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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국가, 협동조합 없이는 불가능하다

배셰태 2014. 3. 1. 23:51

복지 국가, 협동조합 없이는 불가능하다

프레시안 2014.02.27(목) 장석준 노동당 부대표

 

[장석준 칼럼] 오늘날 협동조합 운동의 의의

 

요즘 내 주위에는 민중의 집이나 협동조합(대개 소비자협동조합)을 만들고 일구는 데 뛰어드는 이들이 많이 있다. 나는 여기에서 미래의 희망을 본다. 그런데 진보 좌파 안에는 이런 흐름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게 존재한다. 협동조합 등을 사회 변화와는 무관한 중산층 웰빙 문화 정도로 치부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자본주의 체제가 사회운동을 순치시키거나 흡수하려는 수단이라고 공격하기도 한다.

 

무시할 수 없는 비판이다. 최근의 협동조합 붐에는 분명 경계해야 할 구석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관공서가 나서서 협동조합을 육성한다며 '제2의 새마을운동'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게 그렇다. 이미 '사회적 기업' 논의에서 나타났던 양상의 반복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모처럼의 협동조합 르네상스 역시 관 주도의 한 철 이벤트로 전락해버릴 위험이 높다.

 

또한 협동조합이나 지역 공동체를 사회 변화의 유일한 대안으로까지 내세우는 것 역시 의심해볼 일이다. 

 

<중략>

 

그렇다면 더 이상 거시 사회 수준의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이에 맞설 수 없다. 19세기에 산업 자본주의가 처음 등장했을 때 초기 사회주의자와 노동 운동가, 협동조합 운동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미시 사회에서부터 사회성 자체를 되살려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복지 국가를 재건하고 강화하는 일도 가능하게 된다. 이것이 두 거장이 생애 말년에 우리에게 전하려는 간절한 메시지다.

 

바로 여기에 오늘날 협동조합 혹은 민중의 집 운동의 절실한 의의가 있다. 평소 고립과 경쟁, 질시에만 익숙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혁명 대중으로 돌변한다는 신화를 우리는 더 이상 믿을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이 돌연 뛰어난 사회민주주의 정치가에게 표를 던져 세상이 바뀐다는 신화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는 혹여 체제 쪽의 실책으로 예외적인 정치 격변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게 진지한 사회 변화로까지 이어질 수는 없다.

 

일상에서 새로운 삶을 훈련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사회로 도약할 수도 없다. 협동조합이나 민중의 집 운동은 우리 스스로 그런 훈련장을 만들어나가는 일이다. 그러니 이제 논란과 우려를 넘어 '우리의' 협동조합 운동을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