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大中 칼럼] 폭력 시위와 역사 교과서
조선일보 2015.11.17(화) 김대중 고문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5111604349
지난 주말 광화문 일대에서 벌어진 폭력 시위를 보면서 참담하다 못해 분노가 일었다. 저것이 과연 이 사회 소수자라는 사람들의 절박한 하소연인가? 저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반대자의 권리인가? 저것이 자유·민주사회의 큰 덕목인 다양성의 발로란 말인가? 일반 시민은 경찰차를 발로 걷어차기만 해도 처벌받는데 저들은 무슨 특권이 있길래 경찰차를 뒤집어엎고도 만세를 부르는가? 지금 우리 사회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도심을 마비시킬 수 있는 저들이 다수파다. 쇠막대를 쑤셔대며 의기양양한 저들이 특권층이고 저들이 갑(甲)이다.
같은 시각 전 세계를 뒤흔든 파리에서의 IS 학살 테러에도 목이 메었다. 저것이 소수자의 절박한 의사표시인가? 저것이 다양성의 이름 아래 자행되는 반대자의 목소리인가? 저것이 핍박받는다는 난민의 절규인가? 저것 역시 반대자와 소수자를 수용한다는 다양성의 결과란 말인가? 이목을 끌고 자기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라면 일반시민의 목숨 따위는 길거리 돌멩이만큼의 값어치도 없다는 것인가? 지금 세계를 떨게 하고 있는 IS 저들이야말로 갑이다.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라는 정부 방침이 도마 위에 오르자 국정화를 반대하는 측은 즉각 다양성을 들고 나왔다. 노무현 정부하에서 장관을 지낸 유시민씨는 TV 토론에서 "사회의 건강은 반대 사상을 멸균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망한 이유는 다양성을 말살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한 법대 교수는 신문 칼럼을 통해 '자유·평화·공존·다양성과 같은 시대적 가치가 방기될 위험'을 주장하며 그런 '시대적 가치'가 교과서 국정화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다.
다양성은 자유와 민주와 더불어 우리 사회의 핵심 요소다. 전 세계의 민주국가는 다양성의 토대 위에 성장해왔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공산주의의 몰락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선진국은 우리와 두 가지가 다르다. 첫째, 선진국은 다양성을 긍정하되 그로 인해 사회 공동체가 극단적인 대립으로 가는 상황을 방치하지 않는다.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민주사회는 체제 이질(異質) 요소가 인구의 5%가 넘으면 가차없이 차단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것이 곧 법치다. '법이 허용하는 만큼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둘째, 저들 나라에는 '북한'이라는 적대 세력, 체제 위협 요소가 없다. 그런 요소를 바로 지척에 두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런 환경이 아닌 나라가 누리는 만큼의 다양성을 향유하기 어렵다. 그것은 곧 다양성의 한계다. 특히 우리 체제에 비판적이거나 북한 동조 세력이 인구의 20%를 넘는다는 일부 통계에 이르러서는 다양성이 천혜의 개념일 수 없다.
세계에서 우리의 좌파 세력만큼 자유·민주사회의 다양성을 많이 악용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반체제·반정부 폭력 시위는 다양성으로 위장돼 있다. 다양성의 존재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 북한 체제를 추종하는 친북·종북 세력이 이 나라의 다양성을 남쪽 체제를 말살하는 최대의 무기로 삼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교과서가 그런 무기 중 하나다. 지금 대한민국의 역사 교과서는 그 자체로 다양성을 말살한 독점 체제다. 그 교과서가 갑이고, 그 교과서가 다수파이고, 그 교과서가 '집권 세력'이다. 전국 고교 중에 좌편향 교과서가 아닌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그 증좌다. 역설적이지만 국정화는 독점에 대항하는 다양화의 일환이다. 장래에 북한이라는 체제가 없어진 상황에서는 우리는 보다 자유롭고 보다 보편적이며 보다 다양해진 역사 교과서를 가질 수 있다. 그때는 국정화가 필요 없다.
현행 교과서의 핵심적 문제는 대한민국과 북한의 체제를 비교하고 그 지도자의 자질을 대비시켜 북쪽에 정당성과 정통성이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는 데 있다. '좌편향'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교과서는 대한민국에 자해적이며 자학적이다. 그런 교과서를 다양성의 이름으로 포장 또는 위장하는 것을 이 땅에 사는 국민들이 용납할 수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에 남을 올곧은 작업을 시도했으면서도 그 방식과 절차에서 치밀하지 못한 탓에 심각한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그가 현행 교과서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전국 부모에게 이 교과서를 읽어 보도록 하는 운동을 제창한 뒤 그 개정 작업의 일환으로 국정화를 제시했더라면 그는 더 쉽게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국정화를 앞세우는 바람에 사람들은 그가 가리키는 하늘을 못 보고 그의 손가락만 보고 있는 격이다.
그래도 할 일은 있다. 국무회의 등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그는 이 문제를 들고 직접 국민 앞에 나와야 한다. 전문가를 대동해서 현 교과서의 문제들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새로운 작업의 필요성을 역설해야 한다. 국정화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는 국민적 토론과 여론 형성이 중요하다. 좌파가 교과서에 숨겨 놓은 것을 세상에 끌어내서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그것이 바로 다양성의 본질이다. 폭력 시위는 교과서 문제를 다시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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