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4.11.03(월)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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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샌드위치 신세다. 한쪽에선 중국 샤오미와 화웨이의 돌풍이 거세다. 이미 세계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은 레드오션이 됐다. 그렇다면 프리미엄폰에서 애플을 꺾어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다. 3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반 토막 났지만 애플은 전년 동기 대비 11% 늘었다. 단통법 후유증까지 겹쳐 아이폰6가 한국에서도 불티나게 팔리면서 애플 주가는 사상 최고치인 108달러까지 치솟았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삼성이 제2의 애플이 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가을 삼성이 한창 잘나갈 때 유럽시장에서 아이폰 고객을 뺏기 위해 공격적 마케팅을 펼친 적이 있다. 그러나 듬뿍 뿌린 보조금에 비해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아이폰 사용자들은 아이팟 시절부터 내려받은 노래·동영상 등 유료콘텐트가 평균 80만원어치나 됐어요. 이를 포기하고 갤럭시로 갈아탈 이유가 없었죠.”
삼성 관계자는 “이때 어렴풋이 애플은 우리와 다른 회사라는 감을 잡았다”고 했다
삼성이 스마트폰을 판다면 애플은 생태계를 판다. 삼성이 물고기를 쫓아다닌다면 애플은 가두리 양식 업체다.
아이폰 고객의 충성도가 그만큼 높고, 뒤집어 말하면 애플 생태계에 한번 포획되면 좀처럼 빠져나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실제 아이폰 이용자의 76%가 새로운 아이폰으로 갈아탄다. 이는 경쟁업체들의 자사 기기 교체 비율(20~30%)보다 월등히 높다. 애플은 매년 딱 하나의 고가 아이폰으로 브랜드를 관리하며 콘텐트 판매를 통해 큰 재미를 보고 있다. 아이폰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12%지만 전 세계 스마트폰 영업이익의 70%를 독식하는 비밀이 여기에 숨어 있다.
삼성이 흐름을 뒤집으려면 엄청난 괴물, 이른바 게임 체인저가 절실하다. 휴대전화 시장을 뒤흔든 2003년 모토롤라의 레이저(RAZR)나 2007년 애플의 아이폰처럼 말이다. 갤럭시에 고작 방수나 바이오기능을 입힌다고 될 일이 아니다. 삼성에겐 고만고만한 기능보다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문제는 그 길이 좀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플은 9월 9일 애플 워치를 선보였다. 시제품을 분석한 전문가들은 두 번 놀랐다. 우선 애플 워치에 첨단 기술은 거의 안 보였다는 점이다. 삼성이 시판 중인 갤럭시 기어보다 나을 게 없었다. 원래부터 애플은 최첨단보다 안정성이 검증된 중상급 기술과 부품을 쓰는 기업이다. 정작 전문가들이 가장 놀랐던 건 ‘애플 페이’다. 애플 워치의 비밀병기나 다름없다. 사실 스마트폰의 NFC 결제 기술이 대단한 건 아니다. 하지만 삼성이 갤럭시 기어에 이 기능을 집어넣으려면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부터 문턱이 닳도록 찾아갔어야 했을 것이다. 수많은 신용카드회사와 가맹점 확보 또한 쉽사리 엄두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반면 애플의 괴력은 대단했다. 곧바로 세계 3대 신용카드사, 백화점 그리고 대형 패스트푸드 체인점들과 제휴를 맺고 애플 페이가 도입된 지 사흘 만에 100만 건 이상을 뚝딱 처리했다.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막강한 금융·유통 파워와 결합해 아이폰에 새로운 결제 UX(사용자 환경)를 구현한 덕분이다. 삼성도 뒤늦게 페이팔과 손잡고 반격 채비를 차리고 있다. 하지만 편리한 스마트폰 결제 이미지는 이미 애플에 선점당해 버렸다.
삼성전자는 훌륭한(good) 기업이다. 그러나 애플같이 위대한(great) 기업은 아니다.
우선 삼성은 주변환경부터 불리하다. 애플 페이처럼 미국의 표준이 글로벌 표준이 되는 무서운 세상이다. 여기에다 아이폰은 탄탄한 생태계로 차별화에 성공한 반면 갤럭시의 핵심 경쟁력은 엇비슷한 성능을 절반 값에 만들어내는 중국에 덜미를 잡혔다. 삼성과 애플의 운명이 엇갈리면서 인터넷에는 앱등이(애플 매니아의 속어)만 판치고 삼엽충(갤럭시 매니아)은 멸종 직전이다. 하지만 삼성의 문제는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지 모른다. 이건희 회장이 건재했을 때 선제적인 위기의식과 헝그리정신은 삼성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예전 같았으면 갤럭시 기어에 결제기능을 넣기 위해 온갖 몸부림을 쳤을지 모른다. 한번 최정상에 올랐다는 자신감과 포만감 탓일까, 삼성에는 요즘 그런 헝그리 정신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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