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1)

한국 정치, 기어코 경제에 비수 꽂나...한국 경제의 팔자가 기구하구나

배세태 2016. 3. 26. 17:01

[송희영 칼럼] 한국 정치, 기어코 경제에 비수 꽂나

조선일보 2016.03.26(토) 송희영 주필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6032503244&d=2016032503244

 

한국 경제의 팔자가 기구하다. 겨우 두 세대(世代)가 먹고살 만하다 했더니 저성장 수렁에 빠졌다. 일하며 돈벌이하는 사람들(생산 연령 인구)이 줄어들고 노령 인구는 급증하고 있다.

 

급기야 정치마저 산산조각 분열하고 있다. 야당도 갈라졌고 여당도 쪼개지기 직전이다. 갈등이 수습됐어도 각방을 쓰는 냉랭한 동거가 될 판이다. 그렇지 않아도 가라앉은 경제에 정치 분열이란 사령관 없이 중대장들만의 군대로 전쟁터에 나서야 하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우리에게 진정한 진보 정당은 없었다. 유럽의 진보 정치는 인간을 위한 다양한 복지제도를 도입했다. 미국의 진보 세력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파격적인 세제(稅制) 개혁을 통해 분배 정의를 실현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런 세력은 집권 근처에 가지도 못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한국 경제는 성장을 기둥 철학으로 삼아 자잘한 복지정책을 몇 가지 도입한 정도에 그쳤다. 맹목적 추종자들의 생각은 다를지 몰라도 크게 보면 모두가 보수 정치의 틀 안에 살았다. 성장의 혜택을 함께 맛보았던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공동 주주들이었다. 그저 태생이 영남이냐 호남이냐, 대학 시절 운동권이었느냐 아니었느냐는 차이에 따라 소속 당 이름이 달랐을 뿐이다.

 

달라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또 갈라지고 있다. 일부는 대통령을 평생 따라다닐 것처럼 인증 샷을 찍었고, 문재인 전 대표나 안철수씨를 쫓아간 그룹도 있다. 아무리 화장을 짙게 해도 원시사회의 추장이 거느린 부족 집단을 연상시키는 당파성 네트워크로 똑같아 보인다. 그런데도 자기만은 다르다고 우긴다.

 

이들 사이에 복지나 세금 개혁 같은 핵심 공약은 별 차이가 없다. 노동시장을 어떻게든 바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도 없다. 정강 정책, 즉 정치의 최종 목적지도 서로 베낀 흔적이 역력하다. 변화를 몰고 올 내용은 찾기 힘들다.

 

우리 정치판은 그저 대권을 잡을 만한 보스, 아니면 고향 이름 아래 단결하는 무리뿐이다. 두목이 배신자를 찍으면 누군가 그를 제거하는 역할을 실행한다. 대리인이 보스를 대신해 도전자 세력이나 말썽꾼을 숙청하기도 한다. 야쿠자나 마피아와 공통점, 차이점을 따져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1990년대 일본이 장기 불황에 빠져들 때 일본 정치권은 분열됐다.

 

<중략>

 

정치가 방황하면 경제는 정치 이상으로 흔들린다. 글로벌 전쟁터에서 생존해야 하는 경제는 시시각각 결정을 내리고, 때로는 앞선 결정을 번복하거나 수정해야 한다. 정치 분열로 결정이 미뤄지면 미뤄질수록 기업 손실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게 글로벌 경제의 큰 특징이다.

 

결국 일본 정치가 장기 불황을 연장시킨 것은 사면받을 수 없는 죄(罪)가 되고 말았다.

 

<중략>

 

지난 4년 동안 우리 정치는 저성장의 벽을 돌파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허울 좋은 '경제 민주화'를 이룬 것도 아니다. 청년들은 더 가난해졌고, 비정규직은 더 늘어났다.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건만 선거철 정치판은 어지럽게 흩어진다. 이렇게 우리 정치도 일본처럼 경제를 장기 불황으로 끌고 갈 자격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미국 대선에서는 도널드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가 선거판을 뒤흔들고 있다. 그들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낮다고 하지만 저소득층, 청년층, 백인 중·하위층의 불만과 불안을 정치판에 고스란히 투사(投射)해주었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미국은 국제 이슈보다는 내부 문제에 더 집중할 것이다. 트럼프와 샌더스가 충격적인 방식으로 불만 세력의 내심을 끄집어내어 준 덕분이다.

 

우리의 불만 계층은 얌전하다. 일본 젊은이들도 장기 불황 기간에 취업하지 못해도 데모 한 번 하지 않았고, 두꺼워진 빈곤층도 정치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우리가 일본인처럼 인내하는 한 '한국의 트럼프'는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는 이미 분노하지 않는 유권자들을 보며 멋대로 질주하고 있다. 영악한 정치가 끝내 경제에 칼을 꽂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