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한동훈 징계 국면] 판사와 투사 사이, 장동혁의 이중 포지션

배셰태 2026. 1. 16. 09:19

※판사와 투사 사이, 장동혁의 이중 포지션

정치에서 가장 어려운 기술은 싸우지 않으면서 싸우는 것이다. 최근 한동훈 징계 국면에서 장동혁 대표가 보여주는 행보는 그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는 한동훈 징계와 관련해 즉각적인 최고위 의결을 미루고, 재심 청구 기간이라는 형식적 절차를 열어두는 한편, 동시에 단식이라는 고강도 대여투쟁에 돌입했다. 겉으로 보기엔 상충돼 보이는 두 선택은, 실제로는 치밀하게 분리된 전략적 포지션이다.

장동혁의 대(對)한동훈 전략은 철저히 판사적이다. 그는 한동훈을 정적이나 정치적 경쟁자로 직접 규정하지 않는다. 대신 윤리위와 최고위, 당헌·당규라는 제도적 틀 안에 그를 위치시킨다. 재심 기간을 부여한 결정은 관용의 표현이라기보다 “설명할 기회는 열어두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이 순간부터 한동훈은 공격자가 아니라 해명해야 할 당사자, 즉 피고의 위치에 놓인다. 장동혁 자신은 판단을 유보한 채 판사석에 머문다.

반면 단식이라는 선택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한다. 단식은 한동훈을 향한 메시지가 아니다. 이는 여권 전체, 나아가 정치권 전반을 향한 대여투쟁의 상징적 행위다. 여기서 장동혁은 판사가 아니라 플레이어다. 권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 아니라, 몸을 던져 저항하는 투사의 이미지다. 중요한 점은 이 두 역할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판단의 영역과 투쟁의 영역을 분리했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동훈**은 정치 검사적 전략을 택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절차적 피해자이자 원고로 설정하고, 장동혁을 가해자 혹은 피고로 규정하려 한다. ‘계엄’, ‘조작’, ‘헌정 파괴’와 같은 과잉된 언어를 통해 여론이라는 배심원을 설득하려는 방식이다. 그러나 문제는 실제 제도적 법정이 이미 형성돼 있다는 점이다. 윤리위와 최고위, 당원이라는 구조 속에서 한동훈은 판단의 대상에 놓여 있다. 이 상황에서 가상의 법정을 만들어 상대를 범죄자처럼 몰아붙이는 전략은 허수아비를 세워 싸우는 모습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장동혁의 재심 유예는 이 점을 더욱 분명히 한다. 그는 한동훈에게 선택지를 남겼다. 재심에 응할 것인가, 사과할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장외 여론전에 머물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든 비용은 한동훈이 부담한다. 응하면 기존 강경 노선의 정당성이 흔들리고, 응하지 않으면 절차적 문제 제기의 설득력이 약화된다. 반면 장동혁은 “기회는 충분히 줬다”는 기록을 남긴 채 한 발 떨어져 있다.

정치에서 판사와 투사를 동시에 자임하는 것은 대개 실패로 끝난다. 그러나 지금 장동혁의 전략은 다르다. 그는 한동훈에게는 판사로 남고, 정치권 전체를 향해서는 투사로 보인다. 판단의 권위와 도덕적 저항을 분리해 각각 다른 무대에 배치한 것이다. 이는 고도의 자기 통제 없이는 불가능한 선택이다.

이 국면의 본질은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느냐가 아니다. 누가 판단하는 위치를 점유했는지, 그리고 누가 그 판단의 대상이 되었는지가 핵심이다. 현재까지의 흐름을 보면, 판사석은 장동혁에게 고정돼 있고, 한동훈은 그 앞에서 응답을 요구받는 위치에 서 있다. 단식은 그 위에 덧붙여진 상징일 뿐, 권력의 중심을 내어준 신호는 아니다.

정치는 때로 칼을 휘두르지 않고도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지금의 장동혁 전략은 바로 그런 유형에 속한다. 판을 쥔 채 몸을 던지는 선택, 그 난이도만큼이나 결과 역시 가볍지 않을 것이다.

출처: 심규진 페이스북 2026.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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