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1)

[스크랩] ?패자는 다시 부활할 수 없나

배셰태 2012. 5. 25. 10:45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그 회사가 좋은지 어쩐지 다녀봐야 알고, 실제로 이익을 많이 내는지도 장부를 들여다봐야 안다. 그러나 속이 어떻든 간에 겉만 보고도 남들이 부러워하면 대놓고 무시하는 것 보다 기분은 좋은 것이다.

 

 

장기간의 경제 침체 또는 자유시장주의 경제정책의 부작용으로 일자리와 부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공기업, 공공기관, 공무원에 대한 취업 열기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것처럼 높아만 간다. 호사가들은 ‘신이 내린 직장, 신이 숨겨놓은 직장, 신도 모르는 직장’이라며 호들갑을 떤다. 자연히이런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신의 아들’이 된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2013년 이후), 김광수 경제연구소장(경제학3.0), 우석훈 경제연구소장(1인분 인생) 등 재야 경세가들의 일관된 주장은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이 너무 부실해서 패자가 부활할 기회가 없는 것이 위기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안전장치 없이 양극화만 심화되다 보니 개인의 노력만으로도 올라갈 수 있었던 사다리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났던 교육 사다리, 가난한 정치 신인을 위한 선거 사다리, 벤처정신과 기술 · 아이디어만으로 큰 회사를 일구어 내는 시장 사다리 등의 중간 중간이 부러졌다. 한 번 패자로 미끄러지면 다시는 위로 상승할 수 없기에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in 서울’을 향해 목숨 걸 듯 올인 하고, 청년들은 ‘스펙과 취업’에 짓눌려 빛나는 청춘마저 잃어 버렸다. 승자도 패자도 없이, 쏘면 나가는 전파 같은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현실은 엄연히 경쟁의 논리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패자도 부활이 가능한 따뜻한 사회를 갈구한다. 그리고 그런 사회를 위한 세대 간, 계층 간 국민적 합의를 희망한다.


스위스에서 배우는 정책 디자인
스위스가 대공황 이후 국민적 대 타협으로 오늘처럼 탄탄하고, 따뜻한 나라를 이룬 것처럼 ‘승자들’의 ‘패자들’에 대한 배려와 양보가 어느 때 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특별히 ‘따뜻한 경쟁’을 골랐다.

저자는 연합뉴스 제네바 특파원이다. 한국에서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산업부 기자를 두루 돌고 나서 유엔사무국이 있는 제네바로 갔다. 한국과 스위스를 다방면으로 비교할 문제의 식과 정보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그의 눈에 비친 스위스라는 나라는 정말이지 부럽지 아니할 수가 없다.

 

물론 맹찬형 기자의 시각이, 스위스가 100% 정답일 수는 없고, 스위스라 해서 산만 높고, 골은 없는 그런 것도 아닐 것이 다. 그러나 스위스의 ‘패자배려-공존’을 위한 국민 철학, 정책적 디자인은 가히 예술적이라 할 만큼 치밀하고 섬세하다.

4년제 대학 진학률이 20%대임에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스위스 패러독스’와 80%대인데도 OECD 국가 중 청년 취업률이 최하위인 ‘코리안 패러독스’의 비교가 극명하다. 대학 입학과 졸업을 철저히 통제하는 대신 고졸로도 얼마든지 만족스럽게 살 수 있도록 스위스의 교육과 노동 정책은 정교하게 디자인되었다. 사교육도 없을뿐더러 워킹맘에 대한 충분한 배려로 엄마가 최고로 행복한 나라가 스위스다.

한가로이 들판에서 풀을 뜯는 스위스의 소는 사실 주인의 수입을 위해 ‘근무 중’이다. 친환경 육우를 위해 들판에 소를 내놓는 시간만큼 정부에서 지원금을 주기 때문이다. 특유한 전원풍의 스위스 농가 삼각 지붕에 자라는 담쟁이 넝쿨도 지원금이 나온다. 그 지원금은 바로 그런 목가풍을 구경 오는 외국 관광객들에게로부터 벌어들인다. 농가도 챙기고, 수입도챙기고, 환경도 챙기는 것이다. 영악하리만큼 영리하고, 얄미운 스위스가 아닐 수 없다.

 

 

글.최보기(북칼럼니스트)

 

 

 

 

 

 

 

 

 

 

 

 

출처 : 두루누리의 행복한 상상
글쓴이 : 방송통신위원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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