득권이 된 386세대가 ‘사다리 걷어차기’를 통해 결과물을 독식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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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의 마지막 세대인 1969년생들이 50대에 진입하는 2020년, 한국 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사진은 통계청이 인구 장기예측 추계를 바탕으로 작성한 2020년의 인구피라미드(인구성장률 저위 가정). / 통계청
사실, 세대에 대한 논의는 많은 부분에서 독일의 사회학자 만하임에 빚지고 있다. 만하임의 세대개념은 ‘나이 먹으면서 보수화된다’는 식의 연령효과와는 구분해 사용한다. 만하임은 전통적인 계급의식에 대한 대체 내지는 보완하는 개념으로 코호트(cohort)라는 세대개념을 제안하는데, 특히 17세에서 25세 사이의 젊은 시절에 겪은 집단적 정치경험의 효과가 일평생 지속된다는 가설을 제기하고 있다. 이것이 코호트 또는 세대효과다. 한국에서 기존의 세대논의에는 연령효과와 코호트가 모호하게 섞여 있다.
문제는 다음이다. 386세대라는 개념이 처음 제기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386세대가 가장 주목받은 시기는 2002년 대선과 참여정부 시기였다. 2007년 보수정부의 등장과 함께 386의 전성시대는 끝난 것이었을까.
오 연구원은 논문의 결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992년부터 지난 20년간의 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세대효과가 있었는지 여부를 검증했다.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예를 들어 최근을 보면 지난 2007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 때는 세대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다시 2012년 대선 때는 세대효과가 나타난다. 386세대효과가 가장 강하게 나타난 때는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로의 결집이었다.”
한국의 나이별 인구 구성을 보여주는 인구피라미드표를 보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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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구는 비탄력적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태어난 신생아는 41만7816명이다. 이 인구는 미세하게 국제이동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더 늘어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망자가 총 숫자에서 빠지는 형태다. 앞서의 통계표에서 386세대를 60년부터 69년까지로 본다면 전체 숫자는 874만6858명이다. 전체 5139만5238명의 인구 중 17%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전체 인구수에서 이 연령대의 비중은 앞으로 드라마틱하게 늘어난다. 저출산과 고령화 추세 때문이다. 현재 낙타 등 또는 항아리 모양으로 되어 있는 인구피라미드는 위쪽으로 나이대가 몰리는 형태로 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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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은 세대간 도둑질.”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5월 1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권호욱 기자
사실 엄밀히 말해 아직 ‘386의 시대’는 오지 않았다. 조직의 수장, 대표를 일컫는 CEO는 Chief Executive Organization 즉, ‘최고의사결정권자’다. 386의 선두그룹 즉, 1960년대 초반 그룹이 이제 막 한국 사회의 의사결정그룹에 진입했을 뿐이다. 386세대의 본류는 이들의 의사결정을 보좌하는 중역의 위치에 올라서 있다. 전문가들은 386세대가 우리 사회의 명실상부한 의사결정그룹으로 올라서는 시점을 386의 마지막 세대, 즉 1969년생이나 70년생이 50대에 접어드는 약 5년 후, 즉 2020년 정도로 내다보고 있다.
386이 한국 사회의 각 영역에서 진짜로 권력을 갖게 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일단 올라서면 쉽게 놓지 않을 것이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의 언급이다. 한국 사회의 고령화 추세에 따라서 이들의 은퇴시점은 10년 이상 늦춰질 수도 있다. 일단 386이 한국 사회의 핵심 의사결정그룹이 되었을 때 이들이 권력을 쥔 시점이 길어지는 ‘장기 386시대’가 될 수 있다는 예측이다. 밑바탕이 되는 것은 여타의 연령집단을 압도하는 이들의 인구수다. 고령화사회 형태로 이행하면서 이들의 입맛에 맞게 복지제도가 손봐질 수도 있다. 해외사례도 있다. 데이비드 톰슨이 ‘이기적 세대’라는 이름으로 분석한 뉴질랜드 사례다. 이들은 자신의 생애단계에 맞게 복지정책을 만들어냈다. 가족을 이룰 때는 가족수당을, 집이 필요할 때는 주거수당을, 연금수혜가 필요할 때는 연금수당을 만들어냈다.
사실 이것은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한계다. 1인1표제에 근거한 대의민주주의는 포퓰리즘에 취약하다.......(중략).....그러나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역시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의 변화다. 앞으로 논의과정에서 더 면밀히 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전 세계적으로 세대갈등, 세대전쟁이 과거보다 빈번하게 호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상진 교수는 “그만큼 연대가 힘들어졌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세대에 대한 명명은 더 많아졌고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계급이나 젠더 민족과 같이 공동체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효력이 정지하거나 상실되어가는 지금, 공동체적 환상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세대가 아니겠느냐.” 오세제 연구원은 “386세대의 시대가 전면화되었다고 이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세대적 효과, 다시 말해 진보적 입장을 계속 견지할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라며 “확실한 것은 이들이 자신 세대의 경험을 어떻게 성찰하고 자기반성을 하느냐에 따라 한국 사회의 미래 방향이 결정될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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