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가격표시제-내년 1월/블랙리스트 제도-내년 5월 시행

"마트서 휴대폰 싸게 팔텐데 어쩌나…" 뒤숭숭

한국일보 IT/과학 19면 2011.11.22 (화)

 

기존 대리점·판매점 독점 내년 5월부터 깨져
더 싼 곳에서 구입 후 직접 유심 갈아끼우면 돼
1월엔 가격표시제도 실시 유통 질서 큰 변화 예고

 

내년 1월과 5월부터 각각 시행되는 '휴대폰 가격표시제'와 '블랙리스트 제도'로 휴대폰 시장에 큰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21일 서울 용산 전자랜드의 한 휴대폰 매장에는 '휴대폰이 공짜' 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휴대폰 판매점이 밀집한 용산전자상가. 다른 전자제품도 그렇지만 휴대폰 쪽에서도 국내 최대 유통매장이다.지금 이곳 분위기는 아주 뒤숭숭하다. 일부 판매점주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엔 영업을 할 수 있을지 조차 의문"이라고 말했다.

경기침체에 따른 판매부진 때문이 아니다. 내년 5월 시행되는 휴대폰 블랙리스트 제도,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그에 앞서 1월부터 적용될 휴대폰 가격표시제 때문이다. 정부는 복잡하고 거품이 많은 휴대폰 유통질서를 확 뜯어고치기 위해 이 같은 제도를 도입키로 한 상태. 정부 관계자는 "내년은 휴대폰 유통혁명의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핵심은 역시 블랙리스트 제도다. 지금은 'SKT폰' 'KT폰' 'LGU+폰'등 이동통신업체에 등록된 휴대폰만 판매되고 있지만, 블랙리스트 제도가 도입되면 도난폰이나 분실폰 등 블랙리스트에 오른 휴대폰을 빼곤 어떤 휴대폰이든 이용자가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은 이통사 대리점이나 판매점에서만 휴대폰을 구입할 수 있으나, 앞으론 백화점 할인점 온라인쇼핑몰 심지어 해외에서 구입한 휴대폰과 중고폰조차도 유심(USIM)칩만 끼우면 얼마든지 쓸 수 있게 된다. 그만큼 휴대폰 판매 채널이 다양해져 '대리점 및 판매점 독점시대'는 깨지게 될 것이란 게 정부의 생각이다.

 

21일 찾아간 서울 용산 전자상가의 휴대폰 판매점들은 벌써부터 블랙리스트제도를 걱정하고 있다. 한 판매점 업체사장은 "만약 대형할인점이나 온라인쇼핑몰에서도 휴대폰을 구입해 손쉽게 개통할 수 있다면 누가 용산까지 오겠나"면서 "이제 정말 장사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휴대폰 유통경로는 제조사(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이동통신사(SK텔레콤 KT)→이통사 직영대리점→판매점으로 되어 있다. 사실상 단일 계통의 독점구조다.

 

다른 판매점 사장은 "개별 판매점들은 휴대폰 구매수량이 적기 때문에 대리점에서 낮은 가격에 사오려면 여러 매장이 연대해 대량 구매해야 한다"면서 "그런데 대형 할인매장이나 쇼핑몰들이 뛰어들어 대량구매에 나서고 외국산 휴대폰까지 들여와 팔기 시작한다면 판매점들은 이윤이 줄어들고 결국 쓰러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블랙리스트 제도가 시행되면 여러 종류의 휴대폰을 구입해 비치해 놓는 게 관건인 데 현재 판매점들은 이런 걸 할 수 있는 경쟁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블랙리스트 제도는 업체들이 주도했던 이통시장의 주도권을 소비자에게 넘겨 주는 효과가 있다"며 "다양한 곳에서 휴대폰을 살 수 있어서 선택권이 확대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내년 1월부터 시행될 휴대폰 가격표시제가 유통질서를 더욱 투명하게 만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동통신사들은 그 동안 소비자가 2년 약정을 맺으면 통신요금의 일부를 할인해 줬는데, 대리점과 판매점에서는 그 금액이 마치 단말기 가격할인 인양 홍보하는 이른바 공짜폰 마케팅 진행해 왔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모든 판매장에서 휴대폰의 출고가와 요금제별 판매가격을 모두 표시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공짜가 아닌데도 마치 공짜인 것처럼 판매하는 '공짜폰'이 사라질 것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정말로 공짜폰은 없어지게 될 까. 이에 대해 모 판매점 사장은 "매장 앞에'공짜폰'이라는 글자만 쓰지 않으면 그만"이라며 "약정기간에 따라 휴대폰 가격만큼 요금할인을 해주면 사실상 공짜폰인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다른 매장 점주도 "블랙리스트 제도는 확실히 위협적이지만 공짜폰 마케팅 금지는 별로 겁날 게 없다"면서 "복잡한 보조금체계를 손대지 않는 한 공짜폰 마케팅을 쉽게 뿌리 뽑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