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여론조사] 미국 언론이 만든 '샤이 트럼프' 한국 언론이 만든 '샤이 박근혜'

배셰태 2016. 12. 5. 09:54

박 대통령 여론조사에 담긴 치명적 함정 '샤이 박근혜'

미디어펜 2016.12.05 박한명 논설주간

http://m.mediapen.com/news/view/212383#_enliple

 

언론이 만든 파쇼적 사회분위기속 진행된 여론조사, 민심 제대로 못 읽어

 

여론조사 신뢰도의 문제는 하루 이틀 된 얘기가 아니다.(...) 전문가 등 일부 사람들은 원론적으로 여론조사 방법론이나 통계의 한계와 문제를 제기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여론조사 결과는 참고일 뿐 전적인 신뢰를 보내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들을 한다. 그러나 더 보태자면 궁극적으로는 여론조사기관 마저 정치에 물들어 공정성이 무너진 현실에 대한 일종의 경고의 의미로 봐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외국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최근의 미국 대선 결과가 말해 준다. 미국의 유력한 언론사들과 여론조사 업체들이 대부분 클린턴의 당선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트럼프 당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론조사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지만 따지고 보면 그럴 이유가 없었다.

 

언론사들이 노골적으로 특정한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면서 밑바닥에 흐르는 거대한 민심의 기류를 외면했고 그것이 엉터리 여론조사 결과를 양산하면서 다시 미디어에 대한 심각한 불신을 낳는 악순환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트럼프가 선거 후 대선 레이스 내내 트럼프를 헐뜯고 왕따시켰던 언론사 중 한 곳인 CNN 사장을 만나 "당신네 방송국을 혐오한다. CNN의 모든 이들은 거짓말쟁이이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독설을 날린 것을 보라. 지금 트럼프는 언론사 사장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 유튜브 SNS를 통해 정책을 설명하면서 직접 미국 국민과 소통하고 있다.

 

한국갤럽은 박근혜 대통령 국정지지율이 11월 들어 3주 동안 5%라는 조사결과를 내더니 11월 마지막 주와 12월 1주는 4%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리얼미터의 경우 최근 몇 주 10.9%-9.5%-9.9%다. 종편 등 언론은 리얼미터보다도 한국갤럽의 4% 결과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대통령을 공격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갤럽 여론조사 왜 못 미더운가

 

<중략>

 

작금 대한민국 모든 언론 미디어는 몇 주째 박 대통령 탄핵 촛불시위 참가자수를 부풀리고 과장 하면서 박 대통령 음해를 진행 중이다. 언론이 너무하다 싶은 생각이 들거나 박 대통령이 하야나 탄핵을 당해야 할 정도로 잘못했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속내를 쉽게 밝히기 어려운 현실이라는 얘기다.

 

미국 언론이 만든 '샤이 트럼프' 한국 언론이 만든 '샤이 박근혜'

 

당장 3일 주말에 있었던 박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를 보도하는 언론을 보라. 얼핏 보기에도 확 줄어든 광화문 촛불시위대단한 시민의식의 발로인 양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부풀리고 미화하면서 탄핵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집회는 어떻게 보도하나. 박사모 단체니 보수단체니 프레임을 짜서 축소하고 제대로 보도조차 하지 않는다. 일반 국민들은 이런 미디어의 노골적이고 일방적인 보도를 보면서 속에 있는 본심을 밝히기가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을 지지하거나 촛불에 끼어든 좀비같은 세력들을 조금이라도 비판하면 촛불을 폄하했다고 언론이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까대고 비난을 해대는 상황 아닌가. 광기어린 언론의 마녀사냥이 무섭고 자신도 당할까봐 속내를 감출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다. 한국갤럽의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은 소위 말해서 ‘샤이 박근혜’를 제대로 집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총선이나 지방선거와 같은 일반적인 선거에서는 한국갤럽의 방식이 보다 더 정확성을 기할 수 있다. 그러나 작금의 언론이 인위적으로 만든 인민재판 여론 속에서는 위축된 국민이 속내를 더 감출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다. 트럼프는 미친놈이라는 미국 언론이 만든 광적인 분위기가 트럼프 지지자들을 숨게 만들었던 '샤이 트럼프(숨은 트럼프 지지자)' 현상과 마찬가지로 박 대통령 지지자를 숨게 만든다는 얘기다.

 

대통령을 옹호했다가는 신상이 털리고 돌을 맞는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속내를 제대로 밝힐 수 있겠나. 우리 언론은 그런 파쇼적인 사회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광적으로 몰두하고 있다. 종편 등 언론이 리얼미터보다도 한국갤럽의 4% 결과를 편애하면서 히스테리컬하게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만 봐도 안다. 안 그래도 여론조사 회의론, 무용론이 제기된 지 오래다.

 

작금의 박 대통령 여론조사 결과는 대통령의 잘못이나 실질적인 부정적 여론을 감안하더라도 그대로 믿기 힘들다. 이런 여론조사로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탄핵시키는데 악용하려는 언론의 장난에 곧이곧대로 속아선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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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요]

※제3차 촛불집회 참가인원수 : 26만명(경찰 추산)

 

■[숫자놀음] 광화문 100만 촛불민심?…언론 광기가 만든 반정부 허위 선동

미디어펜 2016.11.15 박한명 논설주간

http://blog.daum.net/bstaebst/18974

 

언론이 지난 주말 촛불집회 참가인원수를 일제히 100만 명으로 보도하고 있다. 소위 조중동 한경오 등 예외가 없다. 경찰 측 계산은 다르다. 대규모 인원을 집계하기 위한 '페르미 추정법'이라는 계산법을 사용한다. 경찰의 26만명 계산은 이렇게 매 시간마다 현장에 집결한 '순간 최대 인원'을 카운트하는 방식을 취한 결과라고 한다.

 

조선일보를 포함한 언론들은 이제 그만 악의적인 보도를 멈춰야 한다. 박근혜정권 반대 시위세력인 주최 측이야 '100만 촛불민심'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이 경찰 추산 집계는 뭉개고 '100만 촛불민심'으로 단정해 일방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프로파간다(선동)이다.

 

언론이 나서서 정권을 뒤엎으려한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뿐이다. 지독한 언론의 광기는 국가적으로도 언론역사에도 큰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훗날 이번 사태에서 보인 언론의 집단적 광기가 언론 역사의 큰 오점으로 남지 않길 바랄 뿐이다.[요약]

 

※제5차 촛불집회 참가인원수 : 22만명(경찰 추산)

 

 

■제5차 광화문 촛불집회, 경찰 추산 22만명...제3차 26만명 수준에 못 미처

미디어펜 2016.11.27 한기호 기자

http://blog.daum.net/bstaebst/19058

 

■제5차 촛불집회 10만여명, 하야·탄핵하라?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풍선 민심

이디어폔 2016.11.27 김규태 재산권센터 연구위원

http://blog.daum.net/bstaebst/19056

 

26일 토요일 시위 5주차, 5~10만 인파로 추정되는 시위대는 경복궁 옆 청와대 앞길과 광화문 사거리를 오가며 자기들만의 축제를 즐겼다. 추위 가운데 SNS 인증샷을 올리며 기뻐하는 모습에서 2002년 붉은악마와 2008년 광우병 시위대가 오버랩 됐다.

 

하지만 집회를 거듭할수록 늘어나는 건 참가자가 아니라 노점상이었다. 이날 130만이 운집했다는 언론 보도는 허언이었다. 시청 앞 서울광장은 내내 텅 비어있었고 광화문 사거리 앞도 군데군데 여유로웠다. 박 대통령의 퇴진-자진 하야를 촉구하는 광화문 촛불집회의 동력은 꺼졌다.[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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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게도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미래한국 2016.11.27 한정석 편집위원/前KBS PD

http://blog.daum.net/bstaebst/19057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 헌법 제1조의 이 구절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헌법을 베낀 것이다. 독일은 이 구절을 2차대전 후, 헌법에서 삭제했다. 청와대를 포위하고 내란이나 외환의 죄가 아니면 소추되지 않는 대통령을 체포나 구속하라는 이들은 가치있는 삶을 사는 시민, 즉 '비오스'인가 아니면 ‘무지하고 비루한’ 자연인 쪼에들인가.

 

광장의 군중들은 어쩌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비오스의 정치적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찌의 독일 군중들도 그랬다. 나찌즘과 파시즘에 참여하는 삶도 정치적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정치적 행동이 좋은 것인가’라고 반드시 물어야만 한다. 그것이 정치철학이다

 

광장의 외침은 모든 국민이 복종해야 하는 헌정 질서와는 관계가 없다. 아무리 그 수가 100만을 넘고 폭력이 없는 평화집회라 하더라도, 그러한 외침과 행동은 주권자의 입법명령으로 제정된 헌법 질서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주권자란 만장일치로 성립된, 그래서 분할되지 않고 양도되지 않는 ‘총의(總意)적 존재’이지, ‘다수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권의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대통령은 결단을 해야한다. 현재의 상황을 혁명으로 보고 스스로 퇴임할 것인가, 아니면 반란으로 보고 헌정수호를 위해 내전을 결심할 것인가. 그것이 설령 비상대권을 통한 계엄의 선포이든 뭐든 대통령은 결단해야 하는 것이다.

 

통치의 덕은 최선과 차선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악덕과 다른 악덕 그 사이에 존재한다. 용기라는 덕이 '비겁'이라는 악덕과 '만용'이라는 다른 악덕의 사이에 있는 것처럼, 헌정수호의 '공화주의적' 결단 역시 '독재'라는 악덕과 '무정부'라는 다른 악덕의 어딘가 쯤에 놓여있다.

 

‘주권자는 주권의 예외적 상황에서 결단할 수 있는 자이다.’ 칼 슈미트의 말이다. 이 말이 지금 엄중하게 들리는 것은 주권의 최고 결정권자인 대통령이 주권의 예외적 상황에서 결단하지 못하면 주권은 다른 주권자들에게 넘어간다는 역사적 법칙 때문이다.[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