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1)

[인공지능(AI) 로봇 사회] 판도라의 상자 ‘기본소득’

배셰태 2016. 9. 10. 10:37

판도라의 상자 ‘기본소득’

시사IN 2016.09.08 이종태 기자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6885

 

기본소득은 한마디로 사회로부터 ‘그냥 받는 돈(money for nothing)’이다. 심지어 부자까지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준의 현금을 정기적으로 준다. 마치 유토피아(원래 뜻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같은 황당한 소리로 들리지 않는가?

 

그러나 미국·캐나다·핀란드·네덜란드·뉴질랜드 같은 선진국에서 올해 말에서 내년 초에 걸쳐 일제히 실험에 돌입하는 진지한 정책이다. 지난 6월 스위스에서는 한국 돈으로 1인당 월 300만원에 가까운 기본소득 시안을 둘러싼 국민투표가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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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이명익 우리 사회의 중심 가치인 자유가 제대로 구현되려면, 누구든 돈이 필요하다. 뭔가를 할 수 있는, 적극적 자유를 위해서 기본소득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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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초 <중앙일보>와 한국정치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20대 국회의원 217명 가운데 20.7%가 기본소득을 ‘적극 도입’하자는 의견을 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가운데서는 무려 43.5%가 ‘적극 도입’을 지지했다. 일반시민 대상 조사에서도 47%가 ‘공감한다’라고 답변했다. 포털 기업 ‘다음’ 창업자인 이재웅씨는 지난 1월 자신의 트위터에서 “자본주의의 붕괴를 막기 위해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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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3월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가 ‘기본소득 총선의제화 기자회견’을 열고 기본소득 실현을 위한 법적 토대 마련을 주장했다.

 

시장 자유와 국가 개입 반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우파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1960년대 초, 모든 시민에게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는 ‘음(陰)의 소득세(negativeincome tax)’ 제도를 주장한 바 있다. 국가가 정한 최저생계비보다 적게 버는 사람에게 그 차액을 국가보조금으로 메워주는 제도다. 다만 최저생계비는 생계만 겨우 꾸릴 수 있을 정도로 낮아야 한다. 그래야 수혜자들이 생계 이상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낮은 임금을 주는 기업에라도 취업할 것이고, 자본주의 사회는 문제없이 유지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프리드먼의 발상은 외형적으로 기본소득과 유사하지만 사실은 기업들에 보조금을 주는 제도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시장주의적 시각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기업 및 부자들의 소득세를 낮추거나 면제하자고 주장한다.

 

미국의 보수 싱크탱크인 카토 연구소도 의외로 기본소득에 호의적이다. 이 연구소는 복지 등 소득 재분배 장치에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그러나 재분배가 불가피하다면, 기본소득이야말로 가장 간단하고 정부 개입이 적은 재분배 제도라는 것이다. 기본소득 제도에서는 모든 시민에게 동일한 금액을 일률적으로 주면 된다. 정부가 복지급여를 주기 위해 시민들의 재산 수준을 조사해서 복지 수급 자격을 판단하거나 감시할 필요가 사라진다. 이런 일을 맡는 공무원도 줄어들고 재정도 감축될 것이다.

 

이처럼 시장주의 우파들의 기본소득제는, 자본주의를 지키고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 시립대학 교수 같은 리버럴리스트나 중도 좌파들에게 기본소득은 불평등의 심화를 막고, 저소득층의 수요를 늘려 시장경제를 원활히 작동시키기 위한 정책이다. 극좌파에게 기본소득은 공산주의로 가는 자본주의적 길이다.

 

ⓒ연합뉴스 7월7일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의원이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 대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 기업가들이 기본소득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이들은 기본소득을, 로봇과 인공지능이 거의 모든 일자리를 차지해버릴 미래 세계에서 모든 시민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긴다. 일자리를 빼앗길 시민들의 반발을 기본소득으로 달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본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로 세계적 명성을 지닌 Y콤비네이터 CEO인 샘 올트먼은 지난 1월, “앞으로 5년 동안 기본소득 실험을 실시하겠다”라고 발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 시민 가운데 일부를 골라서 매달 1000~2000달러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면서 그들의 행태를 살펴, 이 제도의 실현 가능성을 가늠하는 작업이다.

 

“기본소득은 정부 개입 적은 재분배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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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정부 반대에도 이재명 성남시장(오른쪽)은 부분적인 기본소득인 ‘청년배당’ 지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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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 Well 2014년 10월 NGO인 ‘직접 주자(GlveDirectly)’ 소속 감독관(왼쪽)이 우간다 주민들에게 기본소득을 현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복지 제도가 노동 의욕에 주는 영향 따위는 갈수록 중요하지 않은 이슈로 전락하는 분위기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문명 비평가 제러미 리프킨이 예언했던 것처럼, 2050년쯤이면 전통적인 산업 부문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데 전체 성인 인구의 5% 정도밖에 필요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일자리 자체가 줄어든다면, 노동 의욕 약화는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시민들의 노동 의욕이 지나치게 높을 때 일자리를 둘러싼 사회 갈등이 폭발할 수 있을 것이다.

 

2050년 성인 인구 5% 노동력만 필요할지도

 

<테크 인사이더>(4월19일)에 따르면, Y콤비네이터 CEO인 샘 올트먼이 팟캐스트 <괴짜경제학(Freakonomics)>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기본소득이 실현되면) 아마 사람들 가운데 90%가 마리화나나 피우고 비디오게임을 하며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머지 10% 정도라도 새로운 혁신적 제품과 서비스 그리고 새로운 부(富)를 창출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인류 사회는) 큰 이익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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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트먼은 기본소득 시스템을, 지루하고 힘든 일로부터 노동자들을 해방시켜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일에 전념하도록 만들 뿐 아니라 인공지능 로봇 사회에 대한 인간의 도전을 무마할 수 있는 안전장치로 간주하는 듯하다.

 

다만 인공지능과 로봇이 아무리 급속히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자동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설사 현재 직업 가운데 상당수가 자동화된다 하더라도 지금 예상만큼 큰 규모로 인간의 일자리가 사라질지는 확언할 수 없다. 산업혁명 이후 그래왔듯이 자동화 자체가 부수적인 일자리를 만들어내거나, 그 과정에서 다른 산업이 생겨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있다. 충분한 기본소득이 제공된다 해도, 인간이 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 반드시 좋은 현상일지도 의문이다. 사람들은 일을 통해 자신의 삶에 질서와 목표를 부여해왔다.

 

그러므로 기본소득의 전면 실시나 전면 거부를 당장 결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년 초부터 여러 나라에서 시작되는 실험이 2018년 말쯤 완료되어야, 새로운 제도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공상의 영역에 머물던 기본소득이 이제 막 현실 세계로 발돋움하기 시작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