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組織)은 씨실을 나타내는 조(組)와 날실를 나타내는 직(織)으로 이루어집니다. 한장의 천은 평범하게 보면 하나의 천 조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꼼꼼히 들여다보면, 미세한 씨실과 날실이 정교하게 교차하면서 한 장의 완벽한 직조물 곧 천이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씨실과 날실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자신의 역할을 저버린다면 천은 완성될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한 장의 천과 같습니다. 이때 씨실과 날실은 개인의 생각과 사고를 표현하는 생활 방식입니다. 모두 날실일 수 없고 모두 씨실일 수 없듯이, 인생도 모든 것이 제 몫을 다하면서 조화를 이룰 때만이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날실이 꼬여 있으면 천 자체가 뒤엉키게 되고, 씨실이 너무 엉성해도 역시 촘촘한 천이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천의 가로 쪽의 문제는 날실, 세로 쪽의 문제는 씨실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인생이 복잡다난하게 보아는 것도 사고와 생각이라는 날실과 씨실이 고통과 환희를 절묘하게 만들어 내면서 복잡하게 어우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원인 끝에 잘못된 결과가 있다는 것은 단순하고도 명쾌한 진리입니다. 질 나쁜 실로 짠 천이 좋을 리 없듯이, 멋대로 사고하고 무책임한 행동의 실로 짠 인생이 결코 아름다울 리 없습니다.
내 사고와 행동은 날실과 씨실이 되어 내가 입을 옷을 만듭니다. 입을 옷을 스스로 만드는 작업이기에 타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옷에 대해서도 그에게 책임을 추궁할 수 없습니다. 내 생각과 행동을 관리하고 책임져야 할 사람은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결과에는 필연적 원인이 있다.' 이 명제는 '과학 법칙' 의 근본적인 사고방식이지만, 인간의 행동과 결과를 유심히 살펴보면 이 거대한 자연의 법칙이 인생에도 공평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모든 것은 법칙 아래 존재하고 운동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법칙을 무시하거나 벗어날 수 있는 힘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따라서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거대한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그 위력을 거스리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지혜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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