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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경쟁력은 칸막이와 층계로 이뤄진 제조업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배셰태 2015. 3. 21. 08:05

[동서남북] 삼성전자의 칸막이와 層階 문화

조선일보 2015.03.21(토) 우병현 조선경제i 취재본부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3/20/2015032004104.html?outlink=facebook

 

<중략>

 

갤럭시S6는 삼성전자의 위기감을 반영하는 동시에 전략 수정 의미를 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5년 동안 갤럭시 시리즈를 앞세워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호령하면서 약점인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막대한 돈을 썼다. 특히 스마트폰 운영체제(OS)를 독자적으로 개발해 구글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하지만 지난해 1등을 애플에 빼앗기고, 중국의 샤오미에도 쫓기는 처지에 놓이자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관련 부문을 구조조정하면서 전략을 수정하려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어 독자 소프트웨어를 갤럭시S6에서 싹 걷어냄으로써 하드웨어로의 귀환 메시지를 시장에 명확하게 전달했다.

삼성전자의 변화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다. 하지만 한국 산업계에 진한 아쉬움을 남기는 선택이기도 하다. 우선 삼성전자는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무게 중심을 옮기려는 시도가 실패했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아울러 탈(脫)구글 전략을 수정함으로써 삼성전자의 미래 운명을 구글의 손에 다시 맡겼다.

또 다른 아쉬움은 삼성전자가 디지털 시대에 맞는 기업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계기를 잃어버린 것이다. 삼성전자의 경쟁력은 칸막이와 층계로 이뤄진 제조업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기에 철저한 비밀주의와 협력업체를 치밀하게 쥐어짜는 '갑(甲)' 문화가 제조 경쟁력의 핵심 요소를 구성한다. 삼성전자 리더들이 하드웨어를 제대로 만들겠다고 독하게 마음먹을수록 부서 간 칸막이는 더 높아지고, 임직원의 일과 삶의 균형은 더 일그러질 것이다. 아울러 삼성전자의 눈높이에 맞춰야 하는 협력업체의 원성도 함께 높아질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삼성전자식 하드웨어 개발 방식의 수명이 3~5년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구글의 선다 피차이 수석부사장은 MWC 행사에서 갤럭시S6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조용하게 '아라(ARA)' 프로젝트를 챙겼다. 아라는 스마트폰을 구성하는 부품 장터를 만들어 사용자가 이를 구입해 직접 조립해서 자신만의 스마트폰을 제조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아라가 본격적으로 작동하면 스마트폰 제조 생태계가 확 바뀔 것이다. 벌써부터 지구촌 곳곳에서 소규모 업체들이 아라 규격에 맞는 다양한 아이디어 부품을 준비하고 있다. 심지어 개인도 3D프린터로 아라 규격에 맞춰 부품을 만들어 자신의 스마트폰에 끼워 사용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아라를 장난감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얕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모든 혁신은 느슨하게 시작됐지만 어느 순간에 기존 질서를 파괴했다. 수억 명을 수시로 연결하여 칸막이와 층계 시대에는 상상하지도 못한 일을 척척 구현하는 네트워크의 속성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