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1)

불통의 시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배셰태 2014. 8. 28. 15:38
[부일시론] 불통의 시대, 역지사지의 지혜를

부산일보 2014.08.28(목) 정승안 동명대 자율학부 교수

 

<중략>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언급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측면을 설명하는 명제로 받아들여져 왔다. 인간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타인과의 긴밀한 상호작용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는 공감과 소통보다는 무수한 갈등과 대립의 장면들이 표출되고 있다. 며칠 전 부산을 혼돈상태로 몰아넣은 폭우와 같은 재난은 언제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는 고리원전이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과 함께 인간존재의 무력감을 또다시 각인시킨다. 그러나 곧 책임소재를 둘러싼 갈등으로 이어진다. 수백 명을 진도 앞바다에 수장시킨 세월호의 침몰 진상을 밝히자는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은 단식을 둘러싼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다.

 

갈등 조절의 실패, 위험사회 불러

 

개인과 집단, 국가를 막론하고 빈발하는 수많은 갈등의 양상들은 갈등 조절의 실패가 바로 공동체와 국가의 붕괴를 불러올 수 있는 위험사회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갈등 상황에 대해 공동체나 국가가 통제력과 대처능력을 상실하고 무기력하다는 것은 우리 삶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 회의하게 된다. 합리성이라는 가면 속의 비합리성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葛藤(갈등)이라는 한자는 칡넝쿨이 등나무를 휘감고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서로 상반되는 가치와 주장으로 화합하지 못하는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껍데기의 모습에만 주목한다. 칡넝쿨은 무언가에 의지해야만 뻗어 나갈 수 있고, 등나무도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다. 그러니 서로 뒤엉키고 설키며 살아가는 것은 바로 그들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의 적나라한 모습도 마찬가지다. 끊임없는 위기를 둘러싼 일상적 대립과 갈등적 상황을 넘어서기 위한 부단한 노력은 인간의 역사를 만들어 왔던 원천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마주했던 대대적 주체들의 노력과 과정의 연장선상에서 비롯하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인간의 역사는 바로 모순과 갈등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조화와 통일에 반대되는 사회학적 개념으로서의 갈등은 주로 부정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기능주의적 관점을 중시하는 사회과학적 흐름이나 지배적 위치에 있는 사회적 주류의 입장에서는 갈등이 정상적인 것이 아니기에 반드시 통합이나 수렴되어야 하는 불안한 상태로 받아들여진다. 과연 그것만이 정답일까? 갈등은 악의 표상이며 반드시 극복되어야만 하는 영원한 평화를 위해 지양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인간의 역사에서 갈등의 보편성을 고려한다면 갈등이 문제라고만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갈등 해소를 위한 노력의 부재와 동적인 균형 상태를 상실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일 뿐이다.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소통이 절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통은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통을 거부하고 갈등적인 상황을 부추기는 전략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이기고 꺾어야만 하는 전쟁과 같은 극단적 대립의 상황에서나 써야 하는 최후의 방법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갈등적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진정으로 하고 있는가이다.

 

갈등은 보편적 현상… 해소 위해 소통 절실

 

서구의 사회학자들이 언어와 상징과 같은 사회적 관계의 상호작용의 형식에 주목했다면, 동양의 사상가들은 그 관계성의 내용에 더 주목하며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를 인간이 사회적 처세에서 마땅히 지녀야 하는 처세와 내면적 인격에서 찾는다. 그러므로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잃으면 '금수(禽獸)와 다를 바 없다' 본다. 마땅한 도리를 지키지 못하는 짐승에게 더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이다. 그러므로 위기와 갈등적 상황에서 '힘들고 곤궁에 처했을 때에 그 하지 않는 바를 살펴보면, 그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다' 맹자의 언급에서처럼 여러 가지의 갈등적 상황에서 그 마땅히 힘써야 할 바와 갈등 해소를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때이다.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만연한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갈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상대의 주장과 말에 공감하며 귀 기울이는 것, 있는 그대로의 마음으로 들어 줄 수 있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가 무엇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