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4.06.21(토)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
제이슨 머코스키 지음|김유미 옮김|흐름출판
종이로 만든 이 책은 152×225×18㎜ 크기에 530g이다. 총알 배송을 요청해도 최소 몇 시간 기다려야 한다. 동시 출간된 전자책은 형태나 무게가 없다. 디지털 세계의 도량형으로 15MB. 내려받는 데 10초도 안 걸린다.
인쇄술의 역사에는 선명한 족적(足跡)이 있다. 보존성이 감소하고 편리성은 증가하는 방향으로 전진했다. 6000년 전 점토에 글자를 새긴 다음 가마에서 구워 만든 서판은 내구성이 뛰어났다. 파피루스와 양피지(羊皮紙)도 1000년 넘게 견디지만 종이는 그렇지 않다. 빨리 낡고 곰팡이가 슬며 썩고 바스러진다. 미국 출판 시장에서 전자책 비중은 25%. 그것이 종이책의 계승자라는 사실을 마음이 아닌 머리로 부정하기는 어렵다.
<중략>
제이슨 머코스키(42)는 아마존의 전자책 단말기 '킨들'을 개발한 책임자다. 덕분에 우리는 손안에 '도서관'을 넣고 다닌다. 침대에 누워 아프리카 마을학교로 전자책 1000권을 전송할 수도 있다. 머코스키는 "전자책 혁명은 독서와 글쓰기의 규칙을 바꾸고 있다"고 썼다.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종이책의 운명을 읽는다. 움베르토 에코처럼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2층 난간에서 1층 바닥으로 킨들과 종이책을 집어던져 종이책의 견고함을 증명하는 쪽도 있지만, 날로 쇠약해지는 종이책을 보며 부의금(賻儀金)을 준비하는 쪽도 있다. 이 책은 킨들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전자책이 무엇이고 어디로 가고 있으며 독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살핀다.
머코스키는 전자책 못지않게 종이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종이책을 디지털화하려면 먼저 책등을 잘라내야 한다. 그다음엔 소시지 공장을 상상하면 된다. 이쪽 끝에서 종이책의 디지털 복사본(PDF)을 넣으면 자르고 재조립되고 포장돼 저쪽 끝에서 전자책이 나온다. 파괴적인 광경이다. 킨들은 이런 과정을 거쳤다. 전자책이라는 소프트웨어 없이 하드웨어 상품을 내놓을 수는 없으니까.
킨들을 개발할 때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는 화면에 나타나는 글줄을 몇 개로 할 것인가를 놓고 골머리를 앓았다. 구텐베르크도 15세기에 활판 인쇄를 발명하면서 같은 고민을 했다. 전자책 혁명은 인쇄술의 재창조였다. 아마존은 전자잉크 화면이 어렴풋한 한 줄기 빛으로 떠올랐을 뿐인 초창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단말기 개발에 뛰어들었다. 멀리 본 것이다. 킨들을 출시하던 2007년 11월 19일, 머코스키는 자문했다. "전자책은 독서의 쇠퇴를 부채질할 것인가, 아니면 책에 생명을 불어넣을 것인가?"
책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조건이다. 아마존은 전자책 혁명에서는 승리했지만 전쟁에서는 패배할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한다. 미국에서 책은 비디오·게임·음악보다 소비량이 적다. 해상도는 종이책이 우월하다. 전자잉크 단말기는 가로세로 1인치에 200개의 점을 나타낼 수 있지만 종이책은 같은 면적에 300개 점으로 인쇄된다. 질감도 기억도 종이책이 낫다. 전자책 단말기는 애플의 아이패드처럼 기술과 비용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감성으로 차별화된 독서 경험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한다.
변화가 달갑지 않을 수 있지만 책은 종이에서 화면으로 옮아가는 이주의 행렬에 들어섰다. 머코스키는 "소장 가치를 지닌 종이책의 매력은 남아 있겠지만, 한 세대(20년) 더 지나면 레코드판처럼 보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물론 종이책은 전자책보다 진지하고 견고한 느낌이다. 반면 전자책은 영원한 기억보조장치 역할을 한다. 나와 책의 사적인 만남이었던 독서는 디지털 연결망을 통해 사회적인 토론이자 경험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과거 언젠가 종이책에 남겼던 흔적을 재발견하는 기쁨을 잃어버릴 것이다. 낭독이 아니라면 당신은 책을 읽으며 지구 반대편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를 그 책 안으로 초대할 수 있다. 전자책은 당신 기분에 따라 독서를 사적인 경험 또는 공개적인 경험으로 만들 수 있는 스위치를 제공한다."
책이란 자기 내면을 읽는 것이면서 진정 바라는 사람과 공유하고 연결되는 것이다. 저자는 전자책이 채팅방에서 토론하거나 대화를 나누며 줄거리를 만들어가는 온라인 게임과 비슷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작가가 오케스트라 지휘자, 독자가 연주자 역할을 하면서 한 무대에 오르는 셈이다.
머코스키는 2011년에 아마존을 떠났다. 포스트페이퍼(post-paper) 시대의 최전선에서 있었던 기억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교육자, 사서, 저자, 출판인은 물론 독자에게도 쓸모가 있다. "기술은 변화하기 위한 수단이고 우리는 적응하는 종족"이라는 문장이 귓가에 맴돈다. 원제 'Burning the Page'.
[음악·영화·비디오게임… 모두 디지털인데 종이책은 얼마나 더 굳건할까]
‘읽기의 역사’를 쓴 스티븐 로저 피셔는 “읽을 줄 아는 능력은 불을 사용하고 바퀴를 쓰는 것과 함께 인간의 3가지 위대한 능력”이라고 말한다. 읽기가 일찍 발달한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강력한 제국주의가 출현했으며 독서 능력을 이어받은 미국이 강대국이 되었다는 것이다.
읽을 줄 아는 능력은 더이상 권력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책이라는 물건은 공부에 방해된다고 믿었다. 기록을 읽는 바른 방법은 지성을 갖춘 자와 구어(口語)로 소통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국내에서도 예스24의 크레마, 교보문고의 샘, 인터파크의 비스킷이 미래 출판시장을 놓고 겨루고 있다. 책은 문화의 축적된 무게였다. 음악, 영화, TV, 비디오게임 등 다른 형태의 미디어는 킨들 이전에 모두 디지털화됐다. 홀로그램이 등장할 미래에 종이책은 얼마나 오래 견고한 요새로 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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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읽을 것인가
- 아마존 '킨들' 개발자가 말하는 콘텐츠의 미래
제이슨 머코스키 지음|흐름출판|2014.06.20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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