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백운규 공소장] 청와대 행정관, 2018년 산자부 담당 과장에게 “원전 중단, 대통령 머리 깊이 박혀 있으시다”

배세태 2021. 8. 25. 16:37

[단독] 靑행정관 “원전 중단, 대통령 머리 깊이 박혀 있으시다”
조선일보 2021.08.25 이정구 기자
https://www.chosun.com/national/court_law/2021/08/25/OWPQ3DV5QNA6DBTY2TP2IFARQE/

2018년 청와대 행정관이 원전 정책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 담당 과장에게 월성 원전 즉시 가동 중단을 요구하며 “이거(월성 원전 가동 중단)는 대통령께서 머리 깊이 지금 박혀 있으신 거다”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의 공소장에 담긴 것으로 24일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4월 2일 청와대 내부 보고 시스템에 ‘월성 1호기 외벽에 철근이 노출되어 정비를 연장한다’는 취지의 보고서가 올라오자 ‘월성 1호기의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인가요’라는 댓글을 남겼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이 청와대 행정관이 산업부에 원전 즉시 가동 중단을 요구하면서 이같이 말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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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1호기./뉴시스

이날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김모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실 행정관은 2018년 4월 3일 정모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과장에게 전화해 “대통령께서도 (원전) 즉시 중단에 관심이 있어 즉시 중단에 대한 ‘어드레스’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드레스(address)에는 연설·보고·준비라는 뜻이 있다.

김 행정관은 하루 전날 문 대통령의 댓글을 발견해 채희봉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에게 보고한 사람이다. 그런데 정 과장이 “모든 게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가야 되는 거라 좀 힘들다”며 원전 조기 폐쇄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자, 김 행정관이 “장관님도 이걸 아셔야 돼”라면서 원전 중단에 대한 문 대통령의 뜻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김 행정관이 대통령의 하문(下問) 경위와 배경, 청와대 분위기 등을 전달하며 빨리 장차관에게 즉시 가동 중단으로 보고한 뒤 보고서를 보내 달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24일 대전지법에서는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과 관련해 기소된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직권남용·업무방해),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배임·업무방해) 등에 대한 첫 재판이 열렸다. 검찰은 이날 재판에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청와대·산업부·한수원 고위 관계자의 조직적 범죄 의사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가 청와대에서 시작됐다는 내용은 백 전 장관 등 공소장에 자세히 담겨 있다. 문 대통령이 2017년 5월 취임하자 원전 운용사였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월성 1호기 즉시 폐쇄’ 등 탈원전 대선 공약을 검토했다. 한수원은 이때 ‘월성 1호기 가동 중단 시 약 1조8000억원 손실이 발생하는 만큼 정부가 특별법 제정을 통해 가동 중단 조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라는 결론을 냈다.

산업부는 한수원의 결론을 바탕으로 당시 인수위원회 역할을 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세 차례 업무 보고하고, 김수현 당시 청와대 사회수석비서관에게도 ‘탈원전 정책은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보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국정기획자문위는 그해 7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등을 산업부 국정과제로 확정했고, 대통령 비서실은 김수현 사회수석비서관을 팀장으로 하는 ‘에너지전환 TF’를 만들어 탈원전 정책 이행을 시작했다.

이후 2018년 4월 2일 문미옥 당시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이 앞서 월성 1호기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 청와대 내부 보고 시스템에 ‘월성 1호기 외벽에 철근이 노출되어 정비를 연장한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올렸고, 문 대통령이 ‘월성 1호기의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인가요’라고 댓글을 달았다.

댓글을 보고받은 채 전 비서관이 김 행정관에게 “산업부에 대통령께서 하문하신 내용을 전달하고, 조기폐쇄 계획을 장차관까지 보고한 입장을 전달받아라”라고 지시했다. 이후 백운규 전 장관은 이튿날 ‘월성 원전 추가 가동 의견’ 보고서를 쓴 담당 과장에게 “너 죽을래”라며 질책하고, 바로 그다음 날 ‘즉시 가동 중단’ 보고서를 다시 받아내 청와대에 보고했다. 문 대통령 ‘댓글’ 이틀 만에 산업부 방침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이 과정을 수사한 검찰은 청와대 지시에 따라 ‘즉시 가동 중단’으로 먼저 결론을 내버린 산업부와 한수원이 외부 회계법인과 함께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를 조작해 조기 폐쇄 명분을 만들어냈고, 그 결과 한수원에 1481억원 손해를 입혔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