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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하고 무식한 한국정부, 인공지능(AI) 개발 '벼락치기'로 될 일 아니다

배셰태 2016. 3. 30. 19:58

[김기천 칼럼] 인공지능 개발, '벼락치기'로 될 일 아니다

조선일보 2016.03.22(화) 김기천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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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창 시절 시험을 앞두고 벼락치기 공부를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시험이 코 앞에 닥쳐 몸과 마음이 다급해지면 머리가 더 잘 돌아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렇게 해서 성적이 오르더라도 진짜 실력은 늘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 몸에 밴 습관을 바꾸기는 힘들다.

 

한국 경제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짧은 기간에 후진국에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일종의 ‘벼락치기 성장’을 한 셈이다. 지금 한국을 먹여 살리고 있는 주력 산업과 제품은 모두 압축 성장의 과실이다.

 

한국 기업들은 선진국에서 검증이 끝난 기술과 제품을 재빨리 확보한 뒤 이를 모방·개량하는 전략으로 세계 시장을 파고 들었다. 후발 주자의 이점(利點)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빠른 의사 결정과 실행력이 한국 경제의 강점이었다.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든 빨리빨리 해치우는 습관이 몸에 뱄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지기 보다 당장 성과를 내기 위해 조바심을 치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이 돈벌이가 될만한 사업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정부가 별 준비 없이 대규모 국책 사업을 쉽게 밀어붙이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예전엔 그렇게 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하면 된다’는 정신과 기백이 고도 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무모해 보일 정도의 적극적인 도전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성질 급한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문화’가 한국을 IT 강국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한국 경제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서 벼락치기 성장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기존 주력 산업은 이미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는데 이를 대체할 새로운 산업은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성공 방식대로 과감한 투자에 나섰다가 낭패를 보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중략>

 

서울대 공대가 펴낸 ‘축적의 시간’ 의 공동저자인 이정동 교수는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취약점으로 ‘개념설계’ 역량 부족을 꼽았다. 제품이나 비즈니스 모델의 개념을 새롭게 창의적으로 정의하고, 이를 실현할 최초의 설계도를 그려내는 역량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개념 설계 역량을 확보하려면 오랜 기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꾸준히 경험과 노하우를 쌓아야 한다. 인력과 자본을 집중적으로 쏟아붓는 벼락치기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결국 그동안 우리가 소홀히 했던 기본과 기초, 축적과 숙성의 가치를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운 일은 아니다. 정부와 기업에서 의사 결정의 사다리 위쪽으로 올라 갈수록 ‘과거의 성공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역량이 미치지 못해도 몸으로 때우면 안 될 일이 없다는 낡은 사고가 지배적이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을 계기로 인공지능 열풍이 불자 정부가 재빨리 ‘지능정보산업 발전 전략’을 내놨다. 정부가 1조원, 민간이 2조5000억원 등 앞으로 5년간 3조5000억원을 투자해 언어지능·시각지능·공간지능·감성지능·창작 능력의 인공지능 5개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조(兆) 단위 투자 계획을 며칠 만에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한국 정부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무책임하고 무식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세금을 낭비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정책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정부는 2019년까지 언어지능 분야의 지식 축적 수준을 세계 1위로 끌어올리고, 시각지능 대회에서 우승한다는 목표까지 제시했다. 구글은 지난 14년 동안 인공지능 분야에 무려 33조원을 투자했다. 그런데 한국이 그 10분의 1을 들여 3년 만에 구글을 추월하겠다고 했다. 이런 터무니 없는 자신감의 근거가 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한국은 인공지능 연구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오랫동안 소프트웨어 산업을 홀대한 결과 쓸만한 인력을 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호들갑을 떨어봐야 그냥 ‘눈먼 돈’ 뿌리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그동안 한국형 유튜브 ‘K-콘텐츠뱅크’, 한국형 컴퓨터 운영체제(OS) ‘K도스’, 한국형 리눅스 ‘부요(Booyo)’ 등 정부 주도 개발 사업이 실패로 끝난 사례는 수 없이 많다. 헛돈만 쓰고 슬그머니 사업을 접은 데 대해 누구 한 사람 책임지지도 않았다. 한국형 인공지능 개발 사업의 결말도 별로 다르지 않을 듯하다.

 

인공지능 기술의 실용화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단숨에 구글을 넘어서겠다는 욕심을 부릴 게 아니라 좀 더 길게 보고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 개발을 위한 고급 인력을 양성하는 방안부터 찾는 게 순서다. 당장 성과를 내기 위해 무슨 컨트롤 타워 만들고 대기업 팔을 비틀어 대는 구태(舊態)는 이제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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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축적의 시간

- 서울공대 26명의 석학이 던지는 한국 산업의 미래를 위한 제언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지음 | 지식노마드 펴냄 | 2015.09.25 출간

http://blog.daum.net/bstaebst/16042

 

[책소개]

 

핵심은 창조적 개념설계 역량을 가능케 하는 축적된 경험지식에 있다!

 

『축적의 시간』은 서울공대 26명의 석학들이 던지는 한국 산업의 미래를 위한 제언을 담은 책이다. 각 분야 전문가들과 집중 인터뷰를 통해 오늘날 한국의 산업 전체가 당면하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의 원인을 균형있게 파악하고, 처방 또한 특정한 영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서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국가적 차원의 키워드를 제시한다.  


이 책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현상은 창의적이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 즉 ‘개념설계’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이는 오랜 기간의 시행착오를 전제로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축적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창조적 역량이다.


이에 ‘축적’이라는 키워드를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제시하고, 이러한 공통 키워드 추출의 결과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 전체가 얻을 수 있는 유용한 통찰을 정리하였다. 또한 유사한 산업 분야별로 개별 인터뷰의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