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자기계발·동기부여外

인간은 `납득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설득당하는 것`은 싫어한다

배셰태 2013. 6. 1. 00:08

 

중국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합에 조화를 이루되 같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는 뜻인 화이부동은 『논어』「자로」편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화할 화和, 말이을 이而, 아닐 부不, 같을 동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문장에서 중요한 단어는 화和와 동同입니다.

 

고대 중국에서 유행했던 협상과 관련한 중요한 사상입니다. 화는 대립되는 두 축이 서로 의견을 수렴해 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동은 한쪽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화는 동과 같지 않습니다. 고대 중국에서 협상은 협상가가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이 받아들이게끔 설득하는 것이었지 상대방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조하는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자기당착적인 면이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상대가 설득한다고 자기 의견을 포기하고 설득자의 의견으로 넘어 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는 앞뒤가 서로 맞지 않고 모순된 부분도 많습니다. 머리로 이해를 한다 해도 동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의견을 변경하고 나의 생각에 동의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나의 의견에 납득이 돼야 합니다. '납득이 된다' 는 것은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으로 의견을 변경할 명분이 있다고 수긍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납득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화이부동, 상대를 내 쪽으로 끌고 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와 융합하게 하는 것, 이것이 설득입니다.

 

기획에서 설득이란 표면상의 납득과 감정적 공감 두 가지가 있습니다. 표면상의 납득이란 머리속에서만 '해명을 득고 보니 타당한 기획이구나.' 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인간을 움직이게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이성보다 감정 쪽이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됩니다. 표면상의 납득은 이성의 납득일뿐 마음속으로부터 납득한 것은 아닙니다.

 

납득의 과정 이상으로 감정적 공감을 이끌어내야 설득 대상자가 스스로 행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발적 행동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타인에게 설득된 경우보다 더 차원이 높습니다.

 

인간은 `납득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설득당하는 것`은 아주 싫어합니다. 우겨다짐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사람은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반면 상대가 납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이는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상대를 힘이나 논리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등을 떠빋치고 가볍게 밀어주는 것만이라도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이면 그 의견이 대부분 각각 다르게 됩니다. 그래서 무리하게 남을 설득시키려 하는 것은 결코 지혜로운 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의견이란 못질과 같아서 두들기면 두들길수록 자꾸 깊이 들어갈 뿐입니다. 물론 우리는 올바르지 않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가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면서 까지 무리하게 설득하려 한다면 반드시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선택를 하건 스스로 만족해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세요.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