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브루니 교수 "성심당 철학 확산되면 한국경제 구조 바꾸는 계기 마련될 것"
조선일보 2016.05.26(목) 김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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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경제학, 공동체적 개념에 대한 갈망 때문에 한국서 환영"
"어릴 적부터 교육 통해 시민적 문화 토양 일궈내야 협동조합 성공"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자유를 보호하려면 제3의 기둥, 바로 시민사회가 필요하다. 열린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일반적 의미에서의 국가 범위 밖에 남아 있는 결사체들 안에서 우리의 삶이 펼쳐진다는 점이다."
이탈리아 로마 룸사(Lumsa) 경제학과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50·사진)는 스테파노 자마니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교 정치경제학과 교수와 공저한 '21세기 시민경제학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밝혔다.
브루니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의 대안 담론으로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시민경제학'을 주창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시민경제학은 인간의 사회성과 상호성을 경제생활의 중심 요소로 바라본다. 사회성은 경제의 영역과 따로 떨어져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경제학은 개개인의 이익 추구와 사회성의 작동이 경제 활동 안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양립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되면 성장과 분배는 하나의 통합된 경제 행위 안에서 이뤄진다. 경제 행위는 사회 안에서 더불어 사는 시민의 손을 통해 벌어지는, 그 자체로 사회적 행위가 된다. 브루니 교수는 시민경제가 작동하면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는 질문은 더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공유 경제,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 등 다양한 이름으로 변주되고 있는 시민경제학을 이 시대 담론으로 제기한 브루니 교수를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팍팍한 릴레이 일정 탓에 예정됐던 인터뷰 시간은 1시간 30분이나 늦게 시작했지만, 인터뷰 시간은 예정보다 두 배나 길게 진행됐다. 그는 열정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 "시민경제, 한국에서 공동체적 개념에 대한 갈망 때문에 환영받아"
- 시민경제학은 아직 한국에서 낯선 개념이다. 어떤 논리를 갖고 있고,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알려달라.
"시민경제학이 추구하는 경제관은 공리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주류 경제학과 다르다. 단순히 비영리라는 명칭을 붙이는 게 시민경제학도 아니다. 한국에서는 사회적 경제를 흔히 비주류 경제로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한 마디로 단순화해서 설명하면 시민경제학은 새로운 개념의 범주다. '시민적이냐, 비시민적이냐' 이렇게 (구분해서) 보는 개념이다. 시민경제가 어떤 특정한 경제활동 분야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영리와 비영리를 구분하는 것도 아닌 모든 형태의 경제활동을 다 포용한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시민경제학이 발전한 국가에서는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 이익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즉 경제 자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유럽 내에서도 영국 중심의 북유럽 경제관과 이탈리아 등에서 발전하고 있는 경제관이 다르다. 영국 등에서 발전한 고전 경제학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다르다. 보이지 않는 손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시장이 아닌 공익을 위한 일도 한다. 남유럽에서 발달한 시민경제학에서는 상호성과 공동체성이 강조된다. 한국에서 시민경제학이 환영받는 이유도 공동체적 개념에 대한 갈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어디서 영감을 받아 시민경제학과 같은 경제관을 갖게 됐나.
"시민 경제의 여러 현상을 분석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기존의 정치학과 경제학의 틀로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는 시민 경제의 현상을 분석하기보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들이 계속 연구해온 시민경제학의 패러다임으로 분석하는 게 더 현실에 부합한다고 생각해 관심을 갖게 됐다."
◆ "성심당 같은 기업 100개 생기면 경제구조 바꿀 수 있는 계기 마련될 것"
- 시민경제학의 한국적 모델로 '성심당' 얘기가 많이 나왔다. 성심당 사례가 한국 사회에서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지만, 한국적 모델이라고 할 만큼의 확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시민경제가 소(小)공동체가 아니라 국가적 모델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중략.
- 한국 사회에서 성심당은 아직 낯선 기업문화다.
<중략>
- 한국 사회에서 시민적 경제가 구체적으로 현실에서 구현된 대표적 모델이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은 한국 사회에서 조금씩 뿌리 내리고 있지만 '화이트 칼라 운동'이라는 지적과 함께 이기심보다는 이타심을 강조하는 모델이 확장성이 있는지, 지속가능한지에 대한 의문도 자아내고 있다.
"협동조합 운동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흩어져 있으면 힘이 약하지만 합치면 큰 힘을 낼 수 있다'는 게 첫 번째 원칙이다. 그리고 협동조합이 가지는 '경제적 민주주의' 개념이다. 이익을 창출했을 때 조합원이 이익을 민주적으로 공동배분한다는 것이다. 이 개념 자체는 자본주의 기업에서 착한 기업의 활동(사회공헌활동), 자선활동을 하는 것과는 굉장히 다른 것이다."
- 성심당처럼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도 거대 자본의 탐욕에 무너지기 일쑤다. 시민경제가 대자본과 경쟁할 수 있나.
"다국적 기업과 대기업이 돈이 될 만한 곳에 침투해 독점기업이 되는 일은 실제로 많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들이 무조건 침투할 수 없는 영역도 분명히 있다. 특히 '먹거리'처럼 신뢰가 바탕이 되는 영역이 그렇다."
- 다소 이상적인 얘기처럼 들린다.
"혁신이라는 개념은 시민 경제학에서도 중요하다. 대기업이 고품질이면서 낮은 가격의 빵을 제공한다면, 성심당도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혁신 해서 이겨내야 한다. 지금의 성심당도 혁신을 해왔기에 이 자리에 있는 거다."
- 흥미로운 지적이다.
"성심당의 철학과 운영방식이 다른 곳으로 퍼져 나가 10개 이상의 중소기업이 이렇게 바뀐다면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10개의 중소기업이 공유 경제를 채택한 100개의 기업으로 발전한다면, 한국경제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계기가 분명히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이게 내가 바라는 것이다."
- 한국에서는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을 사회적 경제, 공유 경제의 롤모델로 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시민적 경제와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어느 정도 일치하나.
<중략>
- 이탈리아의 많은 중소 협동조합은 어떻게 계속 유지·발전하고 있나.
<중략>
- 다른 특징들은 무엇이 있나.
<중략>
◆ "어릴 적부터 교육 통해 시민적 문화 토양 일궈내야 협동조합 성공"
- 시민적 가치가 한국 사회에 더 많이 투영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나.
"물론 일단 법과 제도다. 강자를 더 강하게 하고 약자를 더 약하게 하는 법이 너무 많다. 오늘날 시민경제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권력을 가진 기업들이 가만히 두지 않기 때문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법을 악용해 세금을 적게 내는데, 시민경제 기업들은 세금을 정직하게 다 낸다. 법과 제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데, 이를 바꿔야 한다."
- 동의한다. 다른 요소는 무엇이 있나.
"법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문화적 토양이 중요하다. 문화는 한순간 이뤄낼 수는 없다. 교육을 통해 끊임없이 일궈내야 한다. 이탈리아는 초등학교 과정부터 협동조합에 대한 교육을 정규 교육과정에 편성시켜 자연스럽게 그 문화를 흡수하게 돕는다."
-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먼 얘기다.
"이탈리아에서는 협동조합의 가치와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이 많다. 특히 어릴 때 교육이 중요하다. 그래서 일종의 보드 게임 같은 걸 활용한다. 보드 게임을 통해 '기업의 독점은 경제를 망치는 지름길'이라는 원리를 스스로 깨우치게 한다. 자연스럽게 그런 결론을 유도함으로써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한다. "
- 한국은 여전히 '협동'보다는 '경쟁'을 먼저 가르친다.
"그 점이 바로 동양권 문화에서 협동조합을 운영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그래서 이런 문화일수록 사회적 양심을 일찍부터 교육해야 한다. 협동조합의 문화에 대해 알게 하는 교육과 문화가 정말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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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도서]
21세기 시민경제학의 탄생
- ‘관계 속 행복’의 관점으로 경제학을 재구성하다
스테파노 자마니, 루이지노 브루니 지음 |북돋움 펴냄 | 2015.02.15 출간
http://blog.daum.net/bstaebst/17748
[책소개]
[21세기 시민경제학의 탄생]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중세 가톨릭 전통에서부터 출발하는 경제학사, 사회학과 경제학을 넘나드는 풍성한 논의를 담아낸 책이다. 시민경제학의 시각은 ‘자유시장-복지국가’ 모델이 부딪힌 저성장 ㆍ 고실업 문제에 새로운 해법을 내놓는다. 저자는 “모두에게 임금 노동의 형태로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개념은 순전한 유토피아적 발상이자 위험한 거짓말”이라며 “민간 부문에서 ‘해방된’ 노동력이 사적 시장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재화, 즉 관계재와 가치재를 생산하는 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내주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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