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알리바바, 손정의, HANA
조선일보 2014.06.05(목) 이위재 기자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6/04/20140604027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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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온라인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가 미국 증시 상장을 앞두면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혜안(慧眼)이 새삼 화제에 올랐다. 손 회장이 14년 전 이 회사에 투자한 2000만달러가 이제는 578억달러(추정)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됐기 때문. 하지만 손 회장이 운이 좋아 '잭팟'을 터뜨린 건 아니다.
알리바바는 2000년 창업 후 5~6년 동안 신통한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지금은 직원 2만4000여명에 연 매출액이 1500억달러에 이르지만, 당시 그 미래를 내다본 현자(賢者)는 많지 않았다. 한국에도 2000년 알리바바코리아가 세워졌지만 얼마 못 가 문을 닫았다. 그런 회사에 2000만달러를 쾌척했던 손 회장은 무슨 예언자가 아니라 통 큰 앤젤 투자자로 보는 게 적절하다. 사실 소프트뱅크 내에는 투자가 실패해도 책임을 묻진 않지만 좋은 투자를 머뭇거리다 놓치면 나무라는 풍토가 있다고 한다. 그런 문화가 있기에 이런 성공 신화도 탄생하는 법이다.
독일 SAP는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오라클에 이어 소프트웨어 분야 세계 4위 대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24조원, 시가총액은 111조원에 달한다. 이 회사가 2011년부터 상용화한 하나(HANA)라는 프로그램은 데이터를 최대 1만배까지 빨리 처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술로 서울대 차상균 교수가 주도해 개발했다. SAP는 이 기술을 응용한 소프트웨어를 기업들에 팔아 지난 3년간 16억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차 교수는 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직접 벤처회사를 세웠으나 '수익이 없다'는 이유로 정부 벤처기업 재인증에 실패한 뒤 국내 투자자 유치도 여의치 않자 SAP와 손을 잡았다. SAP는 5000만달러를 투자했고, 연구 성과는 6년 뒤 나왔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혁신 문화를 흡수하고 스타트업 투자를 통해 비전을 세운다는 목적으로 실리콘밸리에 '오픈 이노베이션센터'를 만들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록 어디에 투자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알리바바·텐센트 등 중국 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 차이나 머니를 쏟아붓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창조경제를 표방하면서 정부에서 추진하는 벤처 지원도 소심하긴 마찬가지다. 한 벤처기업 임원은 "투자 수익과 안전성만 따지는 은행 대출 심사와 비슷하다"고 한탄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투자는 사막에 나무를 심는 것과 비슷하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꾸준히 물을 주고 가꾸는 정성과 인내가 필요하다. 애플·구글 등에 투자했던 미 벤처캐피털 회사 세쿼이아캐피털 마이크 모리츠 회장은 "그저 생존할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해 약간의 돈을 만들려면 아예 벤처캐피털을 하지 말라"면서 "잘해야 10곳 중 1곳이 기념비적인 성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여기서 강조점은 1곳의 성공이 아니라 '10곳'의 투자에 있다.
물론 '묻지 마 투자'는 가려내야겠지만 실패를 각오한 모험 정신없이 대박을 기대할 순 없다. 손정의 회장 같은 배포와 안목이 아쉽다. 실리콘밸리에는 실패한 투자자를 달리 비유하는 말이 있다. 바로 '경험 있는' 투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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