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추억의 장소라는 것이 있다. 그 장소에만 가면 주마등처럼 추억이 되살아나 가슴 한켠이 시리거나 뜨거워지거나 북받쳐 올라오거나 하여 뇌는 도파민이라도 분비된 듯 흥분 상태로 빠져든다. 현실 속 하나의 위치에서도 서로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진학 가고 싶은 학교에 가서 꿈을 꿔 본다거나 시합을 앞둔 경기장을 미리 방문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현실은 하나이지만, 그 하나의 현실에는 우리 사람 수만큼의 과거와 미래가 겹겹이 쌓여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술은 늘 그렇게 있을 것 같은 무언가를 정말 있게 만들곤 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여서 현실 속에 가상을 겹겹이 입혀서 새로운 체험을 주려는 기술들이 속속 등장 중이다.
AR, 증강된 현실 속으로
이 현상을 나타내는 키워드가 바로 AR, 즉 증강된 현실(Augmented Reality)이다. 말 그대로 현실을 증강, 강화한다는 뜻인데, 현실이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나 지식을 덧붙일 때 더 증강, 강화될 수 있다는 기술이다.
가장 기본적인 AR로 우리가 거리를 빙 둘러볼 때 보이는 거리의 풍경마다 그 소재지의 정보가 겹쳐 나옴으로써 우리의 인식을 돕는 스마트폰의 대표 서비스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고 빙 둘러보면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거나 몇 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커피집도 주유소도 다 보여 준다.
상점에서 물건을 집어 들면 그 물건에 대한 설명이 거울 위에 펼쳐진다. 실제로 뉴욕의 레고 스토어에서 레고 박스를 AR 거울 앞으로 가져가면 그 박스 위에 완성된 레고의 모습이 나타나고 심지어 그 안에서 움직이기까지 한다.
외국 말에 까막눈인 경우에도 유용하다. 모르는 문화의 도시에 가서 스마트폰을 꺼내 빙 둘러보면 그 고장의 유래와 사연과 맛집까지 주르륵 화면에 겹쳐지니 말이다. 문화유적이라는 현실 공간에 그 유적의 시대 배경이나 사료 등이 다양한 시청각 효과로 부가되어 현실에서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우리는 처음 가는 그곳에 대해 어떠한 사전 지식이나 부가 정보도 없는 상태이지만 우리 눈에는 처음 들어오는 현실 세계의 인식 정보를 기계가 보완하고 증강하고 강화하여 주는 것이다. 그 공간에 대한 어떠한 추억도 염원도 없어도, 현실 위에 겹쳐져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무언가는 만들어 낼 수 있다.
현실 이외의 가상공간에 공상 과학적 이야기는 IT의 역사와 늘 함께했다. AR 이외에 가상현실, 즉 VR(Virtual Reality)이란 선배 기술도 있었다. 그런데 가상현실은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가상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모니터 안에 현실을 재구축하여 그 공간에 빠져드는 내성적 기술이라면, AR은 이미 존재하는 현실에 뛰어들어 그 위에 가상의 공간을 덧씌우려는 외향적 기술이다. 따라서 VR의 활용 도보다 더 흥미진진하리라는 것이 일반적 예측이었고, 스마트폰에서 볼 수 있는 작금의 AR 붐은 그 결과다.
앱스토어나 마켓플레이스에서는 정말 별의 별 AR 앱들을 다 찾아볼 수 있다. 버스정류장을 찾아주기도 하고, 약국을 찾아주기도 한다. 낯선 곳에서는 요긴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아예 더 실용적으로 생각해 보면, 외국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길을 찾아 준다거나, 메뉴를 펼치면 그 위에 음식의 설명과 실황이 펼쳐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분명 신기한 것은 맞다. 그런데 정말 실용적일까? AR 앱 중에는 증강현실로 날씨를 보는 앱도 있는데, 그냥 눈으로 보면 되지 왜 가상으로 보려 하는 것인지 오리무중이다. 또 카메라가 뜨고 센서가 작동하는 등 스마트폰의 여러 기능을 가동시켜야 하기에 앱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차세대 센서 네트워크에 의해 흡수된 현실
AR에는 기본적으로는 현재의 위치를 알 수 있는 GPS와 어느 방향을 어느 각도로 향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자이로스코프(gyroscope), 그리고 배경 바탕으로 깔아 줄 현실을 흡수할 카메라, 또 무엇보다도 지금 이 현실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데이터베이스와 이에 항시 접속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모두 필요하다.
갑자기 생겨난 기술은 아니지만, 이 모두가 이렇게 쉽게 휴대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공상 과학 첩보극의 특수 선글라스 정도가 이에 해당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등장은 갑자기 모든 것을 실용적 상용화의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그 덕에 지금 시중에 다양한 AR 맛보기들이 유통되고 있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실제로 첩보원의 선글라스는 HMD(Head Mounted Display), 그러니까 여러 형태의 머리에 뒤집어쓰는 디스플레이로 군사, 정비, 유통, 의료 등 산업 현장에서부터 현실화될 것이다. 작업 대상의 설명이 함께 표시되어 분해를 돕는다거나, 적들의 동태에 대한 정보가 현실 화상과 더불어 표현된다거나, 지금까지 바코드 리더를 들고 헤매야 했던 창고 정리가 HMD를 쓰고 두 손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가능해진다.
스마트폰의 여러 AR들이 다소 호사가의 취미 정도였다면, 이와 같은 HMD의 AR들은 정말 강화된 현실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영역이다. 디스플레이의 변화는 더 많은 일상을 AR로 끌어당길 것이다. 만약 차창이 디스플레이가 될 수 있다면 가장 일상적 AR로 등극 가능한 것이 아마 내비게이션일 것이다. 차창에 비치는 현실 위에 펼쳐진 몇 겹의 정보로 강화된 운전이 가능하게 하는 풍경은 더 이상 <미션임파서블4>의 전유물이 아니다.
앞으로의 미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디스플레이가 더 많이 생겨 날 것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투명한 디스플레이는 이미 작년 말부터 양산되고 있다. 크거나 작고, 부드럽고 투명한 온갖 디스플레이가 우리 주위에 늘어갈 때, 그 창이 비춰주는 것이 어두운 가상공간만이 아니라 밝은 우리 현실일 수 있다는 점. 가상과 현실이 만나는 그곳은 사이버스페이스와 매트릭스 안의 어두운 공간이 아니라, 지금 눈으로 보고 만지고 있는 이 밝은 현실 위라는 것, 21세기에 들어 달라진 미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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