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샤오미의 좁쌀과 소총
중앙일보 2015.10.22(목)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
http://mnews.joins.com/article/18909454
Q형.
몇 번 망설였습니다. ‘대기업 편드느냐’고 할 게 뻔해서요. 샤오미 얘깁니다. 엊그제 내놓은 제품이 또 화제죠. 60인치 초고화질(UHD) TV가 89만원. 1인용 전동 스쿠터(나인봇 미니)가 35만원. 가격 혁명입니다. 샤오미의 장점, 빨리 배워야 합니다. 제조사가 아닌 기획·투자사인 기업 성격, 탁월한 입소문 마케팅, 열린 조직 문화는 부럽습니다. 스마트폰 부속 기기나 만드는 줄 알았는데 생태계를 만들고 있었다니 놀랍습니다. 열혈 사용자 그룹인 미펀(米粉)은 점점 더 강력한 힘이 될 것입니다. ‘베끼기’ ‘중저가’로만 생각했다간 큰코다치죠.
그러나 균형 잡힌 저울은 필요합니다. 형처럼 영향력이 있는 분이라면 말입니다. 요즘 IT 관련 대중 강연의 흔한 풍경은 이렇죠. 여러 사례를 들어 샤오미를 칭찬합니다. 그러고는 삼성·LG전자의 ‘흑역사’를 하나 보여주며 조롱하지요. 그런데 비교는 적절하지 않고 비판은 비아냥이기 일쑤입니다. 예컨대 삼성은 왜 샤오미처럼 싸고 예쁜 보조 배터리를 못 만드냐는 식이죠. 이 제품은 삼성이 만들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그 시간에 고급 첨단 제품 개발을 하는 게 맞지요. 굳이 따지려면 국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탓해야지요. 저는, 영화 ‘국제시장’을 비난했던 형이 똑같은 정서의 샤오미 이미지 광고를 칭찬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가능성이 아닌 실재하는 샤오미의 위치는 추격자입니다. 우리 기업이 베낄 때는 제조사인 소니가 모델이었고, 샤오미는 기획사인 애플이 모델인 점이 다르긴 합니다. 특허 침해 문제로 샤오미가 중국 밖으로 나올 때는 고생할 거라는 분석도 있지요. 무엇보다 비즈니스는 현실입니다. 기획력, 참여감은 샤오미의 동력입니다. 그러나 성장의 현실적 토대는 거대한 중국 시장과 막대한 자본입니다. 지난 19일 나온 나인봇 미니는 샤오미가 4월 인수한 미국 세그웨이 제품을 개량한 것이죠. 세그웨이가 자기 제품을 베끼지 말라고 하니까 샤오미가 회사를 통째로 사버렸죠. 우리 대기업이 그랬다면 ‘돈의 횡포’라는 비난이 컸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비약일까요. 한국 시장의 크기가 중국과 같았다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덜 모진 방식으로 이뤘을지 모릅니다.
거듭 말하지만 샤오미는 주목할 업체입니다. 그러나 가려서는 봤으면 합니다. 샤오미(小米)는 좁쌀이란 뜻이죠. 마오쩌둥(毛澤東)이 항일 전쟁과 개국 과정에서 강조한 ‘좁쌀밥을 먹고 소총을 멘다’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보잘것없는 식량과 무기지만 적을 이길 수 있다는 정신이 담겼죠. 좁쌀로 큰 곳간을 채워가는 샤오미의 도전을 응원합니다. 그러나 저는, 샤오미가 다른 손에 들고 있는 소총마저 눈감은 채 박수갈채만 할 수는 없습니다. 형의 판단은 형의 몫입니다. 크게 바라지 않습니다. 삼성 다니는 Z까지 불러서 밥 한 끼 같이하며 등 한 번 쳐주시면 됩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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