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이순신은 없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2014.08.16(토) 임형찬
영화 <명량>은 단지 흥행을 넘어서 신드롬이 되었다. 개봉일 관람객수 68만 명, 일일 관람객수 125만 명, 거의 모든 기록을 다시 쓰는 <명량>의 힘에는 '이순신'이라는 실존 인물의 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정재계에서는 이순신 리더십을 배우자는 열풍이 불었다. 맞다. 이것은 신드롬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영화 <명량>으로부터 시작된 충무공 열풍에는 우리 사회의 불신과 위기감울 해소할 리더십의 부재로 꼽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필자가 '신드롬'이라고 했던가? 신드롬에는 '병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즉, 최근 한국 사회에서 '충무공 신드롬' 혹은 '명량 신드롬'은 정상과는 거리가 멀다.
역사는 언제나 현재에 해석된다. 하지만 역사를 바라볼 때 더 중요한 과정이 있다. 바로 그 시대의 눈으로 그 시대의 판단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점이다. 역사는 언제나 미래를 두고 현재에 결정을 내린 과정들의 연속적 기록이다. 즉,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이미 상당한 부분이 밝혀진 명확한 사실들의 열거겠지만 실제 과거의 사람들은 매우 제한적 정보에 따라 판단을 내려왔다. 게다가 가치관과 세계관이 완전히 다른 인물들의 판단인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관점에서 역사를 재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영화 <명량> 열풍으로 충무공의 리더십을 운운한다. 그런데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충무공이라는 인물은 '왕정시대'의 인물이다. 그의 가치관은 맹자로부터 시작된 '왕도정치'이다. 충무공의 머릿속에서 '조선국왕'이라는 국체가 무너지면 '조선'이 망하는 것이고, 유교적 질서에 의한 백성들의 세상 또한 무너지게 된다. 비록 자신을 핍박한 선조이지만 임진왜란 불과 2~3년 전부터 시작하면 이순신에게 초고속 승진을 시켜준 결정적 인물이기도 하다. 선조는 수많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류성룡의 천거에 따라 이순신을 초고속 승진 시켰다. 충무공의 세계관과 가치관 속에서는 여전히 그 점에 대한 '충성'과 '의리'가 남아있었다. 게다가 이미 백성들로부터 왕보다 더 칭송받는 신하가 된 충무공. 그런 충무공에게 왕으로서 질투와 견제를 한 선조. 당대의 사상 속에서 그들의 결정에서 이해하지 못 할 것은 사실 별로 없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충무공이 신화가 되고, 불멸의 명성을 남기게 되었던 것은 그가 '희생'되었기 때문이었다. 노량에서 전사함에 따라 당대의 모든 갈등 구조는 해소되었다. 왕권을 위협할 수도 있던 전쟁 영웅이 사라졌기 때문에 남은 권력자들에게는 행복한 결과가 되었다. 그리고 충무공을 흠모하는 백성들에게는 신앙이 됨으로서 왕은 안전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오명은 모든 권력의 핵심인 왕이 책임졌다. 어쩌면 충무공의 희생은 예정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결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충무공의 리더십이란 존재할 수 있을까?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최고 권력자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백성을 위해 전투에 임하는 장군, 현대 시민 사회에서 그러한 인물은 철저한 희생양에 불과하다. 적어도 조선시대에서 충무공은 민본의 중심인 '백성'과 왕도정치의 중심인 '국왕'의 중간에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민이 중심이 된 현대 민주주의 시대에서 그런 중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뛰어난 인물을 선출하여 권력을 위임하는 것도 '시민'이고, 국체 그 자체도 '시민'이다. 많은 사람들은 선조를 마치 오늘날 사회의 권력자인 대통령과 국회의원들 같은 권력집단으로 '타자화'시킨다. 그러나 사실 왕조시대의 국왕과 동일 선상에 놓여있는 것은 그토록 '충무공의 리더십'을 바라고 바라는 우리라는 사실이다.
숱한 사회적 난맥상 속에서 우리는 정치인을 비난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들에게 권력을 위임하고, 시민의 대표자로 지명한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스스로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바꿀 수 있으며, 변화를 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변화를 적극적으로 거부한 또는 부작위로서 방조한 사람들이 이제는 나타날 수 없는 희생적 존재에 가까운 '충무공의 리더십'을 기대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희극적 비극인 셈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명량> 열풍과 '충무공 신드롬'은 사실상 종교적 염원에 불과하다. 구원자적 인물이 나타나서 사회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바람은 교황 프란치스코 1세의 방한으로 극대화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1세는 신부들의 사회 참여를 독려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불평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그는 종교인이며, 그 자체가 타국의 정치 상황을 변화시킬 주체가 아니다. 종교적 권위는 존재할지 몰라도 결국 의사결정과 행동은 시민 사회가 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현대 대한민국 시민 사회는 세월호 참사와 세월호 특별법 난맥상, 윤 일병 사망 사건과 병영 내 악습 등 수 많은 세기말적 사건의 충격 속에서 문제 해결을 '정치'와 '지성'이 아닌 '신화'와 '종교'에 의탁하고 있다. 사람들은 역사에서 이와 유사한 시대를 '중세 암흑시대(Dark Age)'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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