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태극기 집회와 이선본] 영성(spirituality)과 비정당-시민정치(non-party politics)]

배세태 2017. 9. 24. 14:02

영성(spirituality)과 비정당-시민정치(non-party politics)

 

최고의 경지에선 순서가 바뀌어도 의미가 같다. '정치적 성자'(political saint)와 '성자적 정치'(saintly politics)는 사실 같은 것을 뜻한다.

 

원래 '정치'(polictics)와 '성자'(saint)는 함께 하기 어렵다. 오죽하면 예수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고 말했을까...

 

그러나 특이한 예외적 시간과 장소에선 정치와 성자가 함께 하기도 한다. 정치적 성자가 등장해서, 성자적 정치를 실행한다.

 

우리 역사에선 우남 이승만이 정치적 성자이다. 유럽에선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아버지로 꼽히는) 18세기 말 19세기 초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가 그런 존재다. 미국에선 아브라함 링컨이 그런 존재다. 이렇듯 '정치적 성자'란 참으로 고귀하고 드문 존재다.

 

잠깐 삼천포.,.. 한국인은, 정치적 성자(우남 이승만)를 배출해 놓고도 그 존재의 의미를 해석해 내지 못 한 채 하와이 요양원에서 모포 한 장 덮고 숨지게 만들고, 그 묘비에 '건국대통령'이라 써놓지 못 하고, 아직도 친일파 늙은이라고 중상모략하고 있는 민족이다. 한편 중국인은 대량학살 살인마(모택동)를 정치적 성자로 떠받드는 국민이다. 한국인과 중국인, 이 둘 중 어느 편이 더 개돼지에 가까울까? 막상막하 개찐도찐 아닐까?

 

아무튼... '정치적 성자'(political saint)와 '성자적 정치'(saintly politics)는 같은 것을 뜻한다. 최고의 경지, 최상의 경지에선 말의 순서를 바꾸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말이 끊어지는 곳'(思議路絶, '생각의 길이 끊어지는 곳'----원효의 표현)이요 말의 속살/뒷면으로 소통되는 지평(在言裏, '말의 뒷면'---원효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수가 낮아지면 엄밀해 져야 한다. 그때엔 말의 순서가 매우 중요해진다. Kim ate a dog. (김은 개를 한마리 잡아먹었다) A dog ate Kim. (개가 김을 잡아먹었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른 뜻 아닌가!

 

예를 들어 나(뱅모)는 '성직자스런 정치'(priestly politics)를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절대로 '정치적 성직자'(political priest, 함00 문00 같은 종류의 인종들)는 되고 싶지 않다.

 

'정치적 성직자'는 질색이다. 그럴 바엔 정치가를 하고 말지, 뭐하러 성직자를 하나? 성직자는 '영혼의 세계를 더듬는 짐승'이며, '영혼 조가리(넋)를 지니고 살아가는 동료 짐승(인간)'에게 스스로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 역할을 해 주는 존재이다. 동료 짐승이 스스로의 영혼 조가리를 닦고 갈 수 있도록, 숫돌 역할을 해 주는 존재이다. 영혼의 세계를 더듬고, 거울이나 숫돌 역할을 해 주기도 바쁜데 눈떠서 눈감을 때까지 정치에 몰빵한다? 이는 자신의 정치 놀음을 위해 종교기관 및 신도들을 착취하는 이상한 존재일 뿐이다.

 

반면 '성직자스런 정치' 하는 사람은 점점 더 많아져야 한다. "성직자스럽다"는 것은 무엇인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정치 활동이 직업/커리어가 아닌데도, 직업/커리어 이상으로 몰두해야 한다.

 

"당신 직업이 뭡니까?"라고 묻는 질문에 "신붑입니다" 혹은 "목삽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무슨 운명을 살고 있는지 모르는 자이다.

 

답은 마땅히 "무직입니다"라고 나와야 한다. 예수의 직업은 무직이다. 베드로, 바울, 모두 무직이다. 부처의 직업 역시 무직이다. 달마, 혜능, 원효, 의상의 직업 역시 무직이다. 성직은 직업의 이름이 아니라 운명, 즉 팔자의 이름이다. 물질에 관해 성직자는 '빌어먹고 사는 무직자'이다.

 

다시 말해 직업정치(정당정치)가 아닌 비정당 정치(이른바 '시민정치')를 하면서도, 직업 이상으로 몰두-집중해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자유애국 진영에는 그 동안 이런 인간들이 없었다. 반면 깡통진보/종북/친북에는 이런 인간들이 많았고,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이게 그들의 자산이었다.

 

둘째, 직업, 커리어가 아닌데도 직업/커리어 이상으로 몰두하는 것은 입맛/관점/사상/이념/가치 때문이어야 한다. 입맛/관점/사상/이념/가치가 순정하고 뜨겁고 세련되면 좋다. 한마디로 '정신의 귀족'이면 더 좋다.

 

셋째, 이같은 입맛/관점/사상/이념/가치가 영성(spirituality)으로부터 나온 것이면 더더욱 좋다. 영성은 '성직자스런 정치'를 하는 사람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정치적 성자'에서 화끈하게 보여진다.

 

예를 들어,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아버지 에드먼드 버크는 엄청 영성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신들린 예언자'(divine prophet)였다. 또다른 예를 들어 아브라함 링컨을 보자. 그는 기묘한 칵테일이다. 그는 평생 네 가지 책을 끼고 살았다.

 

성경, 셰익스피어전집, 유클리드기하학, 에드가-알란-포 전집.... 성경의 영성을 기본에 깔고.... 인간세상의 기쁨,슬픔.비열, 영웅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셰익스피어).... 논리적 사고의 명징성을 음미하고(유클리드 기하학)..... 삶의 원초적 허무/의미없음을 직시(에드가 알란 포우)했다. 특히 에드가 알란 포우는 허무/의미없음을 들고 파는 '데까당 문학'의 시조였음에 주목해야 한다. 악명높은 데까당 문학 작품 '악의 꽃'을 지은 보들레르는, 포우의 정신적 제자쯤 된다. 한마디로 링컨은 '악마적 우울/의미없음/허무'를 깊에 들어다 보며 살았던 '정치적 성자'였다.

 

우리가 버크나, 아브라함이나, 우남 이승만 급의 정치적 성자가 아니라고 기 죽을 것 없다. 우리가 기껏 해야 '성직자스런 정치' 수준에 머무를 수 밖에 없음에 대해 답답해 할 것, 전혀~~ 없다.

 

우리 역시 (그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한) 영혼 조가리를 간직하고 있는 존재다. 그 조가리가 발휘하는 힘이 바로 영성이다.

 

영혼은 무의식의 뒤편 깊은 곳에 머물고 있지만 실은 우리의 모든 것을 움직이며 조정하고 있다..... 어쩌면 하나의 조가리가 아니라, 여러 성향의 영혼 조가리들일 수도 있다. 성직자 성향, 살인자 성향, 사기꾼 성향, 군인 성향, 시인 성향, 엔지니어-과학자 성향, 변태 성향, ....

 

"인간 무의식의 뒤편에는, 여러 개의 영혼 조가리들이 서로 어울리기도 하고 으르렁거리도 하는 생태계가 존재한다"--이 관념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니체다.

 

그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이건 뱅모가 번역한 판본의 제목이다... 통상은 '차라투스트라'라고 불린다) 제4부가 바로 '영혼조가리들의 생태계'를 나타낸다. 니체는 자기 자신 속에 최소한 아홉개의 영혼 조가리가 있다고 봤다. 니체의 이같은 관점을 '심리학 체계'로 만든 사람이 융(Jung)이다. 그가 말하는 '개인화'(Individuation)란, 무의식의 뒤편에 존재하는 여러 영혼 조가리들이,..그들 특유의 다툼, 긴장, 불협화음, 내전을 멈추고 하나로 평화스럽게 조화되어... [분리될 수 없는 in-dividable] 인격체---개인이 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아무튼. 인간은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 하나 하나를 깨 보고 파 보면 그 안으로부터 뭐가 튀어나올 지 모른다. 하나로 융합되지 못 한 채 서로 내전을 벌이고 있는 영혼 조가리가 수천개 튀어나오는 가련한 존재도 있을 게다. 세상 살아 보면 안다. 인간은 '영성을 가진 짐승'이란 것을 안다. 서양 언어가 인간을 두고 '몸뚱아리(body)'와 '영혼(soul)', 이분법으로 표현하는 데에는 깊은 뜻이 있다.

 

아무튼 위, 첫째, 둘째, 셋째를 합치면 무엇이 나올까? [입맛/관점/사상/이념/가치로 중무장한 '정신의 기사/귀족'(The Knight/Noble of MInd)이, 구역질-답답함-울분을 참지 못 하고 떨쳐일어난 상태] ---이런 사람들이 여기 저기 생겨나야 한다. 이런 사람들이 펼치는 비정당 정치활동을 나는 '성직자스런 정치'라고 부른다.

 

아, 그런 정치, 어딨냐고? 태극기 집회에 가보면 널려 있다. 거기엔 단 한명의 '정치적 성직자'가 없다. 대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성직자스런 정치'를 실행하고 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정신의 기사/귀족'으로 입문한 사람들이다. 입맛/관점/사상/이념/가치가 조금만 더 가다듬어지면 그사람들의 기사도, 귀족스러움이 완성된다.

 

입맛/관점/사상/이념/가치가 어느 세월에 가다듬어 지냐고?

 

지난해 11월엔 "박대통령님! 사랑합니데이~~"라는 오골거리는 구호와 함게 태극기 흔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박근혜대통령은 내 거야! 건들지마!"라고 자못 쉬크하게 인쇄한 티셔츠를 입고 시위한다. 그건 약과다. 이젠 선제북폭, 예방전쟁을 외친다. 평양붕괴, 자유통일을 외친다.

 

장담한다. 조만간 다음 구호를 내걸은 강력한 비(非)정당 시민정치 조직이 탄생한다. 이선본이 그같은 조직의 탄생을 위한 준비단계 조직이다. www.esunbon.org

 

전교조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민노총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평양의 핵/미사일/지배집단은 미군 폭격기로 지울 수 있지만, 이땅의 깡통진보/종북/친북은 총칼로 지울 수 없다.

 

집요한 '정신의 전쟁'을 통해서만 고립 위축 멸종시킬 수 있다. 수많은 '성직자스런 정치'를 실행하는 수많은 시민들....

 

그들이 펼쳐내는 거대한 [비(非)정당 시민 정치] 물결에 의해서만 전교조/민노총과 같은 그로테스크한 세력/관점/입맛을 고립 위축 멸종시킬 수 있다.

 

출처 : 박성현(뱅모) 페이스북 '17.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