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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알파고 쇼크] 잊지 못할 경험은 '직관'으로 저장된다

배세태 2016. 4. 3. 17:54

[IF] 잊지 못할 경험은 '직관'으로 저장된다

조선일보 2016.04.02(토)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6040102020&Dep0=lm.facebook.com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대결한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이세돌 9단이 이긴다고 봤다. 거의 무한에 가까운 경우의 수를 가진 바둑에서는 컴퓨터의 계산보다는 인간만이 가진 직관(直觀)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대국이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을 때 사람들은 계산이 직관을 이긴 결과라며 놀라워했다. 과연 직관은 계산과 상반되는 개념일까.

 

직관은 언어로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판단을 가리키므로 우리의 의식이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최근 뇌과학은 직관 역시 치밀한 무의식적 가치 계산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계산은 수많은 과거 경험이 뇌에 남긴 신체 반응의 흔적들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과연 뇌과학이 보는 직관은 어떤 모습일까.

 

◇직관은 몸에서 온 감각 정보 덕분

 

흔히 감각 정보라고 하면 시각이나 청각 아니면 촉각처럼 외부 환경에서 오는 정보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거의 매순간 또 다른 유형의 감각 정보들에 귀 기울이고 있다. 바로 우리 몸으로부터 오는 '내부 감각 정보(interoception)'들이다. 심장박동이 전해주는 신경신호나 장기로부터 오는 신경신호 등이 이러한 내부 감각 정보의 대표적인 예들이다.

 

뇌에는 몸에서 오는 감각 정보들을 받아들이는 부위들이 존재한다. 이마의 뒷부분 약 5㎝ 깊이에 있는 '복내측 전전두 피질(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이라 불리는 곳이 대표적이다. 이 부위는 인체 대사에 필요한 에너지의 변화와 통증 정보 등과 같이 신체 항상성 유지에 필수적인 정보들을 수집한다. '측중격핵(nucleus accumbens)'이나 '편도체(amygdala)'와 같이 정서적인 정보를 처리하는 뇌 부위들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복내측 전전두 피질의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은 의사 결정 상황에서 가치를 계산하는 일이다. 이 부위가 손상된 환자들은 가치 계산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는 간단한 게임으로 입증됐다.

 

<중략>

 

그렇다면 내부 감각 정보는 의사 결정과 어떻게 관련될 수 있을까.

 

<중략>

 

결국 가치란 최적의 선택을 촉발시키는 성공적인 과거의 신체 경험으로 볼 수 있다. 제한된 자원을 가진 우리 뇌가 무한에 가까운 외부 정보 중 나에게 의미 있는 것들만을 선택하고 저장해서 미래의 선택을 위해 사용하는 과정이 바로 가치 계산 과정이다.

 

직관을 영어로 'gut feeling(내장 감각)'이라 부르는 데에는 뇌과학의 근거가 있는 것이다. 이세돌과 같은 뛰어난 프로기사는 아마도 승패가 결정되기 훨씬 전부터 특정 수가 초래할 보상과 처벌을 예측하는 능력이 탁월할 것이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승리의 확신을 강하게 주는, 마치 직관처럼 보이는 '신의 한 수'는 수많은 대전을 거치면서 얻은 신체 경험들을 토대로 정교하게 계산된 수가 아닐까.

 

◇로봇이란 몸을 얻은 인공지능

 

인간의 가치 학습 과정을 모사한 알파고가 인간의 직관을 흉내 내는 듯한 행동을 보면서 인공지능의 발전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전문 프로기사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심오한 수를 찾아내는 모습을 볼 때는 약간의 섬뜩함마저 느꼈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적의 가치를 가진 수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학습하는 인공지능을 보면서 이를 닮은 인간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로 '사이코패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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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전문가가 인공지능이 초래할지 모를 윤리적인 문제들을 경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법 규제의 허점을 찾아내 이윤을 추구하는 주식투자 인공지능의 질주를 우리는 과연 파악조차 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에게 도덕성을 부여하는 일은 더 이상 사치가 아니라 반드시 해결해야 할 임무가 된 것이다.

 

이 점에서 연구자들이 단순한 알고리즘 차원에서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데 한계를 깨닫고 완전한 몸을 갖춘 로봇 연구로 서서히 전환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가치는 신체적 경험의 다양성만큼 풍부하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개인마다 독특한 가치를 생성해낼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현재의 인공지능이 좀처럼 따라오기 어려운 영역이다.

 

인공지능이 로봇이라는 몸을 갖게 되고, 여기서 내부 감각 정보들을 받아들여 가치 계산에 이용하게 된다면 어떤 변화가 올까. 인공지능 연구자뿐 아니라 의사 결정을 연구하는 심리학자와 뇌과학자도 궁금한 일이다. 인공지능이 무자비한 사이코패스로 자라날지, 아니면 인간의 마음마저 헤아리는 동반자로 성장할지 결정할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