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칼럼] 주가 올라 살림살이 좀 나아졌습니까?
조선일보 2026.0529 박정훈 논설실장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6/05/29/7RL7GCFUIZBE3PR472HIQHOYQQ/
- "누가 주식 계좌 3배 불려줬냐"는 집권당 대표… 삶은 팍팍하고 먹고 살기 힘든데 주가만 오른들 무슨 소용인가

지난 4월초 기준 증권사 신용거래 융자 잔고/그래픽=김성규
1929년 방미(訪美)한 윈스턴 처칠 영국 하원의원은 미 전역에 불어닥친 주식 광풍에 압도당했다. 호텔마다 금융사들이 부스를 차려 놓고 자기 돈 10%만 있으면 90%를 빌려준다며 ‘빚투’ 영업을 벌이고 있었다. 미 증시의 역동성에 매료된 처칠은 강연료에다 본국에서 송금까지 해다 거액을 투자했다. 당시 그가 목격했을 투기 열풍의 한 장면을 후대의 버블 연구자들은 이렇게 묘사했다.
‘유럽으로 향하는 호화 여객선 안에도 무선 전신을 이용한 선상(船上) 주식 객장이 설치돼 있었다. 대서양 한가운데에 떠 있는 순간에도 승객들은 객장에 모여 단타 매매에 열을 올렸다. 휴양지로 가는 길마저 투기판으로 만들 만큼 주식에 중독되어 있었다.’
낙관론의 근거는 기술 혁명이었다. 라디오·자동차·세탁기 같은 신기술이 증시의 신기원을 열었다고 환호했다. 그중 최고의 대장주는 라디오 기업 RCA였다. 지금으로 치면 라디오는 인공지능(AI)이고, RCA는 엔비디아였다. 돈 받고 종목을 추천해주는 점성술사까지 등장했다. 요즘의 주식 리딩방인 셈이다. 그러나 끝은 처참했다. 처칠의 투자 직후 대공황의 폭락장이 시작됐다. 처칠은 돈을 다 날렸고, 90% 신용을 당겨 쓴 수백만 개미들은 빚더미에 올랐다.

29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사 딜링룸에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주가가 표시되고 있다. /장경식 기자
100년 전 미국 얘기를 꺼낸 것은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이 그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위험으로 가득 찬 주식판에 온 국민이 뛰어들었다. 주가 상승을 확신하는 끝없는 낙관주의, 리스크를 아랑곳하지 않는 공격적 베팅, 가진 돈의 몇 배를 털어 넣는 레버리지 빚투, 한 방에 인생 역전을 노리는 한탕주의 풍조가 100년 전 미국의 ‘광란의 20년대(The Roaring Twenties)’를 빼닮았다.
주식은 모든 이의 24시간을 지배하는 국민적 일상이 됐다. 사무실에서, 대학 캠퍼스에서, 등산로며 경로당에서도 주식 얘기가 꽃을 피운다. 한 외신 기자는 판교 IT 단지에 취재 갔더니 ‘조용히 주식 거래를 하려는’ 직장인들이 화장실에 줄을 섰더라는 기사를 썼다. 공무원이 신용 17억원을 끌어다 ‘몰빵’했다는 무용담이며, 대학생들이 학자금 대출받아 주식을 산다는 식의 뉴스가 꼬리물고 있다.
주식 열풍의 판을 짠 설계자가 이재명 정부다. 이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주가 상승을 장담한다며 투자를 독려했고, 민주당은 ‘코스피 5000 특위’를 만들어 상법 개정안을 초고속 처리했다. 주가가 급락하면 “숨 고르기”라고 마사지하며 안심시켜 주었다. 금융위 부위원장이 “레버리지 투자” 운운하며 빚 내 주식 살 것을 권장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증권사 영업 사원을 방불케 하는 마케팅을 펼치며 전 국민을 증시로 몰아넣었다. 천문학적 신용 위에 빚투의 주식 카지노를 세웠다.
주가가 오르는 동안은 문제가 가려질 수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상승장이 계속될 수는 없다. 한국 증시가 과열이라는 해외발(發)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투기 광풍”이라 썼고, 뱅크오브아메리카는 “교과서적 버블”이라 했다. 36조원 신용을 끌어 쓴 빚투 개미들은 하루에도 5~6%씩 급등락하는 변동성 앞에 휘청거리고 있다. 주식 담보가 모자라 반대매매당하는 금액이 매일 1000억원에 달한다. 언젠간 거품이 꺼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파멸적일 것이다.
주가가 오르는 동안에도 모두가 행복하진 않다. 증시 활황의 혜택은 ‘삼전닉스’ 밸류 체인에 올라탄 소수에게 집중되고 있다. 대부분 국민에겐 주가 상승의 이익보다 경제 침체에 따른 고통이 더 크다. 일자리가 사라지고, 자영업 폐업률이 치솟았으며, 중소기업들은 경영난에 몰리고 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중고는 서민 민생을 더욱 옥죄고 있다. 1500원대 환율이 뉴 노멀이 되며 대외 구매력은 17년 만에 최저로 쪼그라들었다. 비싸진 금리는 2000조원 빚 더미의 가계를 신용 위기로 몰고 있다. 먹고 쓰는 생활 물가가 무섭게 뛰고, 집값과 전·월세값은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치솟았다. 주식으로 돈 좀 벌었다고 좋아하는 사이, 생활비며 주거비며 민생 비용은 그보다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다. 쓸 돈은 늘고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아무리 힘들게 달려도 제자리인 ‘붉은 여왕의 딜레마’에 빠진 형국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주당 정권은 선거 때까지 주가만 올라주면 된다는 식이다. 현금 뿌리기 재정 살포로 물가·환율·금리를 자극한 장본인이 ‘코스피 8000’을 내세워 경제 실정(失政)을 물타기하려 한다. 경제적 약자일수록 더 고통스러운 고비용 민생 구조를 만들어 놓고는 3고(高)가 “도약의 과정”이자 “성공의 비용”이라며 궤변을 펼치고 있다.
유세장에 선 집권당 대표는 “누가 주식 계좌를 3배로 불려 줬냐”고 외친다. 먹고사는 게 여전히 고단한데 주가가 오른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주식으로 민생 파탄을 덮으려는 선거 공학적 구호 앞에서 우리는 과거 대선 때 회자됐던 그 유명하고도 근본적인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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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29889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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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코스피 상승으로 이익을 보거나 주식 계좌를 보며 흐뭇한 분들은 민주당에 투표해 달라"고 말한 것에 대해 국민의힘은 "82%의 하락 종목 투자자들을 향한 약올리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https://www.freezin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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