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자기계발·동기부여外

하늘의 도, 자연의 순리는 차면 넘치고 모자라면 채워진다

배셰태 2013. 5. 31. 20:51

 

내가 있는 것은 네가 있기 때문입니다. 네가 없다면 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로 대립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편향성입니다. 하나의 가치에 매몰되어 그 뒷면의 다른 하나를 보지 못합니다. 유(有)와 무(無)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형체가 있는 유에만 집착합니다. 하지만 있는 것은 없는 것을 위해 존재합니다.

 

컵은 형체가 있는 유이지만 컵을 만드는 이유는 컵의 빈 공간에 물을 채우기 위함입니다. 집 역시 형체가 있는 유이지만 집을 짓는 이유는 방이라는 빈 공건에 살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있는 것은 없는 것을 위해 존재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집착하는 부분은 형체가 있는 유입니다.

 

컵에 무엇을 담을까를 생각하기보다는 어떤 모양의 컵을 가질까를 먼저 생각합니다. 집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는 얼마나 큰 집을 가질 것인가를 먼저 생각합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어떤 컵을 쓰느냐가 아니고 무엇을 마시느냐입니다. 그건 집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특히 유비쿼터스 시대에는 어떻게 사느냐가 어디에 사느냐보다 더 중요합니다.

 

사회생활에서도 그런 모습은 발견됩니다. 돈에만 집착하면 돈이 가지는 뒷면을 알지 못합니다. 출세에 집착하면 출세 뒤에 가려진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갔다면 반드시 밟힌 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문제는 형식 때문에 발생합니다.

 

정말로 이기는 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자입니다. 내가 낮추면 상대는 나를 올려줍니다. 그러나 나를 낮추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낮출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먼저 버려야 할 것은 형체, 즉 유에 대한 욕심입니다.

 

유에 대한 욕심은 물욕에서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그릇의 쓰임이 음식을 담는 빈 공간에 있는 것처럼 물질의 쓰임을 물질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을 너무 많이 움켜쥐고 있으면 결국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합니다. 행복을 위해 추구했던 물질이 자신을 찌르는 흉기로 돌변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도, 자연의 순리는 차면 넘치고 모자라면 채워집니다. 그러나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고 싶어 합니다.

 

살면서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기본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지금 상황을 돌아보지 않고 저 높은 곳만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지금의 한걸음이 없으면 저 높은 곳에도 오를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항상 뒤로 돌아 보아야 합니다. 걸어온 길은 걸어갈 스승입니다. 인간이 역사를 중시하는 것은 역사에서 벌어진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현재의 질서와 규칙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