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모스크바까지 겨눈 최측근 프리고진의 무장 반란…“독재자 푸틴 최대 위기”■■

배세태 2023. 6. 25. 15:06

모스크바까지 겨눈 최측근의 반란…“독재자 푸틴 최대 위기”
조선일보 2023.06.25 이가영 기자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3/06/25/SVYZ26U6XVAIDG3JMR4VBRV43I/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각) 긴급 TV 대국민 연설에서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을 향해 "반역"이라고 말했다. /AP 연합뉴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를 향해 거침없이 진격하던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이 하루 만에 마무리됐다.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외신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약해진 지배력을 드러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24일(현지시각) 영국 가디언은 “프리고진의 반란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멈출 수는 없었지만, 흔들린 러시아는 분명 서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매체는 푸틴 대통령이 프리고진을 비난하는 긴급 연설을 했던 건 이번 반란이 크렘린궁에 얼마나 위협이 됐는지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쯤 긴급 TV 대국민 연설에 나서 “우리는 등에 칼에 꽂히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반역에 직면했다”며 프리고진에게 가혹한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디언은 “푸틴 대통령이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다면 이러한 연설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바그너 그룹은 푸틴 대통령에게 직접적으로 도전할 수 있을 만큼의 세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푸틴 대통령의 권력에 약점이 생겼다는 걸 보여줬다.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의 군 사령부를 접수한 후 하루 만에 800㎞를 진격해 모스크바 코앞까지 다다랐다. 만약 러시아 군이나 정보기관 중 어느 부대라도 프리고진 편에 서기로 했다면 힘의 균형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푸틴 대통령이 오랫동안 이야기해온 ‘완전한 통제력’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4일(현지시각)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 군 사령부를 떠나면서 시민과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가디언은 “프리고진의 반란이 끝났더라도 러시아군 지휘관 사이에 혼란과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우크라이나는 이를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프리고진의 반란은 범죄자 무리를 이끄는 사이코패스와 크렘린궁에 앉아 러시아의 재산을 측근들에게 나눠주는 마피아 두목의 대결이었다”며 “하지만, 산만하고 약해진 러시아 상황은 모두에게 좋은 소식”이라고 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역시 “프리고진의 반란이 무산되더라도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푸틴 대통령의 권력 장악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봤다. 영국 국방부에 따르면 바그너 그룹은 적어도 두 곳의 러시아군 주요 보안 시설을 점령하면서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폴리티코는 “프리고진의 반란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지도자로서 25년 동안 직면한 가장 큰 정치적 위기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모든 독재자의 핵심은 ‘도전할 수 없는 권력’이지만, 지난 24시간 동안 러시아에서 드러난 건 우유부단함이었기 때문이다. 매체는 “가장 큰 문제는 프리고진의 몰락이 푸틴 대통령의 퇴진을 위한 발판으로 연결될지 여부”라고 했다.

미국 CNN은 “푸틴 대통령이 그동안 유지해 온 독재 체제의 궁극적 장점인 완전한 통제력이 하룻밤 사이에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 역시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이 진압됐다 하더라도 푸틴 대통령의 지도력에는 타격을 입었다고 봤다. 러시아 군사 전문가 마크 갈레오티는 뉴욕타임스(NYT)에 “이 일이 어떻게 진행되든 푸틴 대통령의 신뢰성과 정당성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군사 분야 싱크탱크 ‘전략‧기술 분석 센터’의 루슬란 푸코프 소장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장기전이 러시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푸틴 대통령과 일부 엘리트의 희망은 위험한 착각”이라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는 러시아에 엄청난 정치적 위험을 가한다”고 경고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AFP 연합뉴스

프리고진은 23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을 공개 비난했고, 그를 응징할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 당국은 프리고진에게 무장 반란 혐의를 적용하는 한편 체포 명령을 내렸다. 이에 반발한 바그너 그룹은 우크라이나에서 국경을 넘어 하루 만에 1000㎞ 거리에 달하는 모스크바로 빠르게 진격했다.

긴장감이 고조되던 순간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바그너 그룹과 협상을 통해 병력 이동을 중단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프리고진 역시 유혈 사태를 피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향하던 병력에 철수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렘린궁은 프리고진에 대한 형사입건이 취소될 것이며 그는 벨라루스로 떠날 것이라고 했다. 바그너 그룹 병사들도 기소하지 않기로 했다.

23일 시작된 프리고진의 무장 반란은 24일 밤늦게 그가 점령했던 로스토프나도누 군 사령부를 떠나면서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