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식 칼럼] 탄핵과 사법리스크라는 정치적 이중주가 향하는 곳
펜앤드마이크 2024.10.30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前 국민의힘 광주서구갑 당협위원장)
https://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89656
- 윤석열도 이재명도 '탄핵'과 '사법처리' 어렵단 걸 알아
- 누구도 서로를 쓰러뜨리지 못하는 교착상태 이어질 것
- 만약 탄핵이 된다면 모든 책임 한동훈이 뒤집어쓰게 돼
- 한동훈은 유승민, 김무성의 정치적 운명 뇌리에 새겨야
- 내년 상반기까지가 골든타임, 이 때 대한민국호 운명도 결정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로를 향해 노리는 정치적 칼춤의 궤적이 어떤 희비 쌍곡선을 그려내게 될까. 윤 대통령의 칼날은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를 노린다. 반면 이재명의 칼날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모아진다. 누구의 칼날이 먼저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느냐에 따라 두 사람의 운명뿐만 아니라 ‘대한민국호’의 미래도, 여기에 승선하고 있는 5천만 국민의 운명도 결정된다.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선고는 11월 15일, 위증교사 혐의에 대한 1심 선고는 11월 25일이다. 1심 선고가 다가오면서 이재명이 엄청난 압박감을 느낀다는 것을 민주당 의원들의 동태에서 읽을 수 있다. 민주당 의원 40여 명이 소속된 ‘더 여민 포럼’은 2차에 걸쳐 ‘사법 정의’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이재명은 무죄”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검찰독재대책위원회는 <검찰공화국, 대한민국> 저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검찰의 기소가 부당하다고 따졌다.
지난 22일 국회 법사위의 서울고등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이 법원장을 앞에 세워놓고 “이재명에게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이재명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거나, 위증교사 사건에서 금고 이상의 형(집행유예 포함)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상실하고 향후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민주당이 필사적으로 이재명의 무죄 논리를 부각시키고 법원을 압박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이런 태도는 적지 않은 비판을 부르고 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조차 “민주당이 유죄를 예상하고 다급한 것으로 읽힐 수 있다. 당과 이 대표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과연 우리나라 법원은 이재명에게 유죄를 선고할 수 있을까? 어떤 판결을 내리더라도 엄청난 후폭풍은 불가피하다. 이런 경우 법원은 조직의 안위를 최우선 고려 사항으로 하는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우파 진영에서는 사법부의 엄정한 판결에 의해 이재명이 응징되기를 기대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사법 정의는 실현되기 어렵다. 유죄를 선고하더라도 법정 구속은 불가능하며, 아마 대법원 판결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이재명의 대선 출마에는 지장이 없는 판결로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대선이 끝난 뒤의 문제는 그때 가서 보자는 식이다. 무책임하지만 사실 정치권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사법부로 떠넘겨진 상황에서 법원의 선택의 폭은 매우 좁다.
무엇보다도 정치인의 운명은 사법부의 판결이 아닌, 국민들의 정치적 판단과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는 분명한 진실을 잊으면 안된다. ‘지지율이 10% 넘는 대선후보를 구속시킬 수 있는 사법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정치 컨설턴트도 있다. 설혹 이재명이 유죄 판결을 받고 구속된다 해도 그건 이재명의 몰락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 중량감을 키워주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올해 초 부산에서 벌어진 이재명 피습 사건이 정치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생각해보면 유추가 쉬울 것이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대결은 이 대표의 승리로 귀결되는 것일까? 지금 판세로 보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드디어 20% 하한선마저 뚫고 곤두박질칠 조짐마저 보인다. 언론과 정치 평론가들은 ‘이 정도 지지율이면 사실상 국정 운영이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도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윤 대통령을 향한 이재명의 공세는 탄핵이라는 단어로 집중된다. 하지만, 탄핵은 민주당과 좌파 진영에 일종의 ‘독이 든 성배’이다. 지금 탄핵의 분위기가 점차 무르익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민주당 지지층 입장에서는 ‘Again 2017’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 정세는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와 비슷한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많다.
무엇보다도 대중들의 열기가 당시처럼 끓어오르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 탄핵은 2014년 세월호 사건과 2016년 20대 총선의 패배, 최순실 사건의 연속선상에 놓여있다. 좌파 진영은 그런 일련의 사건의 연속선상에서 대중의 분노와 투쟁 열기를 고양시킬 수 있었고 이런 분노가 탄핵의 결정적인 에너지로 작용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도 사실상 법리에 근거한 판단이라기보다 광화문 일대를 메우고 헌재를 둘러싼 군중의 압력에 의해 이루어진 일종의 인민재판의 성격이 강했다. 그런 상황에서 헌법재판관들이 자유롭게 소신에 따라 탄핵 소추안을 기각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국회에서 여당 의원들까지 자기 당 출신 대통령 탄핵에 동조한 상황이었다. 대세는 이미 결정됐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이태원 참사와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등 다양한 이슈를 불쏘시개 삼아 대중의 투쟁 불길을 피워올리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2017년 탄핵의 결과에 대한 국민들의 경험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 경험이 문재인의 정권 연장 실패와 윤석열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지금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많지만 그게 탄핵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을 무(無)로 돌리는 것은 아니다.
10·16재보궐 선거 결과도 냉정하게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재보궐 선거는 여야 모두 자기 텃밭을 지키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무승부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탄핵은 정치적으로 민주당의 완승, 나아가 국민의힘의 몰락을 의미한다. ‘완승 및 몰락’이라는 극단적인 가능성과 ‘무승부’라는 현실적인 결과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 비록 10·16재보궐 선거는 미니 선거였지만 여야가 총력을 기울인 전면전이었기에 그 결과를 쉽게 무시하기는 어렵다.
부산 금정구청장 선거의 경우 국민의힘 후보는 61%로, 39%를 득표한 민주당 후보에게 22%포인트 앞섰다. 선거 전 이 지역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30%대에 간신히 턱걸이하고 있었다. 게다가 민주당 후보는 조국당 후보와 단일화도 이룬 상태였다. 그래서 국민의힘 텃밭이지만 이번에는 민주당이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국민의힘 후보는 지지율의 2배 넘게 득표했다. 이게 뭘 말할까.
국민은 윤석열 정권에도 비판적이지만, 그렇다고 대통령 탄핵이라는 또 한 번의 헌정 중단 사태를 원하는 것도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어차피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의 민심이라고 의미를 평가절하할 수도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에서 보듯이 탄핵 등 헌정 중단 사태는 보수 성향 국민들의 동의까지 전제해야 가능하다. 지금 윤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의 본질도 ‘보수 성향 국민들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여론조사의 수치는 사실 중층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표면적인 데이터의 기저에 흐르는 민심도 읽어야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지금 윤 대통령에 대한 여론의 거부 반응도 표면적인 현상 아래에 깔린 저변의 민심까지 입체적으로 감안하며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민주당이 이런 민심을 읽지 못할 경우 거대한 역풍을 부를 수 있다. 이런 역풍이 현실화되면 민주당은 ‘위헌 정당’으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현재 상황을 보다 입체적으로 따져본다면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가 이재명의 구속이나 대선 출마 차단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탄핵이나 하야 등으로 윤 대통령의 임기가 단축되어 조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도 일반적인 전망과 달리 그다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윤 대통령이나 이재명 모두 냉정하게 계산하고 있지 않을까?
지난 21일 윤 대통령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김건희 특검법’과 관련해 “여당이 위헌적이고 헌정을 유린하는 법에 브레이크를 걸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민주당이 재발의한 김건희 특검법에 대통령이 다시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국민의힘 ‘이탈표’를 막기 어려울 수 있다는 한 대표의 발언에 대통령은 “여당 의원들의 생각이 바뀌어 야당 입장처럼 가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답했다고 한다. 한 대표의 노골적인 ‘협박’에 대통령 역시 ‘해볼 테면 해봐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이는 한 대표와 국민의힘이 등을 돌리는 상황조차 각오한 대통령의 결기일 수도 있지만, 반면 탄핵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면밀한 상황 분석에서 나오는 자신감일 수도 있다.
이 대목에서 한 대표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혹시라도 탄핵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그 모든 책임은 한 대표가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재명보다 더 결정적인 탄핵 책임자로 낙인찍히게 된다. 왜 탄핵의 주역인 이재명이 아닌 한 대표가 책임을 뒤집어쓰느냐고 억울해할지도 모르지만 이건 논리의 차원이 아닌, 대중의 정서 차원에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설혹 한 대표가 국민의힘 이탈표를 막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우파 대중은 국민의힘 내부에서 이탈표가 나온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고, 그 책임은 당대표에게 묻는 게 당연하다. 이것은 필연이다. 당대표는 그런 책임과 권력이 결합된 정치적인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2017년 탄핵의 주역이었던 유승민, 김무성의 정치적 운명을 생각해봐야 한다. 두 사람 모두 우파 진영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 강력한 대권주자였지만 앞으로 그들이 우파 진영의 단일 대권후보가 될 기회는 오기 어려울 것이다. 박근혜 탄핵과 관련해 그들로서도 왜 할 말이 없겠나? 사람들도 그걸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정치적 책임은 반드시 누군가 져야 한다. 흔히 ‘탄핵의 강’이 거론되지만 유승민, 김무성 모두 탄핵의 강을 건너는 것은 불가능하다. 적나라하게 이야기하자면 두 사람의 사후에까지도 그 책임은 역사에 기록되어 후대에 전해질 것이다. 이것은 정치 지도자에게 주어진 숙명과도 같다. 한 대표는 이 사실을 뚜렷하게 뇌리에 새겨야 한다.
탄핵이 다시 한 번 통과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인용 여부와 무관하게 대한민국의 헌정은 중단된다. 벌써 세 번째다. 노무현에 이어 박근혜 그리고 이번에는 윤석열까지. 이렇게 자주 헌정이 중단되는 나라가 정상적인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비슷한 사례와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남미나 아프리카 등 쿠데타로 헌정 중단이 잦은 국가들의 현실을 보면 된다. 일정한 수준에 오른 중진국 이상의 국가들 가운데 이렇게 헌정 중단이 잦은 경우는 거의 없다. 이미 흔들리고 있는 경제의 추락도 당연하다. 그나마 다른 나라들은 안보의 위협은 덜한 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북한과 중국의 위협이 현존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불안한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탄핵은 성사되기 어렵다. 지금처럼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누구도 결정적으로 상대를 쓰러뜨리지 못하고 지루하게 대치하는 교착 상태가 이어지면서 다음 대선 날짜가 다가올 수도 있다. 정치 일정상 올해 안에 탄핵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정치권은 내년부터 지방선거 국면에 들어간다. 선거는 다른 모든 정치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재명이 아무리 민주당 의원들을 독촉하고 채찍을 휘둘러도 일사불란한 통제력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그러면서 재판은 하나 둘 결과를 내놓게 된다. 그 재판 결과가 별 일 없이 지나간다고 해도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에너지가 분산되는 것이다.
이재명과 민주당이 지금처럼 탄핵에 모든 정치적 에너지를 투입한다고 했을 때 결정적인 순간에 탄핵이 불발되면 무슨 현상이 생길까? 일정한 방향을 향하던 에너지는 반드시 반작용을 부른다. 탄핵의 반작용이 어떻게 올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금 탄핵을 둘러싼 대치는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미래를 향한 일종의 정치적 적금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적금 잔액의 크기가 오는 지방선거와 나아가 대선의 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지금은 윤석열과 이재명이 정치적으로 하루살이가 되느냐, 아니면 긴 호흡으로 역사의 주인공이 되느냐를 결정하는 시기이다. 이 결정적인 타이밍은 내년 상반기까지라고 볼 수 있다. 이 정치적인 골든타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윤석열과 이재명, 그리고 대한민국호와 여기 승선한 5천만 국민의 운명이 결정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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